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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3% 전쟁으로 떠받친 지지율, 푸틴 실각땐 러 혼란 [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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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특집] 블라디미르 푸틴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연합뉴스]

63%(2021년 11월)→71%(2022년 2월)→83%(3월).

블라디미르 푸틴(69)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 지지율 추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63%였던 지지율이 개전 이후 훌쩍 뛰어올랐다. 여론조사를 진행한 레바다센터의 데니스 볼코프 국장은 “서방 제재가 점점 조여오는 상황에서 러시아 국민은 푸틴 중심으로 결집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위기를 만들고, 자신을 해결사로 부각시키며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푸틴의 이같은 통치 성향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정체성 정치인(identity politicians)'이라고 규정했다. '현대판 차르'로 불리는 푸틴은 집권 내내 제손으로 주변국을 공격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킨 뒤 국민들에게 "외부 공격에 맞서는 위대한 러시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집권 정당성을 다져왔다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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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명'에서 '현대판 차르'로

푸틴 대통령은 2000년 5월, 48세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해 4년 임기를 연임했다. 2008년 헌법상 3연임 금지 규정에 밀려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임기 6년 중임제의 대통령에 선출돼 다시 연임에 성공했다. 2020년 국민투표를 통해 '동일 인물의 두 차례 넘는 대통령직 수행 금지' 조항이 포함된 개헌안을 통과시킬 때 그 자신은 예외로 하면서 집권 기간을 최대 2036년까지 연장했다. 이렇게 되면 이오시프 스탈린(재임 1922~53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뛰어넘어 러시아 현대사의 최장기 집권자가 될 수 있다. 총리 재임 기간을 제외해도 크렘린궁에서만 32년간 머무르며 84세까지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식에서 러시아군을 사열하고 있다.[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기념식에서 러시아군을 사열하고 있다.[AP=연합뉴스]

대통령 취임 직전까지, 푸틴은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무명에 불과했다. 보리스 옐친(1931~2007) 당시 러시아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운좋게 권력을 물려받은 그가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것이란 대다수의 전망은 빗나갔다. 이 같은 그의 승승장구에 주변 약소국 침공이 있었단 건 유명한 사실이다.

푸틴은 1999년 8월 러시아 연방 남부 캅카스 지역의 체첸 자치공화국을 침공해(2차 체첸 전쟁) 2000년 2월 무력으로 굴복시켰다. 소련 해체 직후 바닥에 떨어진 러시아인의 자존심, 서방의 압력에 무기력했던 옐친 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면서 대중적 인기가 치솟았다. 푸틴은 그해 치른 첫 대선에서 53%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때마침 찾아온 국제 고유가 상황에다 원자재 가격까지 치솟으면서 1998년 채무불이행(디폴트)까지 몰렸던 러시아 경제가 황금기로 급변했다. 그는 '러시아의 구원자' 이미지를 어필하며 71%를 득표해 2004년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 총리로 물러 앉아 있을 동안 조지아 침공을 주도했다. 부쿠레슈티 선언을 통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염원을 환영한다"고 밝혔던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8월8일)에서 전날 '조지아 침공'을 밝히는 그의 득의양양한 표정은 역사의 한장면으로 남았다. 나토 동진(東進)에 반발심이 컸던 러시아에서 푸틴의 이같은 행동은 '서방에 맞선 강한 지도자'로 각인되면서 역대 최고 지지율(88%)을 기록했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여름올림픽 개막식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당시 러시아 총리가 조지 W 부시(가운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했음을 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여름올림픽 개막식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당시 러시아 총리가 조지 W 부시(가운데)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조지아를 공격했음을 알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2년 대통령에 세번째 당선된 푸틴은 2년 뒤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 강제합병에 성공한다. 전승 소식에 지지율도 80%대로 급상승했다. 이 같은 행보를 가리켜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러시아 국민들은 세계 무대에서 강력한 인물로 행진하는 푸틴과 러시아의 정체성을 동일시하며, 소련 해체 이후 트라우마를 극복해갔다"고 지적했다.

"푸틴, 종신 집권 위해 전쟁 필요" 

레온 아론 미국기업연구소 러시아연구원은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 기고문에서 "과거 경험을 통해, 푸틴은 종신 대통령이 되려면 전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도 "오는 2024년 그가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레바다센터의 여론조사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가 본격화 되기 전인 지난해 10월 40% 이상이 '푸틴의 2024년 복귀를 원하지 않는다'고 집계됐다.

지난해 푸틴의 정적인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극물에 중독돼 생사를 오간 일이 전세계에 생중계 됐고, 수만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나발니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이례적인 사건도 있었다. 당시 그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59%였다.

푸틴의 기대대로, 지난 2월24일 개전 직후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상승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교착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푸틴이 과거와 같은 '손쉬운 승리'를 거두고 집권 연장의 도구로 삼기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선 그가 최근 공식석상에서 보이는 말과 행동의 불안정성을 들어 정신적 불안증 외에 '암수술 가능성' 등 건강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절대권력' 푸틴, 실각시 '러시아 대혼란' 관측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의 만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리스트들과의 만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푸틴의 절대권력이 너무 큰 상황에서 러시아의 후계 구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서방 언론은 푸틴의 실각은 미국이나 중국 지도자보다 훨씬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푸틴이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내 ‘질서 있는 권력 이양 장치’를 제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된다. 절차대로라면 미하일 미슈스틴(56)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 하지만 그는 푸틴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이나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이 아니다. 권력 기반이 두텁지 못해 고전할 것이란 게 서방 외교가의 관측이다.

엘리트 간 권력 쟁탈전을 통해 푸틴 후임자가 선출될 거란 관측이 우세하다. 브라이언 테일러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안전보장이사회 부의장, 바체슬라프 볼로딘 두마(하원) 의장,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등이 후보군"이라고 지목했다. 쇼이구는 '푸틴의 오른팔'로 불리는 현 국방장관, 메드베데프는 푸틴이 잠시 총리로 내려가 있을 때 대통령을 맡아 '푸틴의 꼭두각시'로 불렸던 인물이다. 볼로딘과 소뱌닌 역시 푸틴의 최측근이다.

2019년 5월 2차 세계대전 전승절을 앞두고 러시아 군이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AP=연합뉴스]

2019년 5월 2차 세계대전 전승절을 앞두고 러시아 군이 기념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AP=연합뉴스]

러시아 탐사보도 저널리스트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서방 제재로) 경제난이 이어지면 실로비키(Siloviki·무력부처 관련 정치 관료)가 (정권 교체를 위해)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의 안위보다 개인적 이익에 관심이 높은 실로비키는 푸틴이 더이상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지켜주지 못할 경우, 정권 교체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관측했다.

푸틴 실각 이후 '푸틴 정권'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당체제나 군부독재 대신, 가장 지속성이 약한 '1인독재' 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1인독재에서 정권이 붕괴되지 않고 이양된 경우는, 시리아의 하페즈 알아사드(1930~2000)와 북한의 김일성(1912~94) 등 가족에게 권력을 넘겨준 경우뿐이다. 그러나 푸틴은 딸들에게 통치를 위한 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형태로든 푸틴의 종말은 오고 있으며, 러시아의 미래는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 테일러 교수의 불길한 예언이자 경고다.

※ 이 기사는 5월 7일 선보인 [후후월드 특집] 블라디미르 푸틴 ㊤편의 후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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