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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소통령’ 교육감 대해부]초중고 역사 ·사회·젠더 교육 현장 쏠림 논란 불거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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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호 11면

SPECIAL REPORT 

2019년 10월 23일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부 교사가 반일·성평등 관련 편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특별장학 결과 “특정 정치사상을 강요하는 교육 활동은 없었다”고 결론냈다. [연합뉴스]

2019년 10월 23일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부 교사가 반일·성평등 관련 편향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특별장학 결과 “특정 정치사상을 강요하는 교육 활동은 없었다”고 결론냈다. [연합뉴스]

“실제로 북녘은 어떤 곳일까? 내가 가본 북녘은 병영 사회가 아니었다. 감시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정이 넘쳤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구가하며 살고 있었다.”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김이경 이사가 지은 『우리는 통일세대』의 일부다. 지은이는 12년 무상 의무교육, 헌법으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기독교 1만2000명, 불교 1만명), 무상 주치의 제도, 투기의 대상이 아닌 주거 목적으로 제공하는 무상주택 등을 들어 “북이 추구하는 나라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강국”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의 편파 보도로 여전히 북한을 굶주림과 학살이 난무하는, 자유가 없는 가난한 나라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출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표현할 자유까지 뺏을 수는 없다. 문제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이 책을 초·중·고에 지원하는 ‘2021 교실로 온 평화통일 꾸러미 목록’에 넣었다는 점이다. 이 책 외에도 『렛츠통일: 치유와 통합』에서는 제주 4·3 사건이 남로당에 의한 폭동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이승만 정부가 무고한 사람을 좌익으로 몰아 학살한 것으로 서술했다. 『아하, DMZ』에서도 이승만 정부가 남쪽에 있던 공산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먼저 정부를 수립해 할 수 없이 북한이 정부를 수립한 것처럼 묘사했다. 편향 논란이 일자 서울시교육청은 “특정 이념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교육할 수 있는 자료로 구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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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서 편향 교과서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2008년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사태다. 사회 일각에서 ‘일장기가 걸려 있던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성조기였다’ ‘친일파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며,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는 부분 등을 들어 좌편향 교과서라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교과서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2019년 정부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3종은 ‘천안함 폭침 사건’을 누락했고, 3종은 침몰 또는 단순 사건으로 표현했다. 북한의 대표적 도발인 ‘연평도 포격’을 아예 다루지 않은 교과서도 있다.

반면 ‘한반도의 긴장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노력으로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씨마스)거나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책을 유지했고 남북관계는 악화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했다’(동아)는 내용이 실려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도발을 반복하는 현실과는 다른 시각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인 홍민정 변호사는 “그럼에도 최근 편향 교과서 논란이 크게 번지지 않는 것은 이젠 ‘교과서’ 자체의 역할이 미미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교과서 한권으로 수업을 다 했고, 교과서가 곧 법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학교 현장에서도 각종 참고서나 보조자료, 동영상 등을 더 많이 활용한다는 것이다.

편향적 역사 교육 우려가 불거지는 것은 진보 진영의 사상적 뿌리 때문이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을 거쳐 학생운동의 주류가 된 민족해방(NL) 계열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받아들여 자주·민주·통일을 주창했다. 미국의 신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한미군을 몰아내고(반미자주화), 파쇼독재 정권을 타도한 후에(반파쇼민주화),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달성하자(조국통일)는 것이다. NL은 1989년 출범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1995년 창립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 이어진다. 전교조 합법화와 교육감 직선제를 통해 학교 현장으로 진출한 진보 세력이 반미·통일 교육에 적극적인 이유다. 3선에 도전하고 있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989년부터 박현채 전 조선대 교수와 함께 『한국사회구성체논쟁』 4권을 저술한 대표적인 진보 이론가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17개 선거구 가운데 14곳에서 당선되면서 학교 현장에서는 진보적인 색채가 더 짙어졌다. 현 교육감 중에서 11명이 전교조 출신이다. 진보 교육의 중심에는 문재인 정부의 첫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을 지낸 김상곤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이 있다. 그는 2009년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확대를 내세우며 경기도 교육감에 당선됐다. 학생인권조례 역시 그의 정책 중 하나다. 2013년 경기교육감 재직 당시 필진을 모아 만든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사진)을 인정 교과서로 채택해 이듬해 2000여개 학교에 배부했다.

