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칸·베니스 단골 이창동, K시네마에 ‘오아시스’ 역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7호 24면

[김동호 남기고 싶은 이야기] 타이거 사람들 〈7〉 이창동 감독과 25년 동행

2007년 칸영화제에서 배우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당시 칸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전도연, 이창동 감독,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송강호. [사진 김동호]

2007년 칸영화제에서 배우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당시 칸영화제에 참석한 배우 전도연, 이창동 감독,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송강호. [사진 김동호]

나는 이창동 감독을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1997년 10월 10~18일)에서 처음 만났다. 그의 첫 작품 ‘초록물고기’가 경쟁 부문인 ‘뉴커런츠’(새로운 물결)에 선정됐다. ‘뉴커런츠’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신인 감독이 만든 첫 번째나 두 번째 영화 중에서 최우수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는 부문이다. 아시아 신인 감독들이 세계에 진출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

그해 10월 15일 오후 9시, ‘초록물고기’가 경쟁에 오른 것을 자축하는 파티가 해운대 미포의 ‘할매횟집’에서 열렸다. 마침 일본의 배우 겸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北野武)가 부산에 왔다. 그해 9월 자신이 연출하고 주연한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직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그는 남포동 야외무대에서 ‘핸드 프린팅’을 마친 뒤 중앙동 한정식집에서 주부산 일본총영사가 마련한 환영 만찬에 함께 참석했다. 꽤 많은 소주를 마시고 둘 다 취했다. 기타노 감독은 훗날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나 평생 마실 술을 하룻밤에 다 마셨다’고 술회했다. 일본으로 돌아간 뒤 TV에서 부산영화제를 도쿄영화제와 비교하면서 극찬했다. 그 뒤 2010년에도 자신의 영화인 ‘아웃 레이지’를 들고 부산을 다시 찾았다. 그는 부산영화제를 아주 좋아했다. 최근엔 ‘혐한’ ‘반한’ 인사가 된 것 같다.

‘오아시스’ 문소리, 베니스 신인연기자상

배우 문소리는 영화 ‘오아시스’(이창동 감독)로 2002년 베니스영화제 신인연기자상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26일 ‘제42회 청룡영화상’에 참석한 문소리. [뉴스1]

배우 문소리는 영화 ‘오아시스’(이창동 감독)로 2002년 베니스영화제 신인연기자상을 받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26일 ‘제42회 청룡영화상’에 참석한 문소리. [뉴스1]

그날 나는 기타노 감독을 데리고 초록물고기 파티가 열리고 있던 미포로 향했다. 야외무대에서 그를 소개한 뒤 이창동 감독, 제작자 명계남, 배우 문성근, 그리고 수많은 영화인과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눴다. 이 감독을 처음 만난 자리였던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초록물고기’. [각 배급사]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초록물고기’. [각 배급사]

‘초록물고기’는 그해 캐나다 밴쿠버영화제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젊은 유망 감독에게 주는 용호상(Dragons and Tigers Award)을 수상했다. 그 뒤 99년 8월 17일 오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을 선정하기 위해 이용관 한국영화 프로그래머와 함께 이 감독의 두 번 째 작품인 ‘박하사탕’ 촬영 현장을 찾았다. 그렇게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하사탕’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부산에 온 해외영화제 집행위원장이나 프로그래머들의 ‘러브 콜’이 쇄도했다.

도쿄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지만, 도쿄에 가면 다른 메이저영화제에서 초청받지 못하기 때문에 제작사에서 사양했다. 이어 베를린영화제 초청을 받았는데 경쟁부문이 아니라 확답을 주지 않다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의 초청을 받고 칸에 갔다.

칸·베를린·베니스 영화제는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작)만 받고 다른 영화제에 출품된 작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3대 영화제 수상을 원하는 감독·제작자는 다른 영화제에서 초청해도 응하지 않는다. 경쟁 관계인영화제끼리 좋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 싸움도 치열하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박하사탕’. [각 배급사]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박하사탕’. [각 배급사]

‘박하사탕’이 칸에서 상영된 뒤 이 감독은 국제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그해 7월 유서 깊은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고, 여러 영화제에서 초청받았다. 나는 칸과 카를로비바리에 동행했다.

2002년 그의 세 번째 영화 ‘오아시스’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 연기자상(문소리)을 받았다. 그해 9월 6일 오후 5시 기자시사회와 7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에 이어 오후 6시 45분에 공식상영을 했다. 감독·배우·제작자가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할 때 모리츠 데 하델른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내게 “상영 뒤 잠시 만나자”고 했다. 사무실로 찾아갔더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감독상·신인연기자상·국제비평가연맹상·기독언론인상(SIGNIS) 등 4개의 상을 받게 됐다”고 알려줬다. 공식상영이 끝난 밤 10시에 젊은 비평가그룹이 주는 상을 받은 뒤 대표단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이 감독에게 소식을 전했다. 다음날인 8일 저녁 7시에 열린 시상식은 축제 분위기가 됐다.

