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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지지한 러시아 친지와 인연 끊어” 우크라인들의 아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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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호 07면

김진경의 ‘호이, 채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크로스치엔코에 도착한 난민이 폴란드 국경경찰과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크로스치엔코에 도착한 난민이 폴란드 국경경찰과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월 25일 저녁 7시, 스위스 취리히 남쪽의 조용한 아파트 단지. ‘타라넨코 가족(Familie Taranenko)’이라는 이름 옆의 벨을 눌렀다. 유진 타라넨코가 문을 열었다. 이 집에는 원래 유진 부부와 아들 하나가 살았지만, 지금은 4명이 더 늘어나 총 7명이 산다. 유진의 아버지 페트로(58)와 어머니 류드밀라(56), 유진의 동생 율리아(34) 그리고 율리아의 딸 안나(7)가 그들로, 모두 우크라이나의 빌라 체르크바(Bila Tserkva)에서 왔다. 수도 키이우에서 약 90km 떨어진 도시다. 전쟁 난민이지만, 다행히 스위스에 사는 유진 덕분에 안전하게 지낼 곳을 찾았다. 이 가족에게서 전쟁 직전부터 지금까지의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들었다.

러 SNS선 군인에게 전쟁범죄 부추겨

스위스 취리히의 구호단체에서 자원봉사자가 음식을 나눠 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스위스 취리히의 구호단체에서 자원봉사자가 음식을 나눠 주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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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로와 류드밀라가 취리히에 도착한 것은 지난 2월 16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약 일주일 전이다. 부부는 2월 25일로 예정돼 있던 아들 유진네의 이사를 도우러 왔다. 유진은 “부모님의 비행기 티켓을 사 놓고도 계속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언제 전쟁이 시작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스위스를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여러 서구 미디어를 접하잖아요. 전쟁이 날 게 확실해 보였어요.” 류드밀라는 우크라이나 현지 분위기는 달랐다고 했다. 가구 회사의 세일즈 매니저였던 류드밀라가 상사에게 휴가 신청을 하면서 “전쟁이 날까 불안해서 하루라도 빨리 아들이 사는 스위스로 가야겠다”고 하니, 상사와 다른 직원들이 웃었다고 한다. 전쟁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거였다. 같은 회사에서 가구 디자이너로 일했던 페트로가 말했다. “평범한 우크라이나인들 중에는 전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정부나 언론의 책임도 있지요. 서구 미디어가 전쟁을 경고하면 가짜뉴스라고 했으니까요. 혼란을 막으려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부가 취리히에 도착한 지 4일 후인 2월 20일 키이우-취리히 간 직항 노선이 끊겼다. 다시 4일 후인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당시 유진의 동생 율리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 빌라 체르크바에 있었다. 유진은 2월 24일 새벽 5시에 율리아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기억했다. “동생이 울면서 말했어요. 전부 불타고 있다고, 5~10분마다 경보가 울린다고, 아이가 너무 무서워한다고요.” 멀리서 유진이 당장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율리아는 딸 안나와 함께 집에서 약 15㎞ 떨어진 마을 토미리프카(Tomylivka)로 피신했다. 살고 있던 빌라 체르크바보다 더 작고 안전한 동네, 친구의 부모가 사는 집이었다. 율리아는 “친구 부모라고는 해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우리를 받아줬다”고 했다. 율리아의 남편(이름이 율리아의 오빠와 같은 유진이다)은 우크라이나군에 입대했다. 의무병으로 복무 중이다.

공습은 계속됐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보가 울리면 주민들은 건물 지하 벙커로 내려가야 했다. “벙커라고 하지만 별다른 안전 시설도 없었어요. 그냥 지하실이죠. 그래도 윗층에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율리아의 가장 큰 걱정은 딸 안나였다. 안나는 전쟁이 시작된 후 매일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침대가 아니라 아파트의 좁은 복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안나가 신문에서 ‘포격이 있을 때 벽과 벽 사이의 복도가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읽고는 그 이후로….” 율리아의 목소리가 잠겼다. 러시아군의 공격도 두려웠지만, 일상생활도 막막했다. 상점은 오전에만 잠깐 문을 열었고, 대낮에도 통행금지가 생겼다. 며칠 뒤 먹을 음식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짓눌렸다. “나 자신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딸 걱정밖에 없었어요.” 율리아가 오빠 유진과 상의한 끝에 스위스로 오기로 결정한 건 안나 때문이었다.

