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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석·김수정의 논설위원이 간다

열리는 용산 시대, 9월 공원 40만㎡(12만평) 시민에 개방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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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수정
김수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민석
김민석 기자 중앙일보 전문기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육중한 회색 문도, 긴 담을 서성이며 주변을 경계하던 경찰도, 담장 안 미군 소속 보안 요원도 사라졌다. 지난달 30일부터 달라진 서울 이촌역(4호선, 경의·중앙선) 근처 용산기지 13번 게이트의 모습이다. 출입문은 이날부터 대통령직 인수위 경호처 직원과 국방부 담당 경찰이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후 1주일. 용산기지 남서쪽 광대한 부지는 불투명 펜스와 출입 금지 팻말, 도로 시멘트 방벽이 모두 없어진 녹지 가득한 곳으로 탈바꿈했다.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국방부 청사 아래 공간이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공원화 가속도 #미, 용산 발표 후 부지 통제권 이양 #대부분 주거지로 환경 우려 없어 #공사 최소화, 안전 점검 뒤 임시개방 #역사 담은 서울의 생태녹지축 허브 #기후위기 시대, 미래 세대 줄 선물 #

김수정 논설위원

김수정 논설위원

숱한 논란을 뒤로하고, 나흘 뒤면 '대통령 집무실 용산시대'가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는 10일엔 수많은 시민이 청와대를 산책하면서 '권력 핵심부'로서의 청와대 시대도 막을 내린다. 주목되는 건 118년 군 주둔지 용산기지의 공원화 속도가 빨라질지다. 1990년 6월 '용산기지 이전 한·미 기본합의서' 체결(노태우 정부), 2003년 한·미 정상 간 용산기지 평택 이전 합의(노무현 정부)를 거쳐 2005년 용산기지의 국가공원화를 결정했지만, 2016년 목표였던 기지 완전 반환은 부진한 상태다. 그러다 지난 3월 20일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긴다고 직접 발표하면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대통령 새 집무실(현 국방부 본청)에서 본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 전경. 눈에 들어오는 부지 대부분이 5월 내 반환 완료된다. 환경문제 없는 주거지여서 이르면 9월 공원으로 개방한다. 왼쪽 끝 하늘색은 수영장.

대통령 새 집무실(현 국방부 본청)에서 본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 전경. 눈에 들어오는 부지 대부분이 5월 내 반환 완료된다. 환경문제 없는 주거지여서 이르면 9월 공원으로 개방한다. 왼쪽 끝 하늘색은 수영장.

윤 당선인은 집무실과 용산 반환 부지를 연계해 국민 소통 공간과 공원으로 신속하게 조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소통 공간은 한·미가 함께 써온 신청사 앞 헬기장 주변이다. 주한미군 측은 윤 당선인의 집무실 이전 발표 2주쯤 뒤, 헬기장 통제권을 한국군에 즉시 넘기겠다고 알려왔다. 지금은 미군 헬기장을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겼다. 5일 현재 헬기장은 통제소와 방풍막이 사라졌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철제 울타리로 단장한 잔디 마당으로 변모했다.

용산 헬기장 남쪽에서 바라본 대통령 집무실(가운데 연회색 건물). 방풍벽 등이 철거되고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다. 공원과 집무실 지역 경계만 구분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TF]

용산 헬기장 남쪽에서 바라본 대통령 집무실(가운데 연회색 건물). 방풍벽 등이 철거되고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철제 울타리가 쳐져 있다. 공원과 집무실 지역 경계만 구분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TF]

미측은 6월 말 반환을 목표로 협상 중이던 청사 남쪽 사우스포스트의 학교 자리와 야구장, 121 종합병원 부지 통제권도 지난달 30일 0시를 기해 한국 측에 모두 이양했다. 13번, 14번 게이트 주변 부지다. 5월 중 반환 완료 의사도 함께 밝혔다고 한다. 엘리스 베이커 주한미군 용산기지사령관은 지난달 29일 미군들에게 페이스북으로 "13번 게이트(이촌역 게이트)와 14번 게이트(4호선 신용산역 앞)를 폐쇄한다"고 공지했다. 13번 게이트는 윤 당선인이 출근하는 통로로, 집무실까지 직선거리는 900m 정도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공원화 가속도  

