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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줄이는 낙태법 개정, 더는 외면하지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22.05.0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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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

현재 우리나라는 임신 막달까지 모든 사유의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형법의 낙태죄를 헌법불합치 결정하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낙태를 실질적으로 감소시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개선 입법’을 요구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회가 이를 외면한 결과다. 책임 있는 위정자들이 눈 감고 있는 사이 불법 유통되는 낙태약을 여성들이 먹고 집에서 혼자 아기를 낳아 변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참담한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면서 여성이 안전한 사회, 생명이 소중한 사회를 바랄 수 있는가?

미국 연방대법원은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주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다음 달 결정하는데 ‘로 대 웨이드 판결(1973년)’로 알려진 기존 연방법보다 주법을 우선하는 결정문 초안이 얼마 전 유출돼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낙태법이 치열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우리는 헌법재판소 결정 후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낙태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우리는 낙태 문제에 이토록 비겁한가?

3년째 이어진 낙태법 입법 공백
국회는 여성 고통 방치해선 안 돼

우리 사회의 외면 속에 오늘도 수많은 여성이 산부인과를 찾아 원치 않는 임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국회는 임신한 여성들이 아기를 낳기 어렵다는 절박한 형편조차 살피지 않으면서 무슨 출산 장려 정책을 논하는가?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젊은 세대다. 임신이 가장 잘되고 건강하게 출산하는 20대의 위기 임신을 모른 척 손 놓고 있는 정부는 아직도 ‘준비된 임신’만을 가치 있게 보는가?

어떤 환경에서 임신했어도 임신부를 차별하지 않고 아이를 중심으로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준비된 사회’가 되지 않으면 낙태는 줄일 수 없다. 최근 인기 드라마엔 고등학생 자식들의 임신 사실을 알고 ‘아이 지워야 잘 살 수 있다’고 낙태하자는 아버지들에게, ‘아이 낳아도 잘 살 수 있다’고 설득하며 출산과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당찬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물론 10대에 임신하지 않게 성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생긴 아기’를 포기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기 전까지 출산을 미루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현실에서 ‘이미 생긴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부모로서 책임지고자 용기 내는 것은 손가락질받을 일이 아니고 지원받을 일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주인공들도 혼자 고민하고 주위와 갈등하며 낙태 병원을 찾고 인터넷으로 불법 낙태약을 구한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인생의 큰 결정을 지원하는 정부의 상담제도가 담긴 발의안들이 국회에 잠들어 있어 혼란스러운 우리의 낙태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전 세계 낙태법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소송 청구인 노마 매코비(가명 제인 로)는 낙태하지 않았고 아이를 출산했다. 그녀는 1995년부터 22년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법을 없애는데 헌신하며 낙태 반대 운동에 앞장서다 2017년 세상을 떠났다.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던 텍사스주는 최근 태아의 심장 박동이 시작되는 임신 6주 이후의 낙태를 제한하는 ‘심장박동법’을 발효하는 등 낙태를 제한하는 법이 25개 주에서 준비 중이다. 이번 판결로 미국에서 주법에 의한 낙태 제한이 시행될지 주목된다.

우리도 더는 낙태법 개정을 외면해선 안 된다. 낙태법의 개정 방향은 분명하다. 위기 임신의 고통 속에 있는 여성을 지원하여 살릴 수 있는 아기는 살리고, 낙태를 선택한 여성은 안전한 의료시스템에서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낙태를 줄이면서 여성의 권리를 증진할 수 있다. 합계출산율 0.8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저출산을 겪으면서도 위기 임신을 외면하는 비겁함을 이제 끝내자.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안나 대한산부인과학회·낙태법특별위원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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