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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승 따고, 손흥민 같은 선수 발굴 꿈"...'럭비 히딩크' 찰스 로 감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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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로 한국 럭비대표팀 감독. [사진 대한럭비협회]

찰스 로 한국 럭비대표팀 감독. [사진 대한럭비협회]

'럭비 히딩크'로 불리는 찰스 로 럭비 대표팀 감독 "월드컵 1승 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목표"라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럭비 히딩크'로 불리는 찰스 로 럭비 대표팀 감독 "월드컵 1승 후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목표"라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변수냐고요? 예상했던 일이고, 대비도 했습니다.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하면 아무런 걱정 없습니다."

7일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만난 찰스 로 한국 럭비 대표팀 감독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전날 무기한 연기됐다. 갑작스런 소식이지만, 로 감독은 비상 회의 없이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 2022 코리아 슈퍼리그 경기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국가대표 옥석 가리기 중이었다.

다음 달 2023 프랑스 럭비 15인제 월드컵 아시아 예선과 오는 9월 2022 남아공 럭비 7인제 월드컵에 나설 멤버다. 로 감독은 "아시안게임과 월드컵이 겹쳐 고민했는데, 오히려 잘 됐다. 올해 월드컵은 주축 멤버로 치른 뒤, 세대 교체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도전하겠다. 차세대 선수들은 이미 낙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수시로 고개를 돌려 경기 중인 선수들과 플레이를 체크했다.

2002 남아공 럭비 7인제 월드컵 진출권을 따낸 한국 럭비 대표팀. [사진 아시아 럭비 공식 트위터]

2002 남아공 럭비 7인제 월드컵 진출권을 따낸 한국 럭비 대표팀. [사진 아시아 럭비 공식 트위터]

로 감독은 7·15인제 대표팀 감독 외에도 대한럭비협회 경기력향상위원장, 유·청소년 럭비 총괄까지 맡고 있다. 그는 "최근 진도를 다녀왔다. 진도실고 럭비부 선수들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한국 사람도 많이 안 가본 곳이라고 들었는데, 난 럭비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팔도 어디든 달려간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축구의 손흥민과 같은 세계적은 스타 선수가 럭비에서도 나올 수 있다. 잠재력과 폭발력을 가진 선수가 많은데, 노력만 한다면 내가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대표팀 기술 고문으로 합류해 2021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로 감독은 한국 럭비의 '거스 히딩크'로 불린다. 실업팀 4개, 성인 선수 100여 명 뿐인 '럭비 황무지' 한국을 3년 만에 아시아 강팀으로 끌어올려서다. 이 기간 한국은 2020 도쿄올림픽(7인제) 예선에서 아시아 최강 홍콩을 꺾고 사상 첫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1923년 럭비가 국내에 도입되고 100년 만의 쾌거였다. 지난해 12월 2021 아시아 7인제 시리즈 겸 2022 남아공 월드컵(9월) 아시아 예선 준결승에선 디펜딩 챔피언 일본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우승(홍콩)·준우승(한국) 팀에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 출전권을 따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건 2005년 이후 17년 만이다.

한국 럭비 로 감독은 지도 아래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을 일궜다. [연합뉴스]

한국 럭비 로 감독은 지도 아래 사상 첫 올림픽 진출을 일궜다. [연합뉴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과 견줄 만한 성과다. 로 감독은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명장이라고 들었다. 히딩크와 비교돼 영광이지만, 내 성과는 그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이 더 강한 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만큼은 히딩크 못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분석은 로 감독의 성공 비결이다. 훈련마다 영상과 모션 센서 등을 활용해 활동량과 동선을 체크해 선수 활용법과 팀 전술을 결정한다. 개인 컨디션에 따라 전술이 팔색조처럼 바뀐다. 일부 프로 스포츠에선 이미 도입됐지만, 국내 럭비에선 신기술에 가깝다. 데이터 분석해 맞춤식 전술을 짜는 데는 수십 일이 걸린다.

