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책 출간 60주년…오늘도 새와 곤충은 죽어간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12:00

업데이트 2022.05.17 16:51

지난 1월 2일 아랍에미리트에 폭우가 내린 후 부르즈 칼리파 두바이 타워 근처에 빗물 웅덩이가 생기면서 화려한 플라밍고가 모여 들었다. AFP=연합뉴스

지난 1월 2일 아랍에미리트에 폭우가 내린 후 부르즈 칼리파 두바이 타워 근처에 빗물 웅덩이가 생기면서 화려한 플라밍고가 모여 들었다. AFP=연합뉴스

"미 대륙 한가운데쯤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마을이 하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전에는 아침이면 울새, 검정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새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금지한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아니고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수많은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레이철 카슨과 1962년에 출간된 저서 '침묵의 봄'.

레이철 카슨과 1962년에 출간된 저서 '침묵의 봄'.

침묵의 봄. 국내 번역판

침묵의 봄. 국내 번역판

인용이 길어졌습니다. 레이철 카슨의 책 '침묵의 봄' 머리글(序文)을 줄인 것입니다.
20세기 환경 운동의 바이블로 불리는 '침묵의 봄'이 1962년에 출판됐으니, 올해로 꼭 60주년이 됩니다. 카슨은 이 책에서 DDT를 비롯한 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했는데, 출판 당시 큰 논란을 불러 있으켰습니다.
이 책은 1970년 '지구의 날'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미국 내 환경 관련 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카슨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카슨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새와 곤충의 숫자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물론 새가 줄어드는 원인이 살충제 탓만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조류 1만994종의 48%가 감소 추세

지난 1월 29일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레이크를 찾은 겨울철새. AP=연합뉴스

지난 1월 29일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레이크를 찾은 겨울철새. AP=연합뉴스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과 미국 코넬대학, 버드 라이프 인터내셔널 등에 소속된 국제연구팀은 최근 '환경 자원 연간 리뷰(Annual Review of Environment and Resources)'에 '세계 조류(鳥類) 현황'이란 제목의 리뷰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목록 데이터를 활용해 전 세계 조류 1만994종의 개체 수 변화 파악했습니다.
분석 결과, 1960년대 말이나 1980년대, 2000년대 등 과거와 비교했을 때 조류 종의 48%(5245종)는개체 수가 감소하거나 감소가 의심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정적인 경향을 보인 것은 39%(4295종), 개체 수가 늘어난 종은 6%(676종)이었습니다. 나머지 7%(778종)는 추세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북미의 종은 57%(529종 가운데 303종)가 감소 추세를 보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유럽의 경우도 상황이 비슷해 1980~2017년 사이 387종 전체적으로 숫자가 17~19%가량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5억6000만~6억2000만 마리가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오가는 철새의 경우는 1970년 이후 40% 이상이 줄었습니다.

현재 새 멸종 속도는 과거의 6배

지난 2월 9일 페루 이슬라 페스카도레스 인근에서 스페인 선적의 렙솔호가 태평양으로 1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유출한 후 바닷새가 떼죽음을 당했다. 국립자연보호지역국(SERNANP)의 수의사인 지안카를로 잉가 디아즈가 바다에서 기름으로 뒤덮인 죽은 바다새를 골라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월 9일 페루 이슬라 페스카도레스 인근에서 스페인 선적의 렙솔호가 태평양으로 1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유출한 후 바닷새가 떼죽음을 당했다. 국립자연보호지역국(SERNANP)의 수의사인 지안카를로 잉가 디아즈가 바다에서 기름으로 뒤덮인 죽은 바다새를 골라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현재 IUCN 목록은 현존하는 조류 종(1만994종)의 13.5%인 1481종을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취약종(Vulnerable, VU)이 798종(7%), 멸종 위험종(Endangered, EN)이 460종(4%), 심각하게 멸종 위험에 처한 종(Critically Endangered, CR)이 223종(2%)입니다.
멸종 위험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부족한 종(Data Deficient, DD)으로 분류한 것도 52종(0.5%)이 있습니다.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된 새 가운데 73%인 1088종은 성숙한 개체의 숫자를 다 합쳐도 1만 마리가 채 안 됩니다. 이 중 595종은 2500마리 미만, 69종은 50마리 미만의 성숙한 개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연구팀은 '적색 목록 지수(Red List Index)'라는 수치를 통해 멸종 위기종의 생존 확률 혹은 멸종 위험을 계산했는데, 이 수치는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조류의 보전 상태가 꾸준히 악화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조류 종이 멸종할 평균 확률이 연간 0.0217%에 이른다고 계산했는데, 이는 과거 600년 동안의 멸종 확률의 6배에 이르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새들이 줄어드는 다양한 원인을 나열했습니다.
우선 섬 지역 멸종입니다. 1500년 이후 최소 187종의 새가 멸종했는데, 그중 90%는 섬 지역에 살던 고유종입니다.
이 가운데 52종은 쥐와 같은 설치류 탓에, 40종은 고양이 때문에 멸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전에 없던 포유류가 섬에 도입된 것이 조류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 셈입니다.

