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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미래는 다양성에서 시작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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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호 31면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선임연구위원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선임연구위원

우스갯소리로 정치가 좋아하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미래이고 다른 하나는 녹색이다.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더라고 정치인을 빛나게 해 주는, 일종의 설탕 코팅과 같은 단어이다.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과 가장 수구적인 정치인도 미래 세대를 걱정한다고 한다. 환경 파괴적 활동을 하는 기업인도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서라고 한다. 말로는 미래 세대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현재 세대의 이익을 위한 입법을 지지하는 국민도 있다.

미래 전망을 하는 사람의 절반은 사기꾼이다. 필자가 미래 전망 관련 세미나를 할 때 종종 제일 먼저 던지는 말이다. 세미나 시작 부분에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는 하지만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래 전망은 틀릴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의사결정자들 동질성 강해
전문성만으로는 변화 전망 어려워
전문성의 다양성 부족은 더 큰 문제
후에 ‘이 산은 아닌 것 같아’ 말아야

아직 ‘미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관련된 정보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정보를 무한정 모은다고 한들 과거에 관한 것뿐이다.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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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전망에서 가장 크고 어려운 변수는 사람이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이고, 유사한 상황이라면 더욱더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 대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특정 미래 사건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미래 상황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변화의 신호를 미리 알아내는 것이다. 이런 신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가장 쉬운 곳은 전문가 지식이다. 유사 이래로 인류가 쌓은 지식은 자연과 인간 사회 현상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통해 의미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미래 변화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두 번째 원천은 창의적인 사람이다. 예를 들어 음악, 미술, 문학 등 분야를 들 수 있겠다. 토머스 모어는 1561년 『유토피아』를 통해 당시 영국사회를 비판하면서 이상적인 사회를 꿈꿨다. 1931년 헉슬리는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렸다. 줄 베른의 『해저 2만 리』, 데스카 오사무의 만화 ‘우주소년 아톰’은 대표적인 과학소설이다. 박경리 선생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600여 명에 이른다고 하니 소설가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창의성은 미래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원천은 데이터이다. 정교한 경제학 모델에 바탕을 둔 성장률 예측이나, 시장 전망뿐만 아니라 논문, 특허 분석 등을 통한 기술예측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딥러닝 기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그동안 해석이 불가능했던 엄청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각 미래 지식의 원천은 완전할 수 없다. 한 분야의 전문가란 그 분야에서 통용되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는 경제학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판사와 검사는 법률의 시각으로, 과학기술자는 과학과 공학으로 세상을 본다.

하지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가? 각 분야의 전문성을 다른 분야로 확장해 적용하는 순간 그 설명력은 확 떨어진다.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타 분야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모든 전문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를 르네상스형 인간이나 천재라고 부르지만 이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창의적인 소설가의 작품이 곧 미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 한 모든 미래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달성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미래를 그린다고 하더라고 인간 사회는 관성과 경로의존성 때문에 그 미래로 향해 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동시에 과학기술적 해법이 쉽게 발명되는 것도 아니다.

데이터와 모델링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데이터란 현재까지 생성된 과거의 것이고, 이론과 모델 또한 현실세계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력만을 가진다. 세상 모든 것을 모델 안에 넣어서 한꺼번에 계산하고 싶겠지만 그런 모델이나 컴퓨터란 없고  원천적으로 무모순성을 증명할 수는 없다.

결국 미래 전망을 위한 완전한 방법은 없고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도 없다는 것이다. 이제 며칠 후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지만 지난 2개월의 준비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정치권은 우리나라가 엄청난 환경 변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말을 하지만 미래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속속 발표되는 차기 정부의 주요 의사결정자 구성을 보면 전문분야, 성별, 연령대 및 학연 등에서 강력한 동질성과 회고성만 보인다. 과거 정부가 그랬듯이 새 정부는 우리 사회의 모든 난제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해법도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미래도 똑같이 잘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전문성만 가지고 변화를 잘 전망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또 실패한 경우가 많다. 여러 번 실패한 미국 대기업의 경영진 중에는 하버드 MBA 출신도 많다. 전문성도 문제이지만 전문성의 다양성 부족은 더 큰 문제이다. 특히나 방향을 정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데 나중에 가서 ‘이 산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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