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성폭 피해자 법정 세워야' 헌재 결정에...대법, 유죄 판결 파기 환송

중앙일보

입력 2022.05.08 09:00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원. 연합뉴스

초등학생 때 친구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사건 2년 만에 다시 법원에 피해 사실을 진술하게 됐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법정에 꼭 출석하지 않더라도 피해 사실을 진술한 영상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해왔지만,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이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13세미만미성년자위계등간음) 등 혐의를 받는 A씨의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해 환송한다고 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20년 자신의 딸의 친구인 B양을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하고 추행한 혐의를 받는다. 1, 2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B양의 진술을 녹화한 영상물을 증거로 인정했고, 이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특히 2심 재판부는 A씨가 성폭력 범죄로 징역형을 받은 전력이 2회나 있는데도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점도 지적했다.

그런데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A씨가 B양의 진술 영상을 증거로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B양에 대한 증인신문 없이 심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조사 과정에 동석했던 신뢰관계인만 법정에 나가서 영상 속 진술이 실제 진술과 맞는지 인정하면 영상물을 증거로 할 수 있었다. 미성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우려한 조치였다. 그런데 이를 명시한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면서, 상고심 중이던 A씨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 헌재는 이 조항이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제한한다"며 위헌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A씨 사건은 헌재가 위헌이라고 본 성폭력처벌법 제30조 6항에 따라 심리된 것은 아니고,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성보호법 제26조 제6항에 의한 것이었다. 내용이 같은 조항이라고 하더라도 청소년성보호법 조항에 대해서는 헌재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은 만큼, 이 조항을 어떻게 볼지도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위헌이 선언된 성폭력처벌법 규정과 내용이 동일한 청소년보호법 규정을 위헌성 고려 없이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헌재 규탄 기자회견. 뉴스1

지난달 12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헌재 규탄 기자회견. 뉴스1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에 따라, 재판 결과를 기다리던 미성년 피해자들이 다시 법정에 서야 하는 사건은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 판결이 나온 지난달 14일에는 A씨 사건과 같이 청소년성보호법 조항이 쟁점이 된 친족 간 강제추행 사건 1건도 파기환송됐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피해자 진술 영상의 속기록에 대해서는 증거로 동의했지만, 대법원은 미성년인 피해자가 직접 증인으로 나오지 않았던 만큼 속기록 역시 유죄의 증거로 쓰기 어려워졌다고 봤다.

앞으로 미성년 피해자들이 법정에서 피해 경험을 반복적으로 진술해야 하는 데다 반대 신문 과정을 거치며 2차 피해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대법원은 이를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종합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를 증인 출석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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