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이재명 저격수’를 인천 계양을에 자객 공천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8일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윤희숙 전 의원을 출마시키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국민의힘 고위관계자는 이날 “윤 전 의원을 계양을에 전략 공천하자는 당내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윤 전 의원 계양을 공천 주장은 이재명 고문의 출마 선언이 임박하자 SNS 등 온라인 상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아이디어 차원의 주장으로 먼저 떠돌았다. 그러던 중 윤 전 의원이 지난 6일 방송 인터뷰에서 “정당에서는 선당후사라는 원칙이 있다”며 “당에서 ‘네가 꼭 필요하니 나가라’고 그러면 저는 당연히 따라야죠”라고 밝히면서 당내 논의는 진지해졌다. 공천 신청을 하지 않은 윤 전 의원 카드를 국민의힘이 꺼낸다면 전략 공천 형식이 될 전망이다.
다만 당내에선 윤 전 의원을 내세운 맞불 작전의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고위관계자는 “윤 전 의원이 출마해 6ㆍ1 지방선거 전체 판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신중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재명 고문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성남(분당갑)에서 보궐선거를 하는데도 굳이 텃밭인 계양을에 출마하는 게 모양빠지는 일 아니냐”며 “이 고문은 그냥 가만 두는 게 전체 선거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양을은 2004년 17대 총선 때 계양구를 갑·을로 분구한 이후 민주당 계열 정당이 모두 승리한 곳이다.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내려놓은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16대 총선 때 분구 전 계양구에서 첫 금배지를 단 이후 계양을에서 4선(17·18·20·21대)을 했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계양을이 민주당의 텃밭이라는 이유를 이재명 고문 출마를 비판하는 핵심 근거로 삼아왔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이 이 고문 전략 공천을 확정하자 “(이 고문이) 어떻게든 원내 입성해 본인에 대한 지리멸렬한 수사를 방탄하려는 것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윤 전 의원도 8일 이 고문의 출마 선언 뒤 페이스북에 “역사상 가장 후안무치한 피의자 도주 계획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고문의 출마 선언 문구를 인용한 뒤 “본인의 범죄 행위로 인한 정치적 위험은 수사부터 받고 깨끗이 혐의를 벗은 후에 선출직에 나오는 게 국민에 대한 기본적 도리”라며 “국회의원 배지 속으로 숨어야 살 수 있겠다는 절박한 마음을 이렇게 공세적으로 표현하는 분은 한국 정치 70년 역사에 없었고 앞으로도 있어선 안 된다”고 적었다.
국민의힘은 전략적 득실 계산을 위해 8일 계양을 지역에 대한 자체 여론조사에 착수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윤 전 의원의 경쟁력이 상당하다면 전략 공천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윤희숙 카드’는 소멸할 수 있다.
일각에선 19대 총선 때 민주당 간판으로 이곳에서 당선됐던 최원식 전 의원을 출마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천 출신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활동한 그는 2016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이번 대선 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돕다가 최근 국민의힘에 합류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의원이 이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라면 지역 연고가 있는 최 전 의원을 공천하는 게 전략적으로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9일 회의에서 계양을 지역 공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윤 전 의원은 2020년 7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임대차 3법 비판 연설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경제학자 출신인 그는 이재명 전 고문이 대선 때 주장한 기본소득 정책을 예리하게 공격하며 ‘이재명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정치적 몸집을 키웠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원회의 ‘국민의힘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에 윤 전 의원의 부친이 세종시에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포함되며 시련을 겪었다. 서울 서초갑 지역구 의원이던 그는 권익위 발표 이틀 뒤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고,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사직안이 통과돼 금배지를 뗐다.
최근엔 의원직 사퇴 당시 약속한 대로 부친이 투기 의혹을 받은 세종시 땅을 매각한 뒤 차익을 전액 기부한 게 확인되기도 했다. 윤 전 의원 부친은 지난 2월 7일 세종시 땅을 매각했고, 6억1000만원의 매매차익 중 양도소득세로 3억1000만원을 납부하고 남은 3억원을 지난 3월 2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