미국 매년 3억 마리 이상 충돌로 숨져

지난해 9월 12일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 20주년을 추념하기 위해 설치한 두 개의 수직 서치라이트 조형물(The Tribute in Light). 이런 인공 조명은 주변을 이동하는 새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화=연합뉴스

지난해 9월 12일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 20주년을 추념하기 위해 설치한 두 개의 수직 서치라이트 조형물(The Tribute in Light). 이런 인공 조명은 주변을 이동하는 새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화=연합뉴스

연구팀은 ▶다양한 새들의 서식지인 열대림이 감소한 것을 비롯한 산림 벌목과 같은 토지 이용의 변화 ▶서식지의 파편화(조각조각 나눠짐)와 황폐화▶지중해 지역에서만 연간 1100만~3600만 마리의 새가 포획되는 등 사람에 의한 사냥·포획 ▶미국에서만 매년 약 24억 마리의 새가 고양이에게 목숨을 잃는 등 외래종의 침입과 질병을 조류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만 매년 약 3억 6500만~9억 8800만 마리의 새가 건물에 충돌해 죽는 등 건축물과 풍력 발전기, 전력망 등과의 충돌 ▶미국 뉴욕 9.11 테러 현장의 빛 조형물(88개의 수직 서치라이트)이 매년 일주일씩 7년 동안 가동되면서 110만 마리의 새들에게 영향을 준 사례와 같이 인공조명의 영향 ▶캐나다에서만 매년 270만 마리의 새가 살충제 섭취로 죽는 것과 같은 농약·약물 중독 ▶살충제 사용에 따른 곤충 먹이의 부족 ▶플라스틱 섭취와 그물에 엉킴 ▶기후변화에 따른 최적 서식지의 이동이나 축소 등도 원인으로 들었습니다.

연구팀은 "줄어드는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보호지역 지정을 확대하고, 보호지역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연구팀은 또 "기후변화 방지와 종 다양성 보전을 함께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훼손된 토지를 복원하면 잠재적인 멸종을 방지하고,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나가지 않도록 산림과 초지 등에 붙잡아둘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섬 지역에서 침입 동물을 제거하고, 불법적인 조류 포획과 도살을 방지하기 위한 인식 제고와 대책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의 경우 응급조치로 사육시설 등에서 '포획 번식'하는 전략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내 겨울철새 숫자는 둘쭉날쭉 

입춘인 지난 2월 4일 강원 철원군 한탄강변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 큰고니 등 겨울철새 무리가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입춘인 지난 2월 4일 강원 철원군 한탄강변에서 두루미와 재두루미, 큰고니 등 겨울철새 무리가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한편. 국내에서는 황새나 따오기 같은 멸종 위기 조류를 번식해서 방사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세계적인 멸종 위기종인 저어새도 한반도를 찾는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겨울철 한국을 찾는 철새 숫자는 해마다 들쭉날쭉합니다. 지난 1월 137만 마리의 겨울철새가 관찰돼 2020년 1월 163만 마리나 2021년 1월의 148만 마리보다는 숫자가 작았습니다.

2018년 환경부 의뢰로 국립생태원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연간 약 788만 마리의 야생 조류가 투명 방음벽이나 건물 유리창 등 인공 구조물에 부딪혀 폐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매일 2만 마리가 희생되는 셈입니다.
농약 살포로 인한 집단 폐사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곤충 감소도 심각한 상황 

미국 뉴욕 공원에서 자라고 있는 밀크위드에 붙은 제왕나비. 제왕나비는 유액을 분비하는 밀크위드에 알을 낳는데, 밀크위드의 감소로 제왕나비도 줄어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뉴욕 공원에서 자라고 있는 밀크위드에 붙은 제왕나비. 제왕나비는 유액을 분비하는 밀크위드에 알을 낳는데, 밀크위드의 감소로 제왕나비도 줄어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연구팀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곤충의 감소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연구팀은 전 세계 6000여 곳의 토지 이용 현황과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곤충 1만8000여 종의 개체 수가 최근 20년간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했습니다.
연구 결과, 집약도가 낮은 농법을 쓰는 곳에서는 곤충 개체 수와 서식 종 수가 각각 7%와 5% 줄어드는 데 그쳤지만, 대규모 개간과 화학비료, 살충제 등이 따르는 집약 농법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곤충 개체 수가 63%, 서식 종수는 61%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기후변화가 곤충의 종 다양성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데, 낮은 집약도 농업 환경에서는 이런 해로운 영향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독일 통합 생물 다양성 연구센터 연구팀은 지난 2020년 4월 사이언스에 전 세계 곤충 개체 수가 지난 30년 동안 거의 25% 감소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태평양 북서 하와이 제도의 미드웨이 환초에서 발견된 바닷새 사체. 야생동물 보호구역이지만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찬 새가 목숨을 잃었다. AP=연합뉴스

태평양 북서 하와이 제도의 미드웨이 환초에서 발견된 바닷새 사체. 야생동물 보호구역이지만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찬 새가 목숨을 잃었다. AP=연합뉴스

최근 국내에서도 꿀벌이 사라지면서 많은 작물의 꽃가루받이 중단 등 경제적인 피해를 걱정하는 것처럼 새나 곤충이 사라지면 사람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새는 꽃가루받이를 매개할 뿐만 아니라 열매를 먹고 씨앗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생태계 내에서 청소부나 포식자 역할도 합니다.
논밭에서 해충을 잡아먹기도 하고, 설치류를 없애 전염병 예방에도 기여합니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는 말처럼 새는 지구 구석구석에서 살면서 환경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 생물이기도 합니다.
새소리가 사라진 지구, '침묵의 봄'은 그래서 두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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