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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절친…오랜만에 주연 맡은 ‘정이’가 유작이 될 줄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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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동호 장례위원장 추모글 

1989년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기념 촬영한 강수연(가운데)과 임권택 감독(오른쪽),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 [사진 김동호]

1989년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기념 촬영한 강수연(가운데)과 임권택 감독(오른쪽),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 [사진 김동호]

‘청천벽력’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 없네요.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우리의 곁을 떠나다니, 이럴 수도 있나요. 너무도 황망하고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자주 다녔던 압구정동 ‘옥혜경 만두집’에서 점심을 나누고 근처 카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땐 화색도 좋았고 건강해 보였는데….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요.

모스크바영화제에 함께 가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지도 3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때로는 ‘아버지와 딸’처럼, 때로는 ‘절친’으로 지내왔습니다. 1996년 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창설하고 난 후, 수연씨는 때로는 개·폐막식 단골 사회자로, 때로는 심사위원으로 늘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해 왔습니다. 그 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위원장으로, 또 단독 위원장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키우고 한국 영화를 산업화하는 데 크게 기여해 오셨습니다.

너무도 일찍이 당신은 스물한 살부터 ‘월드 스타’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힘들게 살아오셨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수연씨의 숙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수연씨는 지병이 있는 부모님과 큰오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누이동생을 이끌면서, 가장으로 힘들게 그러면서도 지혜롭게 살아왔습니다. 큰오빠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몇 달씩 머물면서 아예 정착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수연씨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상화해 놓고 2017년 나와 함께 영화제에서 불명예스럽게 나왔습니다. 그 직후 어머님까지 타계하시면서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4년 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고 사회활동을 중단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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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작년 10월 말 제가 맡고 있는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처음으로 등장했고, 직후에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정이’의 주연을 맡게 되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타고난 월드 스타로서 출중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이 되기를 모두가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수연씨 유작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수연씨가 응급실에 있을 때, 그리고 마지막 임종할 때, 비록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었지만 옆에서 장시간 지켜보면서 그동안 세파에 시달렸고 어렵게 살아왔던 수연씨가 처음으로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으니 저세상에선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평화롭게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수연씨의 명복을 빕니다.

김동호 장례위원장,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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