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커피 빠르게 서서 원샷, 에스프레소 바 열풍

중앙선데이

입력 2022.05.07 00:21

지면보기

787호 19면

[서정민의 ‘찐’ 트렌드] 달라진 커피 문화

‘리사르 커피’ 약수동 본점 실내 풍경.

‘리사르 커피’ 약수동 본점 실내 풍경.

“쏘리(SORRY)…의자가 없습니다, 아메리카노가 없습니다, 작은 에스프레소 잔에 드립니다.” 북촌 계동 초등학교 부근 골목에 위치한 포르투갈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전문점 ‘쏘리 에스프레소 바’의 입간판 글귀다.

한겨울에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던 한국 커피 시장에 ‘에스프레소 바’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약 70개의 에스프레소 바가 오픈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에스프레소바 6만2000, #에스프레소 55만2000개의 게시물이 뜬다.

‘쏘리 에스프레소 바’의 아이스 음료 ‘마자그랑’.

‘쏘리 에스프레소 바’의 아이스 음료 ‘마자그랑’.

스탠딩 에스프레소 바 국내 1호점인 ‘리사르 커피’는 약수동 본점에 이어 명동과 청담동에 잇달아 2·3호점을 오픈했다. 경기도 일산이 본점인 ‘올댓커피’는 MZ세대 맛집 핫플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매장을 차렸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커피 전문점 파스쿠찌는 지난해 양재동에 ‘에스프레소 바’를 오픈했다. 편의점 GS25는 올해 3월부터 일회용 에스프레소 전용 잔을 제작하고 자체 원두커피 브랜드 ‘카페25’를 통해 에스프레소 메뉴 판매를 시작했다. GS25 측은 “최근 3년간 주요 온라인 사이트에서 언급된 커피 관련 단어 30개를 분석한 결과 에스프레소 언급 비중이 2019년 10위에서 2021년 3위로 올라오고, 최근 에스프레소 바가 늘고 있는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어 에스프레소(Espresso)는 영어로 익스프레스(Express), 즉 빠르다는 뜻인데 이는 커피 추출뿐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속도 역시 빠름을 의미한다. 두세 모금이면 바닥이 보이는 에스프레소는 주문 후 커피를 다 마시기까지 5분이면 충분하다. 길게 머물 필요가 없어서 의자 없이 바에 기대는 스탠딩 형태가 기본이고 매장 크기도 작다.

‘쏘리 에스프레소 바’의 위트 있는 입간판.

‘쏘리 에스프레소 바’의 위트 있는 입간판.

에스프레소는 1906년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전용 기계로 곱게 갈아 압축한 원두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낸 커피다. 일반적인 원두의 양은 7~9g, 물의 온도는 90℃ 전후, 커피 머신의 기압은 8~9bar, 추출시간은 25~30초다. 이렇게 뽑아낸 커피의 양은 대략 30㎖이고, 위에 얇은 황금색 크레마(크림) 층이 생긴다. 설탕을 넣을 경우 스푼으로 크레마 층을 깨고 설탕을 모두 녹여 마시는 방법과 스푼을 사용하지 않고 크레마 한 모금, 커피 한 모금, 밑바닥에 달고나처럼 녹아 붙은 설탕+커피 한 모금을 차례로 즐기는 방법이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아메리카노는 이 에스프레소 커피에 적당량의 물을 첨가한 것이다. 때문에 스타벅스 등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에스프레소 커피는 기본이었지만 주문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을 섞지 않은 아주 쓰고 진한 커피”라는 직원의 설명이 꼭 따라 붙을 만큼 낯설었는데, 요즘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에스프레소 커피를 제공하는 전문점들이 늘고 있다. 이곳에선 오히려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는다.

180커피 로스터스의 이승진 대표는 에스프레소의 매력을 “필터커피(드립커피)나 아메리카노에선 느끼지 못하는 강렬함”이라며 “평범한 밀크 초콜릿을 먹다가 카카오 함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을 먹었을 때 쌉싸름한 맛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요즘 SNS에선 에스프레소 잔을 여러 개 쌓은 인증샷이 인기다. 최영재 기자

요즘 SNS에선 에스프레소 잔을 여러 개 쌓은 인증샷이 인기다. 최영재 기자

한 잔에 1500~2000원으로 가격이 부담 없고, 유럽 정통 스타일 커피라는 점도 에스프레소 바 유행을 견인하는 요소다. 유럽 여행·유학 등의 경험이 많은 MZ세대에게 에스프레소 바는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맛이다. 약수동 리사르 커피에서 만난 이주미(34)씨는 “이탈리아 여행길에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던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왔다”며 “코로나로 외국 여행을 못가니까 국내서 경험할 수 있는 이국적인 문화 공간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정수현(41)씨는 “양은 적고, 가격은 부담이 없어서 여러 종류의 메뉴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는 점을 에스프레소 바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에스프레소 바 인증샷으로 잔을 여러 개 겹쳐 쌓은 사진이 SNS에 많이 올라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에스프레소 바에서 판매하는 메뉴는 10종 이상이다.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순수한 에스프레소를 ‘카페 에스프레소’라고 하는데 ‘솔로’는 에스프레소 1잔, ‘도피오’는 2잔 분량을 말한다. 양은 카페 에스프레소의 절반이고 맛은 강한 ‘리스트레토’, 시간을 길게 추출해서 커피의 씁쓸한 뒷맛을 강조한 ‘룽고’ 외에도 ‘마키아또(에스프레소+우유거품)’ ‘로마노(에스프레소+레몬조림 1조각)’ ‘피에노(에스프레소+크림+카카오가루)’ ‘콘 파냐(에스프레소+휘핑 생크림)’ ‘마자그랑(리스트레토+탄산수+레몬청)’ 등이 있다.

쏘리 에스프레소 바의 이광국 대표는 “달콤한 베이커리와 디저트를 함께 먹는 것도 젊은 층이 에스프레소 바를 많이 찾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실제로 이탈리아·프랑스·포르투갈 등에선 아침 출근길, 오후 티타임 때 에스프레소 한 잔과 타르트, 브리오슈, 크루아상, 티라미수 케이크 등을 곁들인다. 국내 에스프레소 바마다 자신들만의 시그니처 디저트를 준비하는 이유다.

스페셜티 커피 매거진 ‘드립’의 김태호 편집장은 에스프레소 바 트렌드를 “와인이 일상 식문화로 자리 잡고 각자의 기호가 생긴 것처럼, 커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전자동 머신을 이용한다고 해도 기술이 뛰어난 바리스타의 섬세함이 없으면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없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커피로 대학을 가고, 유학을 다녀오는 등 이론으로나 경험으로나 자신이 원하는 커피를 정확하게 만들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그 맛의 차이를 알고 즐기려는 소비자 역시 늘면서 한국 커피문화는 점점 더 깊고 더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했다. 5년 전부터 에스프레소 바를 즐겨 찾고 있다는 회사원 김대한씨는 “아메리카노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중점을 둔 선택이라면, 에스프레소는 온전히 커피 맛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