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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전, 적대적 M&A 정석 보여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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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호 16면

M&A의 세계

440억 달러(약55조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위터 지분 100%를 인수하기 위해 지불하기로 약속한 금액이다. 인류 역사상 약 70번째로 큰 M&A 금액이자, 법인이 아닌 개인이 인수자로 나선 인수합병(M&A) 거래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이다. 일론 머스크가 2500억 달러(약 320조원)나 되는 순자산을 보유한 인류 사상 최고의 부자라 가능한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 인수 건이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상장사를 대상으로 하는 비자발적·적대적 M&A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매우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4일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소수 지분 확보를 공개한 뒤, 100% 지분 인수가 확정되기까지 모든 과정은 불과 20여 일만에 끝났다.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

우선,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의 인수에 관심을 둔 이유는 명확하다. 절대적인 언론자유의 신봉자이자 전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로서 그는, ‘정치적인 올바름’을 내세워 온 트위터에 대한 불만을 자주 표출했다. 주인 없는 회사인 트위터가 뚜렷한 방향성 없이 방만하게 경영되고 있어 단기적으로 기업가치 개선의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일론 머스크가 지난달 4일 지분 9.1%를 26억 달러(약 3조원)에 인수하며 경영 참여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은 의도된 페인트 모션에 가깝다. 정황상 경영권 지분 인수가 분명했지만, 처음부터 목표를 공개할 경우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가 커져 인수 가격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더구나 인수 주체가 ‘세계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라면 주주들의 기대 심리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론 머스크는 이런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하고자 했던 것이다. 지속적으로 제기되던 이사회 참여 가능성에 대해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9일 공식적으로 부인한다. 그 뒤 다소 하락한 주가가 횡보 상태로 들어선 14일에서야 트위터 지분 100%를 공개 매수하겠다고 공식 제안했다. 예상치 못했던 적대적 M&A 상황이 벌어지자 트위터의 이사회는 곧바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일론 머스크의 공개 매수 제안 바로 다음날 ‘포이즌 필(Poison Pill)’ 도입을 언급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를 저지하겠다고 발표한 셈이다. 한국에선 상법상 허용되지 않는 포이즌 필은 적대적 M&A의 대응 수단으로 미국 등 선진국 시장에서는 일반화된 방법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트위터의 이사회가 도입한 포이즌 필의 구체적인 내용은, 내년 4월 14일까지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특정 주주가 15% 이상의 지분을 매입하는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싼값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수해야 할 주식 수가 더 늘어나 인수 매력도가 크게 반감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물론 트위터 이사회의 이런 대응은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다. 매각 자체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었단 얘기다. 그 신호를 탐지한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20일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자금 조달 계획을 제출했고, 25일 트위터 이사회가 공개 매수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트위터 인수전의 1막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라 해도 55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동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에게 가장 큰 자산인 테슬라 지분을 시장에 매각하면서 트위터 인수전은 2막에 들어선다. 묘하게도 트위터의 공개 매수를 선언한 지난달 20일, 테슬라는 시장 예상을 뛰어 넘는 1분기 실적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테슬라의 주가를 다시 1000달러선을 넘어 급등한 상황이었다. 테슬라의 주가가 긍정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는 점을 활용해 일론 머스크는 일주일간 약 10조원어치의 테슬라 지분을 시장에 매각했다. 대량의 매물은 자연스럽게 테슬라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또 잔여 테슬라 주식을 담보로 약 15조원의 대출을 받을 것이란 사실도 알려지면서, 수많은 테슬라 주주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모자른 30조원의 자금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확보할 예정이다. 7개의 금융기관에서 약 16조원의 대출을 일으키고, X홀딩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회사를 설립해 투자자를 유치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는 5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총 19명의 투자자가 자금을 대기로 했다고 밝혔다. 알왈리드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 세콰이어 캐피털, 앤드리슨호로위치 캐피털(A16Z), 카타르 국부펀드 등이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지, 트위터 인수전 2막의 결론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와 관련해 반독점법에 해당되는지 심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미국 현지 언론에선 인수 거래를 통보하면 최소 30일 뒤에 관련 당국의 지침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의 시도는 오너 대주주 없이 독립된 이사회가 전체 주주를 대신해서 경영하는 미국 상장사를 사고파는데 있어서 매우 효율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포이즌 필

적대적 인수·합병(M& 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하면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한 제도. 미국·일본·프랑스 등지가 시행하고 있고, 특히 미국·일본에서는 이사회 의결만으로 도입할 수 있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 서울대에서 계산통계학 학사, 듀크대에서 MBA 학위를 취득했으며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일했다. 2005년 VIG파트너스(옛 보고펀드) 설립 당시 창업 멤버로 합류한 뒤 2018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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