일찍 현역 은퇴한 로 감독은 세계 1위 남아공에서도 실력으로 인정 받은 지도자다. [연합뉴스]

일찍 현역 은퇴한 로 감독은 세계 1위 남아공에서도 실력으로 인정 받은 지도자다. [연합뉴스]

로 감독의 통역을 맡은 오승윤 씨는 "식사와 훈련 시간 외엔 방에 틀어박혀 영상 분석과 전술 연구에 몰두한다. 럭비 밖에 모르는 분"이라고 전했다. 로 감독은 "한국의 주력 종목인 7인제는 경기 시간이 7분에 불과하다. 짧은 시간 안에 승부해야 하기 때문에 극한의 체력은 물론 세밀하고 강력한 전술이 있어야 득점할 수 있다. 한국 선수들의 체격과 능력은 유럽 선수 못지 않기 때문에 전술 수행 능력만 쌓으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 감독은 자신의 '황금 인맥'도 적극 활용한다. 그는 친분이 두터운 잉글랜드(15인제) 에디 존스 감독, 마이크 프라이데이 미국(7인제) 감독 등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전술과 정보를 교환한다. 네 살 때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럭비를 시작한 로 감독은 부상으로 1986년 21세의 젋은 나이에 은퇴했다. 이후 감독으로 변신한 그는 남아공 프로 팀 샤크스와 남아공 18세 이하(U-18) 대표팀을 이끌었다. 그가 지도한 U-18 선수 중 상당수가 남아공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국제 럭비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남아공은 세계 랭킹 1위다.

로 감독은 전국 팔도를 오가며 선수를 살핀다. 이미 차세대 국가대표까지 낙점했다. 피주영 기자

로 감독은 전국 팔도를 오가며 선수를 살핀다. 이미 차세대 국가대표까지 낙점했다. 피주영 기자

2009년부턴 일본으로 무대를 옮겨 캐논 클럽과 일본 유통경제대에서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미국계 혼혈 국가대표 안드레 진은 "감독님이 교류하는 감독 면면을 알고 깜짝 놀랐다. 축구로 따지면 알렉스 퍼거슨, 펩 과르디올라, 조제 모리뉴 등 수퍼 스타 사령탑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셈이다. 제자 중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같은 수퍼 스타가 많다. 이런 분에게 지도 받을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직 한국이 서툰 로 감독은 말보단 스킨십을 통해 선수들과 소통한다. 로 감독은 선수들에게 '찰리(찰스의 애칭) 삼촌'으로 불릴 만큼 격 없이 지낸다. 진은 "대표팀에선 감독님과 하루에도 수 차례 대화한다. 통역과 함께 방에 찾아오셔서 '밥은 먹었는지' '부모님은 건강하신지' '고민은 있는지' 등 일상 얘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사제지간에 끈끈한 정과 조직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로 감독은 '럭비 손흥민'도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연합뉴스]

로 감독은 '럭비 손흥민'도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연합뉴스]

로 감독의 리더십을 통해 한국 럭비가 발전하는 과정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한 영화 '인빅터스(2010년)'의 줄거리와 닮았다. 1994년까지 국제 럭비계 만년 꼴찌 팀이었던 남아공이 넬슨 만델라 당시 대통령과 주장 프랑수아의 리더십 아래 이듬해 자국 월드컵에서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한다. '하나의 팀, 하나의 국가'를 슬로건으로 똘똘 뭉친 1995년 남아공은 월드컵에서 최강 뉴질랜드를 꺾고 사상 첫 우승컵을 든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로 감독은 "아시아는 아직 럭비 변방이지만, 선수 전원이 '원 팀'이 된다면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올해 월드컵에서 사상 첫 승이 목표다. 그다음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한국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건 홈에서 열린 2002년 대회가 마지막이다. 2006년부턴 일본, 홍콩에 밀려 3연속 동메달이다. 로 감독은 "고향에서 열리는 대회에 한국 선수들과 자부심 느낄 수 있는 결과를 갖고 돌아오겠다. 세계 정상급 팀과 격차는 크다. 그러나 대진운이 따라준다면 1승은 충분히 가능하다. 역사를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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