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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서툰 외국인 엄마, 모국어로 자녀와 대화 바람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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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호 26면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다문화가정 소통 문제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대영이는 아빠, 고모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왔다.

“어머님은 못 오셨나 보군요?” 나는 대영이 아빠를 향해 물었다.

“대영이 엄마는 한국말을 잘 못 해서요. 제가 대신 왔습니다.” 고모가 아빠 대신 대답했다.

“아, 엄마가 외국인이신가 보군요. 어느 국적이신지요?”

“베트남 사람입니다.” 또 고모가 대답했다.

“그럼 고모가 아이 양육을 도맡아 하시나요?”

“아니요. 아이는 1주일에 한번 만나는 정도인데 병원 예약을 제가 해서 오늘 같이 왔습니다.”

내가 고모와 대화하는 동안 아빠는 긴장된 표정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버님, 대영이가 어떤 문제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나는 아빠의 의견이 궁금했다.

“여동생이 아이 공부를 가르치는데 이해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해서요. 애가 말도 느렸고 모든 게 조금씩 느렸던 것 같습니다.” 아빠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다문화 학생 35% 집단따돌림 경험

대영이는 내년에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아빠는 과수 농장을 운영하느라 항상 바빠서 아이 양육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대영이 엄마는 한국말을 어느 정도 하시는지요?”

“결혼 직후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다지 유창하지는 못합니다.”

“대영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또래 관계가 어떤가요?”

“언어가 늦다 보니 친구들과 못 어울리죠.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요. 조금만 뜻대로 안되면 울어요. 유치원에서 도움반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다문화 지원센터에서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도 받습니다.”

대영이는 언어평가와 심리평가를 받았다. 언어 이해력과 표현력이 약 1년 정도 늦었고 전체 지능은 78이었다. 다만, 지능 검사의 프로파일을 세밀하게 분석해보니 대영이의 타고난 잠재 지능은 평균 이상이었다. 시공간 지각 능력과 유동추론 능력과 같이 사전 지식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양호했다. 사실 대영이는 퍼즐과 종이접기를 잘하고 즐긴다고 했다. 지연된 언어 능력이 지적 능력 발휘에 영향을 미쳐 전체 지능 수치를 저하한 것으로 해석되는 지점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외국 이주노동자의 증가, 국제결혼으로 인한 자녀 출산 등으로 다문화 가정이 급격히 늘었다. 여성가족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초·중·고교에 다니는 다문화 가정 자녀는 16만여 명이다. 전체 학생 중 다문화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2년 0.7%, 2017년 1.9%, 2021년 3%로 지속해서 늘어나는 추세다. 아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지난 10여 년 동안 다문화 아동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축적됐다.

그중 한 연구에서는 다문화 가정에서 외국인 엄마의 한국어 능력이 자녀의 발달과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았다. 다문화 아동 중에 유치원과 학교생활 적응을 잘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도 있는데 바로 외국인 엄마와의 의사소통 문제가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꼽은 것이다. 한국인 조부모와 아빠가 외국인 엄마가 자녀와 한국어로 소통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엄마는 한국어를 충분히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툰 한국어로만 자녀와 소통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엄마는 한국 문화에 대한 부적응에 더해 양육에 대한 스트레스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갖는다.

자녀와의 의사소통 제한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특히 영유아기 자녀가 떼쓰기나 분노발작 같은 문제 행동을 보일 때 엄마가 충분히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고 훈육을 하기 보다는 무조건 허용하는 방식을 취하거나 아니면 과도하게 행동으로만 통제하는 방식을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자녀와의 안정적 애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줘서 언어발달 문제를 넘어 정서나 행동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 엄마가 언어로 아이와 타협이 원활하지 않아 문제행동이 자주 허용된다면 아이의 문제행동은 더욱 강화되어 어린이집에서조차 또래에게 공격성을 보일 수 있다. 반대로 엄마가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억압적인 방식으로 통제한다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위축될 수 있다. 아울러 외국인 엄마는 자녀의 발달 단계에 적합한 우리나라 장난감이나 책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엄마의 출신 국가와 우리나라의 양육 문화의 차이로 인해 가족이나 자녀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2021년 기준 다문화 가정 부모의 출신 국가는 베트남이 32.2%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다음으로 중국(한국계 제외), 필리핀, 조선족(한국계 중국인) 순이었다. 일본 부모 출신 다문화 가정의 비율은 5.2%로 가장 낮았다. 이중 조선족 부모는 한국어를 구사하는데 문제가 없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실제로 조선족 부모들은 한국인 부모만큼 양육에 적극적이고 육아 정보를 수집하는 데 있어서도 열정적이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학교 입학 후 적응도 대체로 쉽지 않다. 그 첫 번째 요인은 혼혈 외모, 말투 등으로 인한 따돌림이다. 다문화 가정의 35%가 집단 따돌림을 경험했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한 경험이 14%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이들 스스로 대인관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둘째는 학업 부진으로 인한 학업 중단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또래와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독해력 및 어휘력, 쓰기, 작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는 다문화 가정에서 과도한 자녀 교육비용에 대한 부담과 환경적 지지 체계의 부재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연령이 증가하면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적응력은 점차 호전될 수 있다. 영유아기에는 가정 내에서 의사소통 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하다가 오히려 학교 입학 후 또래들과의 관계를 통해 한국어가 능숙해지고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학습하게 되면서 아이가 본래 지닌 잠재 능력이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문화 아이들이 유치원에 비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학교 적응 정도가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유치원 교사들은 다문화 아이들의 정서와 행동에 대해 부정적인 사례를 더 많이 보고한 반면 초등 이상 교사들은 다문화 학생들에 대해 긍정적인 사례를 많이 보고했다고 한다. 예컨대, 다문화 아이들이 순수하고 뭐든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했다는 내용 등이었다. 대영이 엄마가 다음 외래에 직접 내원했다. 엄마는 예상외로 한국어를 잘했다. 아주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진료실에서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지난번 제가 아이와 함께 오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대영이 아빠로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잘 전달 받았습니다.” 엄마는 다소 어눌한 억양이었지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말했다. 이후 자신이 맘카페에서 얻은 언어장애, 주의력결핍장애 등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엄마는 대영이가 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인지 여부를 물었다. 대영이가 어린 시절 엄마와 활발한 의사소통과 놀이 경험이 부족해서 후천적으로 학습이 덜 된 것뿐이지 선천적인 잠재력이 좋은 아이라는 내 설명을 듣고 엄마가 눈물을 흘렸다.

글로벌 시대, 이중 언어는 큰 장점

아이 학교 입학을 앞두고 시누이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는 엄마의 노력에 대해 한껏 격려했다. 어머님의 한국어 실력도 칭찬했다. “더 잘해야죠. 대영이가 어릴 때 제가 한국어를 지금만큼 했더라면 언어가 늦지 않았을텐데… 그때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아 한국어가 늘지 않더라구요.” 엄마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이 정도 한국어 잘하시는 외국인 어머님 흔치 않습니다. 대단하세요” 나의 위로와 격려에 엄마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언어는 수단일 뿐이다. 영유아기에 언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엄마와 충분한 상호 교류를 통한 안정적 애착 형성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엄마가 자신의 모국어로 자녀와 소통하며 질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해외 연구도 많다. 지금은 글로벌 사회이다.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오히려 큰 장점이 된다. 외국인 엄마가 아이와 한국어로만 소통해야 한다는 배타적인 관점을 버리고 뇌 발달의 근간이 되는 엄마-아이 관계에 집중한다면 어떨까.

※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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