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文 못하고, 尹 할수있다? 선거개입 논란 부른 '당선인' 행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일 강원 춘천역을 방문, 철도 인프라 구측 현장을 점검한뒤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엔 국민의힘 강원도지사 후보인 김진태 전 의원이 동행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일 강원 춘천역을 방문, 철도 인프라 구측 현장을 점검한뒤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왼쪽엔 국민의힘 강원도지사 후보인 김진태 전 의원이 동행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대통령 당선인’이란 신분엔 독특하고 모호한 측면이 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직 대통령에 준하는 의전과 경호가 갖춰진다. 주요 국정 현안을 보고받고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를 지명할 인사권도 갖게 된다. 하지만 취임 전까진 선거 중립의 의무를 지는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권한과는 대조적으로 정치 활동엔 아무런 제약이 없다. ‘대통령처럼 막강하지만, 정치인처럼 자유로운’ 자리라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지방 순회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노골적 선거 개입”이라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역시 ‘대통령 당선인’의 모호한 신분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는 현직 대통령은 불가능에 가까운 전국 순회와 공약 이행 연설을 대통령 당선인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윤 당선인이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고 있다”며 당선인을 공무원 범주에 넣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하겠단 입장이다.

선거 개입이냐, 민생 행보냐

윤 당선인의 지방 순회는 지난달 11일 경북에 이어 다음날 대구를 방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예방한 것에서 본격 시작했다. 명분은 민생 행보였다. 이때만 해도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TK)를 찾은 터라 민주당의 반발이 크지 않았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 당시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가 배석해 ‘당내 선거개입’ 논란이 일었다. 유 변호사의 경쟁자가 윤 당선인과 대선후보 경선을 벌였던 홍준표 전 국민의힘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2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초원7단지 부영아파트에서 열린 '1기 신도시 노후아파트 현안 점검'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2일 오후 경기 안양시 동안구 초원7단지 부영아파트에서 열린 '1기 신도시 노후아파트 현안 점검'에 참석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하지만 윤 당선인이 경남과 충청·인천·경기·강원 지역 등 6월 지방선거의 접전 지역을 잇달아 방문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논란의 크기와 강도가 점차 커졌다. 윤 당선인이 현장에서 공약 이행을 재차 약속했고, 그 자리엔 매번 국민의힘 후보들이 있었다. 지난 2일엔 이번 선거의 핵심 승부처인 경기도의 거점 도시(일산·안양·수원·용인)을 윤 당선인이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가 동행하면서 선거개입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민주당에선 즉각 “접전 지역만 방문한 노골적 선거개입”“공정을 외치던 윤 당선인의 정치적 중립 위반”이란 반발이 터져 나왔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 윤 당선인이 민주당 현직 지사들과 동행한 경우도 많았다. 선거개입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난처하고 모호한 선관위

당선인의 모호한 신분 때문에 선관위의 입장 역시 난처하다. 선관위는 지난해 2월 대통령 당선인의 지방선거 관련 활동에 대한 민주당 조승래 의원 측 질의에 “당선인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선관위 관계자는 “당선인은 공직선거법상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지는 공무원이 아니라 자제 요청 외에 규제할 방법은 없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인 도진기 변호사도 “당선인은 법률적으로 공무원이 아닌, 곧 공무원이 될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실 현직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에 대한 판단도 쉽지는 않다. 선관위는 지난해 4월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약 한 달가량 앞두고 가덕도를 찾아 “신공항 예정지를 보고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말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특정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가 없는 대통령 직무수행 활동의 일환”이라며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의 지방 순회에 대한 선관위의 판단에 당시엔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결국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공수가 달라지는 내로남불 문제”라며 “서로가 정도를 지키면서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후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보고'에 참석해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선상 시찰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후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보고'에 참석해 가덕도 공항 예정지를 선상 시찰하고 있다. [뉴스1]

文대통령 “우리만 꽁꽁 묶어놨다”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개입 논란에 대한 해결책을 두고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당선인을 공무원 범주에 넣겠단 민주당 방안에 대해 ‘과잉 입법’이란 지적도 나온다. 선출직 공무원은 법률적으로 임기가 시작될 때부터 공무원의 의무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의 경우 현재는 일부 활동비만 받을 뿐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진 않고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원에게 엄격한 선거 중립을 요구하는 이유는 결국 관권선거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며 “실제 당선인에게 그런 영향력과 조직이 있는지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이 있는 상황에서 당선인에게 법적 신분을 과도하게 부여할 경우 인사권 등의 권한을 둘러싸고 예상치 못한 신구 권력다툼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통령과 당선인의 정치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풀어주자는 주장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JTBC 대담에서 “선거에 대한 중립이라는 명제를 앞세워서 현 정부에 대해서 마구잡이로 공격해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며 “우리만 유독 (대통령을) 꽁꽁 묶어놓고 선거를 치른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다른 나라처럼 대통령도 선거에 선수로 뛰는 게 해달라는 주장이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이 특정 정당에 당적을 가졌는데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이 다소 모순적인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신 교수의 말처럼 문 대통령은 현재도 민주당 당원이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통령 권한이 워낙 막강해,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이번 기회에 당선인과 대통령의 정치 활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