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은경의 법률리뷰

일선 변호사의 ‘검수완박’ 소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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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은경 변호사

이은경 변호사

보통 의뢰인들은 변호사에게 2가지를 묻는다. ‘성공 가능성’과 ‘처리 기간’이다. 둘 다 섣불리 답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예전엔 우리 사법 시스템이 이렇게 돌아가니 대략 이럴 거란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답변이 영 궁색하다. 결과나 기간 모두 합리적 예상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도입한 검경 수사권 조정 후, 일선 변호사들은 볼멘소리를 자주 한다. 언론의 관심이 없는 일반 사건은 압수·수색영장 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 같다는 거다. 경찰마다 생각이 제각각이고, 경찰서별로 수사력 편차도 심해 처리기준이 모호하단 탄식도 거세다. 심지어 경찰이 판사로 보인다는 푸념까지 한다. 수사할 생각 없이 재판하듯 고소사건을 처리하기 때문이다. ‘증거를 대든지 고소를 말든지’ 택일만 종용하더란 하소연이 적지 않다. 당연히 변호사 일거리는 늘었다. ‘범죄를 여러 개 쓰느니 고소장을 쪼개 내는 게 낫다, 증거는 기본이고, 사실과 법리도 밥 떠먹이듯 준비해야 한다’고들 입을 모은다.

서민은 울고 범죄자는 웃는 세상
경찰국가 되지 말란 법도 없어
‘법 앞의 평등’도 뒷전인 ‘방탄법’
문 정권의 패착 역사에 남을 듯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경찰도 골머리 썩긴 변호사 못지않다. 지휘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지 몰라도 일선 현장은 걱정이 태산이다. 현재도 폭증하는 업무를 감당치 못해 사건을 쌓아두고 있고, 고소사건은 접수 거부, 취하 종용, 타관 이송 등 갖은 편법을 동원하는 실정이다. 이제 수사의 지연과 적체는 일상이 됐다. 여기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검찰이 담당했던 6대 범죄 중 공직자, 선거, 방위산업, 대형 참사도 앞으론 경찰이 다 수사하란 거다. 수사권 인계를 위한 연착륙 과정도, 자체 수사역량을 키울 시간적 여유도 없이 엄청난 사건들만 덜컥덜컥 안기니 경찰도 이게 뭔가 싶을 거다. 예산과 인력 증원을 호소하는 마당에 또다시 들이닥칠 사건 더미들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수사부서가 기피 1순위인 이유도 새겨볼 법하다.

변호사들은 범죄를 밝혀내는 능력과 의지 둘 다 아직은 검찰과 경찰의 격차가 크다고 생각한다. ‘용소계곡 살인사건’만 해도 검찰이 압수·수색, 디지털 분석 등을 통해 경찰이 간과한 추가 범행을 밝혀내지 않았나.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남발한다는 원망은 이미 자자하다. 이제 일반 서민들은 제아무리 억울해도 복잡한 사건은 피해규명이 쉽지 않을 듯하다. 증거수집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힘 있고 돈 많은 피의자들이 요리조리 법망을 빠져나가니 범죄자들만 웃는 세상이 왔다는 탄식까지 나온다.

또 하나, 진짜 큰 걱정이 있다. 경찰이 역량을 키운다 한들, 거대한 조직의 막강한 권한을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경찰은 14만 인원과 12조원 예산이 있고, 대공수사권까지 보유한 국내 최대 정보·수사기관이다. 일탈과 남용, 독선과 부패, 그리고 무능력까지, 경찰의 과오가 치명적인 이유다. 국민의 민생과 인권, 국가의 안위까지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형사사법 시스템에 이걸 방지하는 겹겹의 장치를 마련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한데, 경찰의 초동수사에 대한 검찰의 크로스 체크 기능을 없애고, 보완수사 범위, 이의신청 주체까지 제한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 벌써 변호사들은 수사의 공정을 깊이 우려한다. 경찰은 행정기관이다. 인사권자의 입김이 검찰보다 클 수밖에 없고, 당연히 권력층 수사에 대한 외압을 배제하기 어렵다. 금품과 연고 등이 수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검찰보다 적다고 볼 수도 없고, 표적수사나 청탁수사를 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런데, 딱히 대비책은 보이지 않는다. 이젠 대한민국이 경찰국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겠단 생각이 든다.

민주당이 기소청으로 주저앉히려는 검찰 제도는 정부 수립 직후 일제시대 ‘순사’로 불리던 경찰의 폐해를 없애려는 의지를 검찰청법에 담은 게 시초였다. 통제 없는 권력처럼 위험한 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공룡 같은 수사권이 나라에 미칠 위험을 고심하기는커녕 공청회 한번 없이 형사사법 시스템을 바꿔 버렸다.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 등 온갖 편법을 동원해 반대의견을 개진할 기회도 짓밟았다. 특정인을 위한 ‘방탄입법’이란 소리까지 들리니 권력과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법 앞의 평등’도 뒷전인 느낌이다. 아무래도 ‘검수완박’은 문재인 정권의 패착으로 역사에 남을 듯하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