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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각설’ 보란듯 건재 과시 러 2인자…푸틴 신뢰 어떻게 얻었나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방회의에 참석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지난달 1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방회의에 참석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 AP=연합뉴스

러시아 변방의 토목 기술자에서 2인자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세르게이 쇼이구(67) 국방부 장관은 ‘홍보의 달인’이다. 도시 엘리트 출신이 아닌 몽골 국경의 외딴 빈곤 지역인 투바공화국의 남부 시베리아에서 푸틴의 ‘이너써클’에 진입해 2인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로 워싱턴포스트(WP)는 8일(현지시간) 그의 남다른 홍보 능력에 주목했다.

군 이미지만 개선…올리가르히 결탁

쇼이구 장관은 2012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장수 장관이다. 그가 취임 후 가장 먼저 나선 작업은 군 이미지 개선이었다. 소련의 영광을 재현한다며 군복을 소련군과 비슷하게 바꾸고, 최첨단 무기와 군사훈련도 공개하며 군사력을 과시했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으로 군사적 능력을 인정받은 이후 세를 늘리며 입지를 굳혔다. WP는 그러나 “그가 지난 10년간 꼼꼼하게 만들어온 러시아군 이미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2개월여 만에 무능과 야만성이라는 추악한 현실로 무너졌다”고 꼬집었다.

2020년 6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쇼이구 장관. AP=연합뉴스

2020년 6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쇼이구 장관. AP=연합뉴스

동시에 러시아군의 무능을 자초한 장본인으로 꼽힌다. 그는 전문성을 키우는 미국식 부사관 제도 도입을 중단하고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와 결탁해 최첨단 무기 구매에만 돈을 쏟아부었다. 이미지는 개선했지만, 군사 숙련도나 병력 비율, 야전 배급 상태는 베일에 싸여있었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 CNA의 러시아 군사분석가 마이클 코프먼은 “쇼이구는 시나리오에서만 ‘훌륭한’ 군대를 만들었고 제한적 전투에선 효과를 입증했지만, 전투가 커지면서 부패에 따른 무능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3월 초 한동안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춰 경질설과 건강이상설까지 제기됐지만, 2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가족도 군과 결탁해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이 나온다. 지난해 오픈 미디어 보고에 따르면, 31세인 크세니아가 경영 중인 투자회사는 정부 건설 계약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러시아 군 장비를 활용한 극한 장애물 대회를 운영했고 국방부가 후원하는 청년 단체 ‘유스 아미’에서 일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이끈 반부패 단체는 쇼이구 장관의 딸 크세니아가 18살에 모스크바 외곽 호화 주택을 소유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토목 기술자에서 재난 대응 전문가로  

2월 27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만난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가운데). AP=연합뉴스

2월 27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난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오른쪽). AP=연합뉴스

쇼이구 장관은 투바공화국의 남부 시베리아 출신이다. 투바인 아버지는 신문 편집인이자 지역 공산당위원회 비서로 일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자란 러시아인 어머니는 농업 공무원이었다. 쇼이구는 1977년 대학 졸업 후 토목 기술자로 10년간 초기에 시베리아 프로젝트 일을 하다가 공산당 내부 승진을 통해 1990년 국가건설위원회 부국장으로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아르메니아 지진 등으로 국가 차원의 재난 대응기구 필요성이 커졌던 시기다.

그는 이듬해 구조대장으로 임명된 데 이어 구조대가 비상사태부로 승격되면서 장관이 됐다. 당시 러시아의 주요 사건 사고 현장에 어김없이 언론에 나타나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추방된 러시아 재벌 세르게이 푸가체프는 WP에 “그는 항상 카메라 앞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으로 영웅의 이미지를 가졌다”며 “러시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재임 초기 쇼이구 장관이 너무 눈에 띄어 그의 거취를 논의하기도 했지만 해고하진 않았다”고 전했다.

‘스트롱맨’ 이미지 구축…반려견도 선물

지난달 21일 푸틴(왼쪽)과 가까이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쇼이구 장관은 건재를 과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1일 푸틴(왼쪽)과 가까이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쇼이구 장관은 건재를 과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이 2000년 집권 후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을 대거 중용하던 당시 ‘아웃사이더’였던 쇼이구 장관은 재능 발휘에 나섰다. 푸틴의 시베리아 휴가에 동행해 윗옷을 벗은 채 승마를 하거나 추운 강에서 수영하고 낚시를 즐기는 등 그가 장관으로서 성공했던 ‘스트롱맨’ 이미지 전략을 푸틴에게 전수했다. 푸틴이 가장 아끼는 반려견 ‘코니’도 그의 선물이다. 그는 2012년까지 비상사태부 장관을 지낸 후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WP는 “쇼이구의 푸틴에 대한 숭배는 그의 거친 마초성과 결합해 ‘이너써클’에 진입하도록 도왔다”고 평가했다.

쇼이구 장관은 지난달 21일 푸틴과 가까이서 만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푸틴은 이날 쇼이구 장관에게 마리우폴 장악을 치하하고 아조프탈 제철소 봉쇄를 명령했다. “쇼이구를 공개적으로 경질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나왔다. 설령 푸틴이 그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쇼이구 장관은 기꺼이 충성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CNA의 코프먼은 “푸틴은 충성하다 희생하는 측근들을 챙겼다”며 “쇼이구도 그런 기대를 갖고 책임지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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