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청소문화, 자비 원정 순수함 지킨게 붉은악마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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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호 25면

[스포츠 오디세이] 2002 월드컵 응원단장 유영운씨 

붉은 악마 응원단장 출신인 유영운 씨는 “2002 월드컵은 우리나라의 국격과 브랜드 가치를 급상승시킨 계기였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붉은 악마 응원단장 출신인 유영운 씨는 “2002 월드컵은 우리나라의 국격과 브랜드 가치를 급상승시킨 계기였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벌써 20년이 흘렀다. 2002년 6월, 대한민국 국민은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길거리 응원, 붉은 물결, 태극기, 그리고 “대∼한민국”….

한여름밤의 꿈은 동시대 사람들의 가슴 속에,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돼 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축구 때문에 온 나라가 뒤집어졌다는 걸 얘기로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사람을 소환했다. 2002 월드컵 당시 축구 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의 응원단장(공식 명칭은 콜 리더) 유영운 씨다. 조그만 메가폰 하나만 잡고 6만 관중을 들었다 놨다 했던 축구장의 마에스트로. 그가 들려주는 2002 월드컵 스토리다.

독일과 준결승 문구 ‘꿈★은 이루어진다’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펼쳐진 ‘꿈은 이루어진다’ 카드섹션. [중앙포토]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펼쳐진 ‘꿈은 이루어진다’ 카드섹션. [중앙포토]

어떻게 붉은 악마 응원단장이 됐나요.
“저는 축구를 사랑하지만 선수 출신은 아닙니다. 황선홍·최문식·안익수가 뛰던 포항 스틸러스를 좋아했어요. 서울에 살면서 포항 원정 응원을 자주 갔더니 포항 서포터스 회장과 콜 리더를 시켜주더라고요. 그 무렵 붉은 악마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고, 자연스럽게 A매치 콜 리더를 거쳐 2002년까지 왔죠.”
월드컵을 앞두고 운영진들이 어떤 계획을 짰나요.
“무조건 16강 가게 하는 응원을 만들자. 홈이기에 가능한 응원을 준비하자는 원칙을 세웠고요. 초대형 태극기 제작, 메시지 전달을 위한 카드섹션, 스타디움을 압도하는 꽹과리의 위력을 앞세운 사물놀이 같은 걸 준비했죠. 당시 K리그 10개 구단 서포터스가 힘을 합쳐 드림팀을 구성했습니다.”
첫 경기가 부산에서 열린 폴란드전이죠.
“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의 ‘오렌지 쇼크’를 잊을 수 없었죠. 우리도 해 보자고 해서 1년 전부터 ‘비 더 레즈(Be the Reds)’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저희는 경기 2시간 전에 들어와 준비를 했는데 1시간 전부터 경기장이 온통 새빨개졌어요. 오늘은 무조건 이겼다고 확신했죠.”
황선홍·유상철 골로 2-0 승리를 했는데요.
“보통 2골 차 이상 앞서면 막판에 파도타기 응원을 합니다. 승리의 흥겨움을 만끽하는 거죠. 그런데 그걸 못하겠더라고요. 월드컵 1승도 못해본 나라가 첫 승을 하려는데, 한 골 먹으면 알 수 없는 게 축구인데…. 그래서 ‘파도타기 합시다’는 열화와 같은 요청을 외면하고 끝까지 ‘대∼한민국’과 선수 이름 외치고 아리랑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파도타기 못해서 죄송합니다(웃음).”
초대형 태극기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대구월드컵경기장 앞 광장에서 며칠 동안 제작했죠. 통천과 페인트 값만 1500만원 들었습니다. 가로 40m, 세로 30m인데 운반하는 데도 40~50명이 필요했어요. 평가전 때 펼쳐봤는데 너무 커서 1층 상단을 넘어가 태극기가 구겨지는 겁니다. 게다가 애국가가 연주되는 1분 동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어요. 그래도 모든 분들이 잘 협조해 주셔서 대성공을 거뒀죠. 그 태극기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월드컵 20주년에 맞춰서 한 번 더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카드섹션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한태일·김용재라는 두 친구가 정말 멋진 문구를 만들었어요. 2002 카드섹션의 꽃은 이탈리아전 ‘AGAIN 1966’이었습니다. 1966년은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북한에 져 탈락한 해입니다. 이탈리아 축구가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을 소환해 그들의 자존심을 긁은 거죠. 독일과의 준결승 문구가 그 유명한 ‘꿈★은 이루어진다’입니다.”
카드는 어떻게 준비했나요.
“20년이 지나서 말씀 드리는데요. 그 종이를 살 수도 없는 거고, 당시 회사 홍보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한솔제지 천안공장에서 10만 장이 넘는 종이를 제공했습니다. 빨강·흰색 종이에 응원가까지 인쇄해서 트럭으로 날라다 주셨죠. 경기당 2만 장 정도를 관중석에 테이프로 붙여 놓습니다. 관중 입장이 끝나면 저의 ‘대∼한민국’ 선창에 따라 카드를 올렸다 내리는 연습을 몇 차례 했죠.”
붉은 악마를 인솔하고 원정도 자주 다니셨죠. 해외 원정 때 원칙이 있었나요.
“제가 해외 원정에서 메가폰 잡았던 게 60경기 정도 됩니다. 나갈 때마다 원정단을 모아 놓고 ‘우리는 열심히 응원하고 이기고 돌아가면 된다. 그런데 오늘 오시는 교민들은 평생 이 나라에 사셔야 될 분들도 많다. 그러니까 열심히 응원하되 겸손하게 행동하고 정리정돈 잘하고 마무리 인사 잘하고 오자’고 당부를 합니다. 저희들의 그런 모습을 교민들이 너무나 좋아하셨고 ‘이게 대한민국의 힘이다’라며 자랑스러워 하셨죠.”
2002 월드컵 당시 쓰인 초대형 태극기. [사진=유영운]

