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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아이 '철이'의 철학적 모험...소설가 김영하 새 장편 [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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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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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복복서가

주인공은 철이. 평양에 자리한 '휴먼매터스'라는 이름의 연구소에서 일하는 아버지는 최 박사. '로보트 태권브이'의 훈이와 아버지 김 박사가 떠오르는 작명법 같지만, 최 박사가 붙인 '철이'라는 이름은 실은 '철학'에서 따온 것이다. 때는 가까운 미래. 태권브이보다 훨씬 정교한 로봇이, 인간과 구분이 힘든 휴머노이드가 현실이 된 세상이다.

주인공 이름은 김영하의 신작 『작별인사』의 분위기를 짐작하는 힌트이기도 하다. SF처럼 펼쳐지는 이 소설은 SF적 설정의 기발함보다 인간이 인간과 비슷한 그 무엇을 만들수록 직면할 수밖에 없는 물음, 곧 인간 자신과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두드러진다.

눈치 빠른 독자들의 짐작대로 철이는 휴머노이드. 최 박사의 홈스쿨링과 함께 안전하고 쾌적한 연구소 주변에서만 살아온 철이는 '미등록 휴머노이드'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끌려간 뒤에야 자신이 인간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참혹한 환경일망정 수용소에서 철이는 난생처음 우정과 연대감을, 또 무균질이나 다름없는 연구소 주변과 달리 격렬하고 날 것 그대로인 세상을 경험한다.

특히 철이를 돕는 인간 선이와 인간에 반기를 든 달마가 벌이는 논쟁적 대화는 소설의 주제라고 할만한 핵심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살면서 겪을 온갖 고통을 떠올리면 과연 태어나는 것이 좋은 일일까. 의식을 업로드하는 식으로 불멸의 보편적 존재가 되는 길이 있다면, 개별성을 지닌 채 필멸의 존재로 살다 사라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에 대한 선이의 생각과 과감한 행동은 이후 철이의 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야기는 "중독성 강한 마약"

핵심 주제에 비하면 곁가지 같지만, 이야기의 효용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도 등장한다. 달마는 "이야기"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나 무의미한 고통에 시달리던 인간들이 만들어낸 "매우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고 주장한다. 마약까지는 몰라도, 철이는 시나 소설이나 영화에 곧잘 감동하던 아이였다. 하나 불멸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흥미를 잃는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276쪽)

200자 원고지 약 800매, 장편치고는 그리 부담 없는 분량이다. 작가는 2020년 밀리의 서재에 처음 공개한 원고를 2년간 고쳐 썼다. 이를 통해 분량도 배 가까이 늘었다. 김영하의 장편이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것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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