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구석에 있는 내게 '춤추자' 손내민 그녀, 강수연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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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 성공한 첫 부산국제영화제, 그곳에 강수연 있었다" 

“1996년 처음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 있었습니다. 독립영화인으로 참석한 저는 폐막 파티가 열린 호텔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었죠. 그때 ‘함께 춤추자’며 손을 잡아 끌어준 이가 강수연 배우였습니다. 그 힘 있고 당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파티에 참석한 배우 강수연과 안성기. 사진 박지만 촬영감독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파티에 참석한 배우 강수연과 안성기. 사진 박지만 촬영감독

촬영감독 박지만(50)씨는 8일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처음 열린 1996년 당시 분위기를 이같이 회고했다. 당시 '푸른영상'이라는 다큐멘터리 단체 소속이었던 그는 "처음 열린 영화제였던 만큼 상당수 독립영화인이 초청돼 부산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출품 감독이 아닌 데다 일면식도 없던 20대 초반 촬영감독에게 강수연이 춤을 청했던 이유는 뭘까. 박 감독은 "당시에도 강수연 배우는 톱스타였다. 그런데도 영화제에 온 모든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친근하게 대했다. 파티에 어울리지 못하는 어린 참석자를 보고 손을 내밀어줬던 듯하다. 짧은 시간 그와 춤춘 것은 황송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강수연은 그날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영화제 폐막식을 빛냈다고 한다. 박 감독은 "해운대 해변까지 2, 3차 뒤풀이가 이어졌다. 취한 감독, 배우 등이 바다에 발을 담그며 시간을 보냈는데 강수연 배우는 그곳에서까지 사람들을 챙기며 함께했다"고 말했다. 사랑받던 톱스타가 지난 7일 예기치 못하게 세상을 뜨게 된 데 대해선 "그녀가 출연한 수많은 필름 속에서 강수연 배우는 영원할 것"이라며 애도했다.

해외 거장 호스트부터 후원 도움까지 발 벗은 조력자

강수연은 이후에도 영화제의 참석 배우로, 때로는 집행위원·사회자 등 호스트로 모습을 드러내며 조력을 마다치 않았다. 강수연은 또 다른 톱스타 안성기와 더불어 BIFF가 개막한 이래 빠짐없이 영화제를 빛낸 배우로 손꼽힌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파티에서 영화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는 강수연. 사진 박지만 촬영감독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파티에서 영화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는 강수연. 사진 박지만 촬영감독

BIFF 창설멤버인 김지석(2017년 작고) 전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 또한 강수연을 '숨은 조력자' '안방마님' 등으로 칭하며 그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15년 10월 BIFF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엮은 책 '영화의 바닷속으로'에서 "(외국 거장·배우 등) VIP급 게스트들도 그녀가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와 만남을 무척 반겼다"며 "그가 탁월한 사교성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리드했다"고 밝혔다.

BIFF는 매년 30억 원 넘는 기업 후원을 끌어내야 하는데, 강수연은 후원 조인식에도 시간을 내 참석하며 후원 기업들이 원하는 '홍보 효과'를 드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김 전 위원장은 "영화제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라며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BIFF 위기 때 구원투수, 폐막까지 책임 지켜

2014년 이른바 '다이빙벨 사태'로 위기를 맞은 이듬해 BIFF는 초유의 '공동집행위원장' 체제를 타개책으로 내걸며 강수연을 호명했다. 강수연은 위원장직 수락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영화제는 어떤 정치 성향도, 어떤 자본의 논리도, 어떤 시장에도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BIFF 사무국과 갈등을 빚은 2017년 8월 사퇴 뜻을 밝히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영화제는 개최돼야 한다. 두 달도 남지 않은 오해 영화제를 최선을 다해 개최한 다음 폐막식을 마지막으로 영화제를 떠나겠다"며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영화계와 국민 모두의 변함 없는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다이빙벨 사태는 2014년 9월 영화제 당연직 조직위원장을 맡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세월호 구조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반대하면서 촉발됐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예정대로 영화를 상영하면서 부산시와 영화제 측이 갈등했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파티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는 강수연. 사진 박지만 촬영감독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 파티에 참석해 활짝 웃고 있는 강수연. 사진 박지만 촬영감독

강수연의 비보가 전해진 7일 BIFF 측은 성명을 내고 "긴 인연을 이어온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한다.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고 영화제 운영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노고를 기억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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