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애들 짓?…고교 축제 성추행, 에스파만 당한게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08 09:00

업데이트 2022.05.08 16:11

 2일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경복고를 방문한 이후 SNS에 올라온 게시물.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2일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경복고를 방문한 이후 SNS에 올라온 게시물.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지난 2일 서울 경복고 동문회 행사에서 찬조 공연을 한 아이돌 그룹 에스파를 대상으로 일부 학생들이 성희롱성 게시글을 올려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공연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에스파 멤버들의 사진과 함께 ‘만지는 거 빼고 다했다’ 등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경복고 사건 이전에도 축제 등 행사에서 공연하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성추행 등의 범죄는 반복돼왔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중단됐던 학교 축제가 재개되면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교육 당국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교 축제 성추행 반복되는데…후속 조치는 미비

2018년 11월 3일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집회에서 참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김정연 기자

2018년 11월 3일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열린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쿨미투 집회에서 참여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김정연 기자

고교 축제서의 성범죄는 과거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2015년 인천의 한 남고 행사에서 찬조 공연을 한 댄스동아리 여학생들을 집단 성추행한 사건이 지역 언론에 보도돼 충격을 줬다. 2018년 한국 사회를 휩쓴 ‘스쿨 미투’ 운동도 충북여중 축제에서 한 남성이 댄스동아리 학생을 불법촬영한 사건을 SNS에서 공론화하면서 널리 퍼졌다.

지난해에는 천안의 한 남고 학생들이 인근 여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성적인 모욕을 한 사건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알려졌다. 사건이 공론화되자 피해 학생들의 제보가 속출했다. 이 여고의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제보자는 “남고 학생들이 축제 때 여고 댄스동아리를 보며 온갖 성희롱을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용기 있는 고백’이 이어지자 정부는 학내 성폭력 문제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조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화제가 된 사건들도 가해 학생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 사건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피해자 보호 단체들은 관련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신고조차 어렵다고 말한다. 최유경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는 “학교 내 센터가 있지만 비밀 유지가 안 되거나 2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익명 신고의 접근성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복고·서울시교육청, “성인지 교육 하겠다”

지난 2일 경복고등학교 측이 에스파 성희롱 논란과 관련해 2차 사과문을 올렸다. [경복고 홈페이지 캡처]

지난 2일 경복고등학교 측이 에스파 성희롱 논란과 관련해 2차 사과문을 올렸다. [경복고 홈페이지 캡처]

앞서 경복고는 1차 사과문에서 외부인의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보여 비판을 받았다. 이후 2차 사과문에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공연 관람예절과 사이버 예절 및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다시 사과했다.

문제가 된 게시글을 올린 재학생 1명에 대해 징계 조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경복고 교사는 “행사에서 일부 애들이 그런 것은 지도하면 되는 거지, 언론에서 관심 가질 사안은 아니다”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에도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민원이 폭주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성인지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시교육청은 다음 주 중 경복고를 방문해 징계 조치와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최유경 활동가는 “현재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인지 교육은 ‘성폭력 예방 교육’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 문화를 전반적으로 고찰하는 적극적인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순 호기심 치부 안 돼”

2020년 4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 엄중 처벌 및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4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텔레그램 N번방 가해자 엄중 처벌 및 교육계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의 청소년 성범죄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온라인 성폭력이 제재당하지 않으면 실제 성폭력 범죄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 입법조사관은 “고등학생의 범죄를 단순 호기심이라고 보는 분위기에서 피해자들만 상처받는 일이 계속됐다. 온라인에서 행해지는 혐오 표현들을 우리 사회가 중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징계와 처벌에 앞서 사전에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인 괴롭힘이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불법촬영물 외의 성적인 폭력, 괴롭힘에 대한 연구와 제도가 전무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최윤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을 대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인격적 개체로 대하는 관점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연예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적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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