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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한동훈 패션, 뭣이 중헌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7호 30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윤석열 정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덕성·자질 논란으로 난항 중이다. 5일까지 청문회를 마친 11명의 후보자 중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후보자는 추경호(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한화진(환경부)·이종호(과학기술정보통신부) 3명뿐이다. 특히 오는 9일엔 후보 지명 때부터 여야 갈등의 핵심이었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윤의 칼잡이’ ‘세자책봉’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데다, ‘부모 찬스’를 이용해 딸이 대학 진학을 위한 스펙을 쌓았다는 의혹까지 있어 청문회 분위기는 꽤 시끄러울 것 같다.

그런데 젊은 층이 많이 즐기는 온라인 뉴스 플랫폼과 커뮤니티에선 한 후보자를 둘러싼 ‘패션’ 키워드로 더 요란하다. 언론에 등장했던 사진들과 함께 ‘한동훈 슈트·안경·구두·가방·스카프’ 등이 언급되고 각각의 아이템이 어떤 브랜드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알려주는 기사와 게시글이 넘쳐난다.

법무장관 후보자의 옷차림 평가보다
적임성 검증, 의혹 진상 규명이 우선

포털사이트에서 ‘한동훈 패션’을 검색해 보니 ‘한동훈 모델’ ‘한동훈 키’ ‘한동훈 가발’ 등도 관련검색어로 뜬다. 민주언론연합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4월 한 달간 한 후보자의 옷차림이 언급된 네이버 온라인 기사는 40건에 달한다. 대부분 ‘언론사별 랭킹뉴스’ 상위권에 오를 정도로 많이 읽혔다고 한다. 이들 기사 제목에선 ‘모델포스’ ‘비주얼 깡패’ ‘완판남’ 등의 수식어가, 본문에선 ‘완벽주의’ ‘성공한 X세대’ ‘패션감각처럼 앞서가는 단단한 세계’ 등의 긍정적 이미지 평가들이 많이 언급됐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한 이미지 평론가의 표현이었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한동훈 후보자의 스카프 스타일링은 우리에게 남녀의 공존을 느끼게 한다. 이를 통해 한 후보자가 적어도 패션소품에 남녀 구분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의 소유자임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가 한 후보자의 패션에서 가장 집중할 부분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반짝이는 홍채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소년 같은 눈빛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후보자가 빛나는 소년의 눈빛을 지킨 순수함으로 인간의 존엄을 보여 주는 법의 수호자가 되길 응원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스카프를 매는 게 언제부터 젠더리스 메시지가 됐는지, 안경 너머 빛나는 홍채는 또 언제부터 패션 요소가 됐는지, 라이프 스타일 부문에서 30년 가까이 일했지만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다. 더 솔직히 말하면 현란한 무늬와 색깔의 스카프 끝을 코트 V존 안에 넣지 않고 치렁치렁 날리게 둔 건 결코 멋쟁이스타일이 아니다. 새까만 더벅머리에 두꺼운 검정색 뿔테 안경, 회색 마스크의 조합은 인상을 너무 어둡게 만든다. 기자의 이런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면 애써 주장하진 않겠다. 패션은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다만, 무엇이 중요한지 제대로 짚고는 넘어갔으면 좋겠다. 정치인의 옷차림이 주목받는 시대인 건 맞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패션 감각이 좋은 사람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만큼 패션은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패션이 그 사람의 됨됨이와 진정성까지 담보하진 않는다. 깔끔함·섬세함 등 성격을 미루어 짐작케 하는 몇몇 요인은 될 수 있어도 그 사람의 업무적 능력과 자질까지 파악할 수 있는 창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정치인의 패션이 능력이나 진심보다 우선시돼서는 안 된다. 법무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이라면 적임성 검증과 의혹에 대한 사실·진상 규명이 옷차림 평가보다 먼저여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언론과 국민의 관심사는 ‘뭣이 중헌지’ 잘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길을 헤맨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의 색깔은 다 다르면서 디자인은 비슷했던 슈트들과 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브로치들이 인상적으로 기억되고 박수를 받는 이유는 패션이 먼저 빛나서가 아니라, 패션‘도’ 빛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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