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한국타이어)는 지난해 대전공장의 위험 설비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기 위해 예산을 책정했지만 결국 계획을 취소했다. 노조가 “지나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면서다. 이 회사 배총재 안전보건 부문 담당 상무는 “24시간 운영되는 작업장에서는 상시 관리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안전을 위해 정부가 법으로 (CCTV 설치를) 강제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포스코 등 철강·건설업계서 도입 중
8일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올 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이처럼 CCTV 설치·운영을 놓고 곳곳에서 노사 간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사측은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취지를 설명하지만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과도한 감시”라는 우려가 나와서다.
정부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한 민감한 사안이라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직원 등 자격을 갖춰야 출입할 수 있는 사업장의 경우 공개된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시설 안전을 위한 목적이라고 해도 CCTV 설치는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정보 주체, 즉 직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CCTV 설치는 기업들이 중대재해 방지를 위해 가장 먼저 내놓은 대책 중 하나다. 안전 사각지대에 CCTV를 설치해 위험 요소는 없는지 사전 점검하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를 규명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게 목적이다.
건설·철강업계 등에선 이미 중대재해법 시행을 전후로 주요 작업장에 CCTV 설치를 확대한 상태다. 이를 겨냥해 에스원이나 SK쉴더스 등 주요 보안업체들은 CCTV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안전관리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작업자들이 기존 매뉴얼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거나 쓰러지는 등 이상 행동을 할 경우 AI 시스템이 이를 인지하고, 비상 경고를 내리거나 관리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방식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재해 예방을 위해 CCTV 설치를 확대하고, 작업 시 CCTV 의무 사용을 추진 중”이라며 “이를 통해 안전 사각지대를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원 스스로도 경각심을 갖고 주의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감시 가능성 농후”…설치 무산되기도
하지만 다수 기업에선 CCTV 설치·운영을 놓고 노조와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A석유화학업체의 경우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현장 인력의 안전모에 카메라와 위치정보시스템(GPS)을 부착하려고 했지만 노조 반대로 이를 시행하지 못했다. B조선업체도 주요 시설물과 출입구에 CCTV를 확대 설치하려다가 노조가 “활동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반발하자 추진을 중단했다.
배총재 상무는 “CCTV는 사고 발생 후 원인 규명에도 도움이 되지만 중앙에서 위험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예방 효과도 크다”며 “인권 침해 우려도 이해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규정 없어…노사 간 협의가 최선”
노조 측은 CCTV 설치가 감시와 통제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짙다고 맞선다. 김광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현재 중대재해법에 저촉되는 사건들은 CCTV로 확인·결정할 단계의 사고가 아니라 기본적인 안전보건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라며 “CCTV로 근무 이력을 모두 촬영하면 노동자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부분의 중대재해가 열악한 근로조건과 시스템 미비로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너무 이례적인 상황에 대한 우려를 앞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노사 간 협의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안전법이나 중대재해법에서는 CCTV 설치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강검윤 고용노동부 중대산업재해감독과장은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CCTV 설치를 지침이나 매뉴얼로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안전 이슈는 노사 모두 동일한 고민이기 때문에 양측의 협의로 결론을 도출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