이날 신인연기자상을 받은 문소리는 99년 ‘박하사탕’으로 데뷔했고 ‘오아시스’로 베니스에서 신인연기자상을 받았다. 문소리가 ‘지구를 지켜라’로 데뷔한 장준환 감독과 2006년 12월 24일 정오에 결혼식을 올릴 때 주례를 내가 맡았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대성리로 가는 강변의 ‘서호갤러리’에서 양가 가족 50여 명만 참석한 간소한 예식이었다. 이 감독조차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미리 두 사람과 가까운 배우·감독들에게 한줄씩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내가 간단한 덕담에 이어 ‘지구를 지키기 전에 소리부터 지켜라’ 등 재미있는 내용의 축하 메시지를 읽자 신랑·신부는 물론 가족·하객도 폭소를 터뜨렸다. 나는 메시지들을 담은 앨범을 미리 만들어 그 자리에서 선물했다.

2012년 단국대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설립하고 5년간 대학원장을 지냈는데, 창립 3년 뒤 ‘영화배우’ 과정을 신설하면서 건국대 교수로 있던 문소리를 전임교수로 초빙했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밀양’. [각 배급사]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밀양’. [각 배급사]

이 감독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 문화관광부 장관(2003년 2월 27일~6월 20일)에 발탁됐다. 4년 뒤인 2007년 연출한 네 번째 영화 ‘밀양’은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전도연)을 받았다. 전도연은 강수연에 이어 3대 영화제에서 두 번째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월드 스타가 됐다. 그는 ‘너는 내 운명’(박진표), ‘인어공주’(박흥식)에서 보듯 어떤 배역도 완벽하게 소화하는 천부적인 연기자다. 2014년엔 칸의 경쟁부문 심사위원도 맡았다.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시’. [각 배급사]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들. ‘시’. [각 배급사]

이 감독은 2010년 배우 윤정희가 주연한 ‘시’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나는 96년 이후 매년 칸영화제에 참석하고 있어, ‘밀양’과 ‘시’의 수상 현장을 이창동 감독과 함께 했다. 2018년엔 이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버닝’이 칸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칸영화제에선 잡지 스크린과 버라이어티가 만드는 ‘데일리 뉴스’에 경쟁부문 진출작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점을 게재한다. ‘버닝’은 5점 만점에 4점 이상의 최고점수를 받아 부문상은 물론 대상까지도 예상했지만, 아쉽게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는 데 그쳤다.

이 감독, 노무현 정부서 문화부 장관도

다음 해 아카데미상을 앞두고 미국 주요 도시에서 순회 상영돼 로스앤젤레스영화비평가협회 등 여러 곳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아카데미상 후보엔 오르지 못했지만, 다음 해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4관왕이 되는 기초를 닦았다. 나는 이 감독과 칸·베니스 외에도 대만·아르메니아·독일·미국 등 해외영화제에서 여러 차례 만났다. 2006년 여름 대만 가오슝(高雄)영화제(6월 17~25일)에 동행했으며, 2007년 7월엔 아르메니아 예레반영화제의 이창동 감독 회고전에 함께 갔다. 예레반영화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제로 2006년엔 심사위원으로, 2013·2015년엔 게스트로 각각 참석했다.

2007년 4월에 열린 독일 최대 산업박람회인 ‘하노버 메세’에도 함께 갔다. 당시 지식경제부 예산지원을 받아 4월 16~28일  한국영화주간을 마련했다. 개막영화 ‘밀양’(이창동)을 포함해 ‘괴물’(봉준호), ‘밤과 낮’(홍상수), ‘추격자’(나홍진), ‘송환’(김동원), ‘똥파리’(양익준), ‘독’(김태곤), ‘워낭소리’(이충렬), ‘택시블루’(최하동하) 등 9편을 선정했다. 이창동·양익준·김태곤 감독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홍효숙 프로그래머, 전시총괄을 맡은 카이스트 김정화 교수와 동행했다.

2007년 11월, 호주 휴양도시 골드코스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영화상(APSA) 제1회 시상식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는데, ‘밀양’(이창동)이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전도연)을 받았다. 심사 뒤 이 감독과 전도연에게 시상식 참석을 요청했지만 전도연은 오지 못했고, 이 감독만 참석해 상을 받았다.

2012년엔 권영락 대표가 주관한 ‘룩이스트영화제(Look East Film Festival)’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가면서도 동행했다. 당시 안성기·이병헌 배우는 ‘차이니스 극장’ 앞 보도에 핸드프린팅을 찍기 위해, 이창동·박찬욱 감독은 영화 상영 뒤 관객과 대화하기 위해, 제작자인 고 이춘연과 오정완·이주익·전찬일·이용관·김의석(2011~2014년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행사 게스트로 각각 방문했다. 이 영화제는 더는 열리지 못해 아쉽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 완성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칸에 갈 일곱 번째의 영화가 언제 완성될지 기다려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