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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클빅' 대신 '프로보노' 택했다…'설로생'들의 빛나는 도전

중앙일보

입력

윤모(38)씨는 지난 2020년 9월 한 보험사로부터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당했다. 2011년에 연루된 보험사기 사건 때문이었다. 윤씨와 전 남편 등은 허위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 238만원을 받은 혐의로 2013년 벌금형을 받았다. 보험사는 10년이 지나 받은 보험금을 물어내라며 윤씨 등에게 소송을 걸었다. 그런데, 윤씨는 지적장애 3급으로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급된 보험금 역시 전 남편과 나머지 일당에게 지급됐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공익법률센터가 한 장애인단체 요청으로 맡은 사건의 내용이다. 실제 사건을 다루는 임상 법학 과목인 ‘지역사회법률구조클리닉’에서 윤씨의 사건을 다루면서 ‘설로생(서울대 로스쿨생)’들은 변호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인 김남희 변호사(연수원 32기)와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 7명이 참여했다. 로스쿨 3학년생 박가영(26)씨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윤씨가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고려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에 대한 구제 절차 없이 형사 판결을 민사 소송의 증거로 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 논의가 많이 됐다”고 했다.

학생들이 작성한 서면과 조사한 판례가 변론에 활용됐고, 법원은 지난해 9월 윤씨에 대한 보험사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

수업과 소송 연계한 공익 전담 법률센터

오른쪽부터 파키스탄 난민 부부 사건을 맡았던 김인희 서울대 로스쿨 공익법률센터 지도변호사, 김남희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 안준혁 서울대 로스쿨 학생이 4일 오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공익법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오른쪽부터 파키스탄 난민 부부 사건을 맡았던 김인희 서울대 로스쿨 공익법률센터 지도변호사, 김남희 공익법률센터 임상교수, 안준혁 서울대 로스쿨 학생이 4일 오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공익법률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서울대 공익법률센터는 윤씨와 같은 사회 취약 계층을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한다. 센터는 지난해 교내 구성원을 대상으로 160건의 법률 상담을 진행했다. 명예살인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온 파키스탄 출신 부부의 난민 인정 소송에서 승소하는 등 20건의 법률구조 사건을 맡았다. 이런 활동이 서울대 로스쿨과 ‘프로보노’를 잇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프로보노는 ‘공익을 위한 무료 법률봉사’라는 의미로 라틴어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를 줄인 말이다.

공익법률센터는 로스쿨 졸업생 대부분이 대형 로펌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대의 ‘공익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서울대 로스쿨 설립 당시 내세웠던 특성화 분야가 기업금융·국제법무·공익인권이었다. 하지만, 지난 10여년 간 공익 분야 진출은 활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의 한 학생은 “보통은 졸업하고 소위 말하는 ‘검클빅’(검찰, 재판연구원, 대형로펌)을 많이 간다. 방학 때 실무수습도 대형로펌 인턴을 나가지, 공익기관 쪽으로 나가는 친구들은 많이 없었다”고 말했다.

법으로 사람을 돕는다는 불씨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사진 서울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사진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설립 이후 설로생들의 공익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라고 한다. 박씨는 “(개인적으로) 사회 보장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직접 사건을 해보면서 공익 활동 변호사의 삶을 면밀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서 공익 사건에 대한 수요는 높은 편이다. 수강신청도 치열하다”고 덧붙였다.

파키스탄 부부의 난민 인정 사건 서면 작성에 참여한 로스쿨 2학년생 안준혁(27)씨는 “조금은 호기심에서 시작했고, 전혀 모르는 분야를 탐구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면서 “이걸 업으로 삼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무얼 하든 ‘법으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불씨를 품고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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