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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덕구의 NEAR 와치

균형 잘 잡힌 배가 흔들림 없이 멀리 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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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열호 출범에 거는 기대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내일(10일)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됩니다. 그가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 모두 진지하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세종대왕 때 발간된 ‘용비어천가’는 조선왕조가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처럼 국가의 기반이 깊고 튼튼한 나라가 되기를 염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윤석열 차기 정부가 ‘균형이 잘 잡힌 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앞으로 윤석열호라는 배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태풍을 견뎌내며 짙은 안개 속을 뚫고 흔들림 없이 순항하려면 이 배는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 배는 선장의 출신 진영에 따라 좌우 어느 한쪽에 쏠려 있었습니다. 마치 시계추의 진자(振子)처럼 선장이 바뀔 때마다 양극단을 추구하면서 승객들도 함께 쏠려 다닙니다. 이제 윤석열 선장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시계추가 정반대로 회귀한다면 배는 또다시 반대편으로 기울며 뒤뚱거릴 것입니다.

극단적 진영 정치로 국민 양분돼
고착된 국가 이중구조가 근본 원인
윤 대통령은 진영 떠난 균형자돼
‘두 나라 현상’ 해소해 협치 이뤄야

윤 대통령의 집권 초기 환경은 그리 순탄하고 우호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지난 2개월 가까이 허니문 분위기도, 진정한 승복과 축하 분위기도 별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뭉클한 국민 공감이 없는 가운데 국민은 그저 무덤덤합니다. 원내 다수당에선 대선 패자의 환생을 도모하고 그들의 방해로 새 정부의 정상 출범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윤 대통령 시대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바로 ‘두 나라 현상’입니다. 금세기 들어 정치 집단들은 별로 큰 차이 없어 보이는 이념적 차이를 내세우며 그 작은 차이 때문에 전체를 부정하고 과거의 축적에 대한 창조 없는 파괴를 계속 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극단적인 진영 정치가 태동하고 다시 이익 집단화로까지 변질하였습니다. 더욱이 이제는 진영 간 생존 투쟁으로까지 번져 결국 전임 대통령들의 흑역사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양분·결집되어 가고 상대방을 부정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이르러서는 두 나라 현상으로까지 악화하였습니다. 그것은 부분집합을 모집합 삼아 생존하려는 분열적 생존방식입니다. 이것은 난치병이고 망국병입니다.

인류 보편 문제 농축된 나라

정덕구의 니어워치

정덕구의 니어워치

지금 나라가 속병이 들며 기울어갑니다. 한국 정치는 추락 중이고 한국 경제는 위기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지금 국민은 정치 신인 윤 대통령에게 두려울 만큼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진영의 보스에서 떠나 균형감을 갖고 가운데에 서라는 것입니다.

중국 고사에 따르면 요임금은 순임금에게 선양(禪讓)하면서 “진실로 가운데(中)로 가라”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제 윤 대통령은 스스로 쏠리거나 치우침 없이 가운데에 서서 오롯이 국민만 보고 그곳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만일 지나치게 보수로 회귀한다면 그것은 흑역사를 연장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균형감을 갖고 시장 경제와 사회 안전망, 한·미 동맹과 한·중 간 공존 관계, 창조적 소수와 비창조적 다수의 공존 문제 등 오래 대립하여 온 요소들을 함께 끌어안아야 합니다. 6·1 지방선거 이후 큰 선거가 없는 그다음 2년 가까이가 윤석열의 시간입니다. 그 시간 동안 이러한 퇴행 정치의 근저에서 원인과 에너지를 공급해왔던 우리 경제 사회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하는데 전력해야 합니다.

지구 문화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지구 인류 보편 문제군의 딜레마가 가장 농축된 나라가 한국이라고 특정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오랫동안 한쪽에 치우치며 너무 빨리 압축 근대화·고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오래 농축된 ‘한국 문제군’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가 이 문제에 무관심한 사이 점점 더 커지며 국가 발전의 족쇄가 되고 저성장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너무 빨리 간 경제는 모든 국민을 함께 포용하지 못했고 뒤처진 국민은 소외되며 더욱 뒤처졌습니다. 경제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한국인의 정신세계는 크게 뒤처져 있고 그동안의 경제적 성취는 국민 행복으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새 기록을 세우고 있는 저출산율, 초고령화 속도, 인구 절벽, 존·비속 살인, 낙태율, 자살률, 고아 수출 대국이라는 오명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이 모든 것들이 이중구조의 고착화, 균형의 상실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이 과정에서 뒤처진 비창조적 다수는 극단의 정치세력에 포용되었습니다. 결국 극단적 진영 정치는 경제 사회의 현격한 이중구조를 먹고 사는 독버섯입니다.

흑역사 단절과 한국 문제 경장

왜 역사는 지금 윤 대통령을 소환했을까요? 지금 그에게 부여된 어렵고 중차대한 과제는 첫째, 스스로 균형자(Balancer)가 되어 두 패로 나뉘어 있는 국민을 가운데로 모아 통합함으로써 ‘두 나라 현상’을 해소해 협치 기반을 만들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를 바탕으로 이중 구조화된 한국 문제군의 해결에 초석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 진행되어 온 과거 흑역사의 단절(斷絕)이고, 전환 시대의 전환(轉換)이며 구조적 한국 문제군을 해소하기 위한 경장(更張)입니다. 그리고 이 과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면 윤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 큰 이정표를 세우고 역사에 큰 점 하나를 찍게 될 것입니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