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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지난달 개성공단 화재, 北이 무단 재가동하다 발생한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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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13년 9월 개성공단 내 의류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연합뉴스

2013년 9월 개성공단 내 의류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이 개성공단에 남겨놓은 한국 기업 소유의 생산 설비를 무단으로 재가동한 동향이 파악됐다. 정보당국은 지난달 21일 개성공단에서 발생한 화재도 이 때문으로 추정하고 분석 중이다.

8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군에서 관측 카메라로 개성공단 내 인력과 차량의 움직임을 포착했다"며 설비 가동 정황을 전했다.

북한이 무단 가동한 것으로 보이는 설비는 약 10개 회사 소유로, 의류·잡화·전자 관련 업체 등이었다. 한소식통은 "지난달 개성공단 화재도 가동 징후가 포착된 두 업체 건물 사이에서 관측됐다"며 "북한이 개성공단 내 생산 설비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불이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국 기업의 자산을 임의로 활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의혹이 또 불거진 것이다.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차단을 위해 국경을 완전히 폐쇄했던 북한이 올해 초부터 대중 무역을 서서히 개시한 것과 맞물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익명을 원한 정보 관계자는 "몇 년 전에도 북한이 개성공단을 가동하는 정황이 있어 국내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흘러든 제품의 유통 과정, 샘플 조사 등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말에도 개성공단 내에서 인력과 자재로 추정되는 물체를 하역해 놓은 모습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관련 기관들은 공단에 전력이 공급된 과정도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에 대응해 2016년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 폐쇄 결정을 내렸다. 이튿날 전력 공급도 모두 중단했다. 따라서 북한이 개성공단 생산 설비를 재가동하려면 자체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소식통은 "개성공단 내에는 북측 CIQ(세관·출입국·검역) 시설과 군부대, 철도 시설 등으로 연결되는 비교적 안정적인 전력망이 지나고 있다"며 "공단 내 북측 전신주에서 전기를 끌어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17년 10월에도 북한이 개성공단 내 한국 기업 소유의 의류 공장을 은밀히 가동해왔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남측에 통보하지 않고 19개의 공장을 가동해 내수용 의류와 중국에서 발주한 임가공 물량을 생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 국정원 역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개성공단 일부가 재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보고했다.

해당 보도가 나온 직후 북한 대외선전용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개성공업지구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누구도 상관할 바가 없다"며 "공업지구 공장들은 더욱 힘차게 돌아갈 것"이라고 반응했다. 설비 사용 사실을 직접적으로 시인하지는 않으면서 자신들에 개성공단 가동 권리가 있다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

다만 당시에도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사실 관계를 명확히 확정하지는 못했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2019년 5월 정부로부터 방북 승인을 받은 뒤 공단 내 시설 점검을 위해 방북하려 했지만, 북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아 성사되지 않았다.

북한이 무단으로 개성공단 내 설비를 가동해 이득을 취했다면 엄연히 한국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지만, 법적인 구제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해당 기업들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법리적으로는 가능하다. 다만 이럴 경우 손해가 발생한 것을 인지한 시점으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아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인지 시점을 정확히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소멸시효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애초에 설비 등을 정리할 틈을 주지 않고 개성공단 폐쇄 결정을 내려 북한에 무단 가동의 여지를 남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실 보상을 청구하는 방안도 있다. 이 역시 인지 시점 5년 이내여야 소 제기가 가능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남측 기업의 자산을 무단으로 이용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실제 배상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북한은 공단 운영 중단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고 있고, 재가동도 여러 차례 제안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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