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죽은 시계' 살리는 57년 명품장인…"귀한 건 시계 아닌 시간" [포토버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명 기술대회에서 메달 하나 따지 못한 시계 수리공일 뿐입니다.” 57년 동안 명품 시계를 수리해온 한 수리공이 기자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한 말이다. 주인공은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세운스퀘어에서 '광일사'를 운영하는 이병근(77) 씨.

서울 종로구에서 시계 수리점을 운영하는 이병근(77)씨. 그는 57년 동안 명품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팔순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돋보기도 쓰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좋다. 김상선 기자

서울 종로구에서 시계 수리점을 운영하는 이병근(77)씨. 그는 57년 동안 명품 시계를 수리하고 있다. 팔순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돋보기도 쓰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좋다. 김상선 기자

그의 말대로 서 너 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그의 이력을 확인할 어떤 증명서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진열장 안에서 수리를 기다리는 30여 개의 명품 시계가 이 씨를 '장인'으로 입증하고 있었다. 하루 3~4개밖에 수리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하면 무려 열흘 치의 일감이 밀려 있는 셈이다.

이병근씨는 바늘끝보다 작은 부품을 다루고 조립하기 위해서는 눈과 손이 건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새벽 등산을 한다. 김상선 기자

이병근씨는 바늘끝보다 작은 부품을 다루고 조립하기 위해서는 눈과 손이 건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매일 새벽 등산을 한다. 김상선 기자

수 억원 하는 일부 고급 시계는 금고에 넣어 별도 관리한다. 고객들이 맡긴 제품 보안을 위해 가게 내부에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일반 수리점에서는 볼수 없는 풍경이다.

이 씨의 작업 공간. 이런 공간에서 반세기 넘도록 일에 전념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 씨의 작업 공간. 이런 공간에서 반세기 넘도록 일에 전념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이 씨는 어릴 적 외삼촌 집에 놀러 갔다가 고장 난 벽시계를 분해 후 살려 놓은 과정에서 자신의 '끼'를 발견하게 됐다. '천직'을 발견한 그는 야간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종로구 예지동 시계 골목의 유명 수리점을 돌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연마했다. 단독 수리점을 내고 본격적인 '죽은 시계 살리기'에 들어간 것은 그로부터 7년 후다.  새벽등산

일에 밀려 점심을 거르는 일이 허다하다. 이 씨는 시계 수리가 완성될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김상선 기자

일에 밀려 점심을 거르는 일이 허다하다. 이 씨는 시계 수리가 완성될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다. 김상선 기자

팔순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휴일에도 출근해야 할 정도로 고장 난 시계가 밀려들고 있다. 그는 “365일 중 여름휴가 4일과 신정 날 하루만 빼고 지금껏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했다.

크고 작은 시계부품들.

크고 작은 시계부품들.

몰려드는 일감은 개인 고객의 시계도 있지만 대부분 백화점과 일반 수리점을 거쳐 온 것들이다. 수리점에서 고치지 못한 시계가 돌고 돌아 결국 이 씨에게 오는 것이다. 그는 “제조사들도 발견하지 못한 결함을 자신이 찾아 수리하고 고객에게 전달할 때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이 씨의 단골 고객은 개인들도 많지만 백화점과 일반 수리점에서 들어온 시계들이 더 많다. 김상선 기자

이 씨의 단골 고객은 개인들도 많지만 백화점과 일반 수리점에서 들어온 시계들이 더 많다. 김상선 기자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는 이 씨에게 명품 시계 수리가 몰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저렴한 비용과 빠른 수리. 수리비는 정식 서비스점보다 많게는 열 배 가까이 저렴하다. 또 구할 수 없는 부품은 자신이 미니 선반을 이용해 직접 깎아 사용할 정도로 손재주도 좋다. 고급 브랜드 회사들은 서비스 자체가 수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제품 교환을 우선으로 해 그만큼 수리비가 비싸다고 한다.

구할 수 없는 부품들은 이씨가 직접 제작해 활용한다.

구할 수 없는 부품들은 이씨가 직접 제작해 활용한다.

이 씨가 반세기가 넘도록 시계 수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건강. 그는 매일 새벽 등산을 한 후 출근한다. 양안 시력 1.0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3개월에 한번씩 안과 검진을 받으며 관리하고 있다.

시계를 수리하는 모습.

시계를 수리하는 모습.

그는 “명품 시계로 평생 밥을 먹고 있지만,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시계가 아닌 시간이다”라며 강조한다. 끝으로 그는 “눈과 손이 작동하는 한 시계 수리를 계속하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사진·글=김상선 기자

진열장에서 수리를 기다리는 고장난 고급 시계들 항상 30여개가 밀려있다. 김상선 기자

진열장에서 수리를 기다리는 고장난 고급 시계들 항상 30여개가 밀려있다. 김상선 기자

10년 전 점포 화재로 불에 탄 시계. 그는 부속 제작을 위해 버리지 않고 있다. 김상선 기자

10년 전 점포 화재로 불에 탄 시계. 그는 부속 제작을 위해 버리지 않고 있다. 김상선 기자

왼쪽이 이 씨의 작업 공간인 광일사다. 김상선 기자

왼쪽이 이 씨의 작업 공간인 광일사다. 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