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아이(æ)·플랫·나비스는 뭔가요?…심오한 SM 세계관 [알려드립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5.07 07:00

업데이트 2022.05.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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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aespa) 멤버와 그들의 아바타 '아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aespa) 멤버와 그들의 아바타 '아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의 세계의 ‘나’에게만 반응하는 요소들인 사건, 감정들이 걸러져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것을 ‘광야’라고 부르며 이는 무의식의 바다인 ‘에테르’에서 여과하여 창조됐다"

언뜻 할리우드 공상과학(SF) 영화 도입부에 나올법한 설명글이지요? 사실 이건 보이 그룹 NCT가 2020년 발매한 음반 ‘NCT 2020: 더 패스트 앤 퓨처 - 에테르’에 등장하는 가사입니다. 이때 SM 엔터테인먼트는 ‘광야’라는 단어를 처음 선보이며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후로 ‘광야’라는 단어는 SM 음반에 종종 등장합니다. NCT U의 ‘나인티스 러브’에는 “광야를 넘어 더욱 가까이 와”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어 걸그룹 에스파는 데뷔곡 ‘블랙맘바’에서 “넌 광야를 떠돌고 있어”라고 노래했습니다. 지난해 발매한 ‘넥스트 레벨’에서도 광야를 언급했죠. 이 곡에서 에스파는 ‘광야를 떠돌던’ 과거에서 벗어나 ‘광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SM 아티스트 외에도 방탄소년단(BTS)은 ‘BU(BTS Universe), 7인조 신인 걸그룹 빌리는 사라진 소녀(빌리 러브)를 찾는 미스터리 추리물의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돌에게 왜 세계관이 필요할까요?

서울 성수동에 광야가?  

‘에스파(æspa)’의 아바타. 지젤, 윈터, 카리나, 닝닝(왼쪽부터).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에스파(æspa)’의 아바타. 지젤, 윈터, 카리나, 닝닝(왼쪽부터). [사진 SM엔터테인먼트]

광야는 SM 자체 ‘세계관’인 SMCU(SM Culture Universe)의 핵심 개념이다. SMCU는 SM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연결해 팬들에게 몰입과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복합 문화 프로젝트로, 2020년 10월 시작됐다. 

만화·애니메이션·웹툰·모션그래픽·아바타 등을 총망라해 진행된다. 세계관 전담 부서가 있을 정도다. 

광야의 명확한 실체에 대해서 밝혀진 바가 없다. 팬덤이 관련된 콘텐트를 소비하고, SM 관계자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해 집단지성으로 광야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광야를 가상의 공간 또는 다차원의 세계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서울 성수동의 SM 신사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마블 영화와 닮은 SM 세계관 

SM의 '광야'는 글로벌 오디션에 등장할 정도로 현실 세계를 포괄하는 개념이 됐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SM의 '광야'는 글로벌 오디션에 등장할 정도로 현실 세계를 포괄하는 개념이 됐다. [사진 SM엔터테인먼트]

SM 세계관의 개념은 마블과 비슷하다. 아이언맨·스파이더맨·닥터 스트레인지·캡틴 아메리카 등 다양한 마블 캐릭터가 개별의 서사를 담은 영화를 각자 내면서도, 한데 모여 ‘어벤저스’로 활동하거나, 두세 명의 캐릭터가 따로 모여 영화를 찍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영화 속의 ‘이스트 에그(제작자가 숨겨둔 장치)’ 또는 ‘떡밥(힌트)’을 찾는 재미를 누린다. 스파이더맨을 보면서도 닥터 스트레인지 다음 회의 떡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마블 영화라면, 어느 편 하나 허투루 볼 수가 없다. 떡밥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느라 밤을 새울 정도로 열정적인 팬들도 많다. 결국 SM도 세계관 도입을 통해 이러한 몰입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려는 상업적인 의도로 SMCU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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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을 즐기기 위해 공부는 필수다. 일단 에스파 세계관 하나만 판다고 해도, 아이(æ), 플랫, 싱크, 포스, 나비스(nævis), 블랙맘바 등의 용어는 기본으로 숙지해야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는 인간이 제공한 디지털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 존재, 즉 아바타를 의미한다. 플랫은 ‘아이’들이 사는 가상 세계다. 싱크는 인간과 ‘아이’가 연결된 상태다. 처음엔 메시지로 시작해 음성으로 교류하다가 싱크 레벨이 계속되면 ‘아이’가 현실 세계로 진입할 수도 있다. 연결이 끊어진 상태는 ‘싱크아웃’이라  부른다. 리콜은 싱크 레벨이 지속돼 ‘아이’가 현실 세계로 오는 현상이다. 포스는 플랫과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 나비스는 인간과 ‘아이’가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뜻한다. 블랙맘바는 인간과 ‘아이’의 싱크를 방해하는 존재로, 지금은 ‘광야’를 떠돌고 있다.

SM이 만든 틀에서 팬이 채워가는 세계관  

BTS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든 웹툰 '착호'.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장르다. [사진 하이브]

BTS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만든 웹툰 '착호'.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장르다. [사진 하이브]

팬들이 가장 열광하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궁금해하는 개념은 광야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종합하면, 광야는 플랫 너머 아무것도 규정되지 않은 무규칙, 무정형, 무한의 영역을 의미한다. 그런데 ‘넥스트 레벨’ 뮤직비디오에 나타난 광야의 위도와 경도를 현실 세계 지도에서 추적하면, SM의 서울 성동구 신사옥으로 나타나 팬덤에서 한차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SM은 세계관의 일정 틀만 제시할 뿐 실제 내용은 팬들이 채워나간다.

SM의 이러한 마케팅 전략을 ‘내러티브’라고 한다. 비전과 세계관 등 특정 관점이나 가치관을 담아낸 강력한 서사라는 의미로, ‘감성’을 기반으로 하는 세일즈 전략이다. 내러티브는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결국 브랜딩이나 마케팅에서 내러티브를 잘 활용하는 기업은 열렬한 팬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매출 증대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러티브는 문학적이며 예술적인 힘에서 출발할 때 강력해진다”고 썼다.

세계관은 엔터사의 수익 구조를 음반에서 지식재산권(IP) 중심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이현지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세계관에 몰입한 K팝 팬들은 가수의 전 앨범을 사거나 같은 소속사의 다른 그룹까지 챙겨보고 있다”라며 “BTS 세계관을 바탕으로 웹툰과 웹 소설을 제작한 것처럼 엔터사 입장에서는 기존 아티스트를 활용한 다양한 IP 사업을 벌일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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