2017년에 ‘평화시대를 여는 통일시민’ ‘지구촌과 함께 하는 세계시민’까지 시민교육 시리즈가 완성됐다. 경기도 전체 학교의 68%(2018년 4월 기준)가 시민교육 교과서를 활용한다. 서울을 시작으로 광주·강원·충남·전북·세종·충북·전남·경남·인천을 거쳐 2019년에는 울산까지 시민교육 교과서를 활용하는 지역이 확대됐다. 시민교육 시리즈는 소수자 권리, 보편복지, 탈원전, 남북평화 등을 주로 논의하는데다, 교사용 지도서에는 신자유주의와 주류 언론에 대한 비판,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을 담고 있다. 오세라비 미래대안행동 여성 · 청년위원장은 “민주시민을 강조하는 교육 내용도 미성숙한 학생들을 무의식중에 편향된 정치 이념으로 세뇌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학교별로 교과서를 자율 선택하기 때문에 편향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반면 교사들은 현실적으로 교육감과 교장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1970년대부터 정부에서 만든 국정 교과서만 썼으나 2003년 검정 교과서 제도가 도입되면서 교육부 기준에 따라 민간 출판사가 발행한 교과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초등학교 예체능과 외국어, 중·고등학교 국어·사회·역사 과목 등이 검정 교과서를 사용한다.

2019년부터는 교육감이 승인한 인정 교과서를 폭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자체검증으로 기존 기초조사를 대신하고 교육청 심의를 통과하면 빠르면 3개월 안에 교과서로 채택할 수 있다. 현재 교과서 채택은 선정위원회 교사들이 3종을 선정하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순위를 정하고, 교장이 최종 확정하는 방식이다. 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는 “문제는 이 인정 교과서의 검증과정이 전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적인 집필 가이드라인만 통과하면 되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편향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과서 편향 논란은 편향 교육 논란으로 이어졌다. 2019년 혁신학교인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내 달리기 대회에서 학생들에게 반일 및 불매운동 구호가 적힌 포스터를 들게 하고, 수업 시간에 교사들이 ‘조국에 대한 혐의들은 모두 가짜뉴스니 믿지 말라’고 발언했다는 학생들의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같은해 부산의 한 고등학교 한국사 시험에서는 당시 수원지검 검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거 봐라 안 변한다/ 거두라 그 기대를/ 바꾸라 정치 검찰’이라는 글을 예시문으로 제시하고 ‘가장 관계 깊은 인물을 고르라’는 문제를 냈다. 보기로는 ‘조국, 이인영, 윤석열, 나경원’을 제시했고 정답은 ‘조국, 윤석열’이었다.

“교육 편향, 박정희 정권 때부터 있던 일”

지난 3월 30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혁신학교인 서울 금천구 문교초등학교의 특색사업인 맨발학교 개교식에 참석해 학생들과 맨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 3월 30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혁신학교인 서울 금천구 문교초등학교의 특색사업인 맨발학교 개교식에 참석해 학생들과 맨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역사·사회분야의 편향 논란은 젠더 갈등까지 번졌다. 2017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조 소속인 페미니즘 동아리 교사가 “운동장에서 노는 건 다 남자아이들이다. 왜 여자아이들은 운동장을 갖지 못하지? 아무도 이런 여성혐오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게다가 자신의 자리에 ‘남자들이 짐승이라면 필요한 것은 목줄’이라는 내용을 담은 포스터를 붙인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초등학생들에게 개인적 신념을 바탕으로 편향적 사상을 주입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극 수행평가를 하던 중 가해자를 여성, 피해자를 남성으로 설정한 것에 대해 교사가 “현실에서 성추행이나 갑질의 가해자가 되는 것은 남성”이라며 대본 수정을 지시해 논란이 빚어졌다. 이 교사는 대본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생기부에 좋은 이야기가 적힐 수 없다는 언급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편향 논란이 벌어졌을때 진상을 파악하고,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교육청은 편향 교육 논란에 개입하기를 꺼린다. 부산시교육청이 ‘정치 검찰’ 논란 교사를 징계하자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왔을 정도다. 홍민정 대표는 “문제를 일으키는 극히 일부의 교사 또는 외부 강사를 걸러내기 위해 모든 교과서, 모든 교육 콘텐트를 검열하고 관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면서도 “지금처럼 폐쇄적인 학교 분위기를 개방적인 학교로 바꿔서 학부모회, 운영위원회 등에서 수업을 더 많이 참관하고, 투명하게 운영하는지 지켜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들의 성향이 편향 교육과 관련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여러차례 전교조와 접촉했으나, 전교조는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고 거부했다. 대신 전교조를 탈퇴한 한 교사에게서 익명을 전제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교육의 편향 논란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있던 일이다. 그때는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에 대한 빨갱이 낙인 찍기, 맹목적인 반공 교육, 시민의식보다 국가를 우선하는 집단주의 등 극단적인 우편향이 문제였다. 전교조는 교육 현장에서 촌지와 학생에 대한 체벌, 성차별 등을 없애는 등의 역할을 했다. 다만 과거의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지나치게 진보쪽으로 기울어버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 하나의 기득권이 됐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대대적으로 조직을 혁신하고, 편향적 교육 논란의 재발 방지에도 힘써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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