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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가 지켜본 강수연 임종…"처음 보는 평화로운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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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강수연 당시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당시 이사장. [중앙포토]

2017년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강수연 당시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당시 이사장. [중앙포토]

‘청천벽력’ 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 없네요.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우리의 곁을 떠나다니 이럴수도 있나요. 너무도 황당하고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자주 다니던 압구정동 ‘옥혜경 만두집’에서 점심을 나누고 근처 카페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눈 것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땐 화색도 좋았고 건강해 보였는데…. 이럴 수도 있는 것인가요.

김동호 전 부산영화제 이사장 추모글

모스크바 영화제에 함께 가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지도 33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때로는 ‘아버지와 딸’처럼, 때로는 절친으로 지내왔습니다.
1996년 제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창설하고 난 후, 수연씨는 때로는 개‧폐막식의 단골 사회자로, 때로는 심사위원으로, 늘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해왔습니다. 그 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위원장으로, 또는 단독 위원장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키우고 한국영화를 산업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해오셨습니다.

1989년 8월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함께 기뻐하는 모습. 왼쪽부터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임권택 감독, 강수연 배우,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 [사진 김동호]

1989년 8월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강수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함께 기뻐하는 모습. 왼쪽부터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임권택 감독, 강수연 배우, 김동호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 [사진 김동호]

너무도 일찍이 당신은 스물한살부터 ‘월드스타’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힘들게 살아오셨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수연씨의 숙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수연씨는 지병이 있으신 부모님과 큰오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누이동생을 이끌면서 가장으로 힘들게, 그러면서도 지혜롭게 살아왔습니다. 큰오빠를 편안하게 모시기 위해서 말레이시아에 몇 달씩 머물면서 아예 정착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수연씨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상화 시켜놓고 2017년 나와 함께 영화제에서 불명예스럽게 나왔습니다. 그 직후에 어머님까지 타계하시면서 그 충격에 벗어나지 못해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4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사회활동을 중단해왔었습니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배우 강수연 장례식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자필로 적어 보내온 추모글.

영화인장으로 치러지는 배우 강수연 장례식의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이 자필로 적어 보내온 추모글.

그러다가 작년 10월말 처음으로 제가 맡고 있는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처음으로 등장하셨고 직후에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는 ‘정이’라는 영화에 주연을 맡게 되어 너무나 기뻤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타고난 월드스타로서의 출중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입증시키고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이 되기를 모두가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수연씨의 유작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수연씨가 응급실에 누워있을 때와 마지막 임종할 때에 비록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었지만 옆에서 장시간 지켜보면서, 그동안 세파에 시달렸고 어렵게 살아왔던 수연씨가 처음으로 평화로운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곁을 떠나셨으니 앞으로 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평화롭게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강수연씨의 명복을 빕니다.

김동호 장례위원장,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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