2002 월드컵 당시 쓰인 초대형 태극기. [사진=유영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내가 직접 본 현장이다. 남자축구가 테살로니키에서 개최국 그리스와 1차전을 벌였다. 2-0으로 이기다가 막판에 골을 허용해 2-2로 비겼다. 실망할 만도 한데 붉은 악마는 마지막까지 경기장에 남아 일대를 깨끗이 청소했다. 다음날 외신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라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붉은악마 나올 때가 더 깨끗” 얘기도

유 씨는 “청소는 붉은 악마 응원의 또 하나의 문화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가 들어갔을 때보다 나올 때가 더 깨끗한 곳도 있었습니다”라며 웃었다.

해외 원정 경비는 축구협회나 누가 좀 지원해 줍니까.
“절대 없습니다. 모든 경비는 본인이 부담합니다. 회사에 휴가를 내든 월차를 모아서 쓰든 본인 결정이지요. 원정위원회에서 비용을 공고하면 정한 시간 내에 입금해야 출발할 수 있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순수함을 고집한 게 붉은 악마가 오늘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요.”
2002 월드컵의 의미를 얘기한다면.
“대한민국의 국격과 브랜드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하는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게 ‘태극기’입니다. 이전에 태극기는 존엄의 대상이었는데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여성들이 치마를 만들어 입을 정도로 친근함의 상징이 됐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그렇게 가슴 뜨겁게 외쳐본 적이 있었을까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내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끓어 넘쳐서 온 세상을 뒤덮은 역사의 현장이 바로 2002 월드컵이라고 봅니다.”
해외 원정 리딩을 하는 유영운 씨. [사진=유영운]

해외 원정 리딩을 하는 유영운 씨. [사진=유영운]

유 씨는 2002 월드컵이 끝난 뒤 한국여자축구연맹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YST(주)의 상무로 일하고 있다. YST는 인공지능(AI) 카메라를 활용한 스포츠 중계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그는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붉은 악마의 축구 사랑, 나라 사랑 정신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저도 스포츠를 통해 받은 사랑을 더 많은 분들에게 돌려주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는 가는지 묻자 “당연하죠. 우루과이전 티켓 예매해 놨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중앙UCN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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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가 ‘오~필승 코리아’ 외신은 ‘오 피스 코리아’로 해석

2002 월드컵 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응원이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이다. 이 응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유영운 씨는 “이 응원의 기원에 대해서는 수원 블루윙즈 서포터스가 외치는 ‘수∼원 삼성’이 원조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반면 ‘부∼천 SK’가 먼저라는 말도 있고요. 어쨌든 외국인한테는 굉장히 어색한 엇박자인데 우리한테는 잘 맞는 박자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오∼ 필승 코리아’ 노래도 부천 SK 서포터스가 부르던 “오~부천 FC”를 가사만 바꾼 거라는 게 정설이다. 당시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도 이 노래가 인기였는데 그들은 가사를 ‘오 피스(peace) 코리아’로 알아들어 “역시 한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이처럼 2002 월드컵 응원가나 구호는 프로축구 각 구단 서포터스가 쓰던 걸 빌려온 게 많다. 유영운 씨는 “붉은악마 응원은 K리그 서포터들이 각자의 장기를 갖고 나와서 만든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봐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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