율리아와 안나는 4월 10일에 폴란드 크라쿠프행 버스를 탔다. 차로 이동하는 데 12시간이 걸렸고, 중간에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검문소에서 대기하는 데 12시간이 소요됐다. 이들은 크라쿠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독일 뮌헨을 거쳐 4월 11일 저녁 8시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스위스로 들어온 우크라이나 난민 약 4만명과 마찬가지로, 페트로, 류드밀라, 율리아, 안나도 난민들에게 주는 1년짜리 ‘S(Schutzstatus·보호지위)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안나는 곧 스위스 학교에 들어갈 예정이다. 안나처럼 스위스 공용어(취리히의 경우 독일어)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별도의 어학 수업을 받는다.

“푸틴 지지자보다 침묵하는 사람이 나빠”

우크라이나 빌라 체르크바에서 전쟁을 피해 스위스 취리히로 온 가족. 왼쪽부터 율리아(34), 안나(7), 류드밀라(56), 페트로(58). [사진 김진경]

우크라이나 빌라 체르크바에서 전쟁을 피해 스위스 취리히로 온 가족. 왼쪽부터 율리아(34), 안나(7), 류드밀라(56), 페트로(58). [사진 김진경]

고향에서 2000㎞ 떨어진 취리히에 모인 이 우크라이나 가족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닌 보통의 러시아인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페트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러시아에 사는 사촌과 전쟁이 시작된 직후 대화를 했는데,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믿지 않습니다. 러시아 정부 말만 믿죠. 대화를 포기했습니다. 가족이지만 이제 인연을 끊었어요. 아마 예전에 남북한 사이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을 것 같네요.” 유진은 친구 얘기를 꺼냈다. “키이우에서 대학 다닐 때 알던 친구가 5년 전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갔어요. 그의 부모는 지금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 있고요(동남부 마리우폴은 현재 러시아군에 포위됐다). 그가 푸틴이 하는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우크라이나에서 핍박받는 러시아어 화자들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거예요. 자기 부모가 지하 벙커에 숨어 지내는데도 말입니다. 러시아 정부의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믿는 거죠.”

유진은 “러시아인의 85%는 푸틴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체포되고 처벌받는 게 두려워서 침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냐고 물었다. 유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수가 저항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들(러시아 정부)이 저항하는 시민 전부를 체포하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그런데 지금 러시아에서 시위를 하다 1명이 경찰에 잡히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요? 주변에 9명이 둘러서서 체포 영상을 찍어요. 그 9명이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상황에 개입했다면 체포가 가능하겠습니까?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푸틴을 지지하는 다수입니다.” 그는 대놓고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침묵하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고도 했다. “침묵은 책임지기 싫다는 뜻이죠. 지금 상황에서 푸틴을 비난하지 않는 자들은 푸틴을 지지하는 자들입니다.”

유진의 말을 듣고 있던 류드밀라와 율리아도 이에 동의했다. 율리아는 소셜미디어를 보면 러시아 대중의 생각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틱톡에서 수많은 젊은 러시아인이 군인들에게 민간인 살해나 강간 같은 전쟁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르라고 부추기고 있어요.” 가장 나이가 많은 페트로만은 “두려움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는 러시아인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페트로는 “젤렌스키 덕분에 우크라이나 국민이 어려운 상황에서 단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율리아는 젤렌스키가 전쟁 직후 안전한 곳으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키이우에 남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유진이 말했다. “젤렌스키는 유대인이고 원래 러시아어만 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 우크라이나어를 배웠죠.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나라에서 종교와 언어가 국민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준 인물입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끝날까. 아무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류드밀라가 말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바라는 건 평화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싸우기를 포기하고 푸틴의 손에 들어가는 건 평화가 아니라고,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선 국제 사회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이들은 강조했다. “나는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어요. 그게 후회됩니다. 다른 나라의 비극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한국은 전쟁을 겪었으니 우리를 더 잘 이해하리라 믿습니다.”(유진)

김진경 스위스 거주 작가. 한국에서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스페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 취리히로 이주한 뒤 한국과 스위스의 매체에 글을 기고해 왔다. 저서로 『오래된 유럽』이 있다. 현재 취리히대학에서 인터넷 플랫폼과 그것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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