미, 용산 발표 후 부지 통제권 이양

대부분 주거지로 환경 우려 없어

공사 최소화, 안전 점검 뒤 임시개방

역사 담은 서울의 생태녹지축 허브  

기후위기 시대, 미래 세대 줄 선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사우스포스트 부지 가운데 일부는 현재 반환 부지에서 빠져 있다. 한·미연합사가 훈련 때 쓰는 벙커와 이전 작업 중인 데이터 센터, 사용 중인 오·폐수 정화 시설인데 출입 통제권은 한국에 넘겼다. 집무실에 인접한 둔지산(屯之山·70m)의 반환 제외 부지(잔류 부지)인 드래곤힐 호텔과 미군 서포트센터도 대체 부지를 정해 그 곳으로 이전하는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군 관계자는 "전체 200만㎡(국립중앙박물관 등을 포함하면 300만㎡) 중 25%인 50만㎡가 반환된 셈"이라며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으로 용산기지 반환과 공원 조성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수위 청와대 이전 TF 관계자는 "집무실과 연계된 사우스포스트의 반환 부지 약 40만㎡(12만평)에 대해 안전 및 환경 점검을 한 뒤 이르면 9월 임시 개방 형태로 국민에게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내 야구장 부지. 주한미군과 학생들이 사용하던 야구장으로 가운데 서비스 시설을 중심으로 4개면이 있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내 야구장 부지. 주한미군과 학생들이 사용하던 야구장으로 가운데 서비스 시설을 중심으로 4개면이 있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 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군 협조를 얻어 13번 게이트를 통과해 반환된 스포츠필드(4만5000㎡)와 장군 숙소 부지(5만7000㎡), 조만간 반환될 121병원 등을 둘러봤다. 주한미군이 평택 험프리스 기지로 이전한 2019년 말부터 비어 있는 땅이다. 전지 작업을 안 해 무성해진 나무와 반환 부지에 쳐 둔 가림막 사이로 야구장과 유치원, 초·중등학교, 수영장, 붉은색 지붕의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북쪽 메인포스트와 달리 사우스포스트는 지난 70년 동안 숙소나 학교 등 주거지로 사용된 곳이어서 환경오염 문제는 크지 않을 것으로 인수위는 보고 있다. 1990년대 반환된 부지에 들어선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에 이어 지난해 7월 임시 개방한 서빙고역 인근 장교 숙소 부지(5만㎡)는 이국적 정취로 MZ세대의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여름 임시개방한 서빙고역 인근 장교숙소 5단지. 이국적 분위기로 젊은 층에 인기다.백종현 기자

지난해 여름 임시개방한 서빙고역 인근 장교숙소 5단지. 이국적 분위기로 젊은 층에 인기다.백종현 기자

국토교통부는 2008년 용산공원추진기획단을 출범시킨 이래 14년간 용산공원화 작업을 해왔다. 지난 2012년 국제공모 등을 거쳐 공원의 전체 컨셉트를 자연과 역사, 문화, 사람이 어우러진 국민 모두의 공간으로 정했다. 한국 최초의 국가공원인 만큼 각 정부를 이어가며 전문가, 시민이 함께 머리를 모았다. 런던 하이드파크(250만㎡)보다 크고, 뉴욕 센트럴파크(340만㎡)에 버금가는 거대한 도심 속 자연생태 휴식공간으로 밑그림을 그린 상태다. 기획단의 이정원 사무관은 "용산공원은 서울의 산소 공급원이자, 기후위기 시대 미래 세대에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부지 내 문화재 보존계획도 수립 중이다.

자연과의 공존을 강조하는 조병수 건축가는 "청와대 개방으로 서울의 생태녹지축이 북한산-북악산에서 내려와 남산에서 이어진 용산을 만나고 다시 관악산까지 이어지게 됐다"며 "용산공원은 그 축의 허브"라고 했다. 내년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조 건축가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공원의 미래는 보안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개방성을 살리고 시민 공감대를 모아 서울의 친환경 도시 설계라는 장기적 비전에 맞춘 그림으로 그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형적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인 용산공원은 산길과 물길이 이어지고 남산의 소나무 숲 바람이 한강으로 부는 바람길에 있는 땅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 전까지, 한반도의 역사는 피침(被侵)의 역사였고 그 중앙에 용산기지 땅이 있었다. 전략적 요충지여서다. 용산은 한강을 통해 바다로, 바깥으로 향하는 전략적인 교두보 위치에 있다. 13세기엔 고려를 침략한 몽골군이, 1882년 임오군란 땐 청 군대가 이곳에 진주했다. 1904년 러일전쟁에 나선 일본이 대륙진출과 한반도 합병의 전초기지로 삼으면서 군사기지로 확대했다.

121병원 부지가 일제 총독관저가 있던 자리다. 1939년 9월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지을 때까지 사용했다. 일본 패망 후 미군이 38선 이남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1945.9~1948.12)하고 철수했다가, 한국전쟁(6·25)이 끝나자 돌아온 뒤 1959년 121 종합병원을 지었다. 일대엔 건물 47개 동과 야구장 4개 면이 있다. 6·25 직후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관한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용산기지를 미군에 정식 공여한 이듬해 9월 미 8군사령부가 용산기지로 입주했다.

주한미군과 가족이 이용한 121야전병원. 지금은 폐쇄된 상태다. 국토부는 견고하게 지어진 이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재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병원 뒤로 용산지역의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주한미군과 가족이 이용한 121야전병원. 지금은 폐쇄된 상태다. 국토부는 견고하게 지어진 이 병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재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병원 뒤로 용산지역의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121병원 앞 연노란색 벙커는 일본군사령부의 작전센터였다. 일본 패망 직후 미 7사단 사령부가 3년간 사용하고 철수했고, 이후 대한민국 육군본부 정보작전실이 1년간 이용했다. 우리 군 수뇌부가 6·25를 맞은 곳, 한강 다리 폭파를 결정한 곳도 이곳이다. 국토부는 원형을 보존해 저층부는 문화시설로, 상층부는 방문자센터로 활용할 계획이다. 지금은 바깥에서만 볼 수 있다. 부근엔 장군 숙소였던 연립주택 20개 동과 축구장, 40~50년 전 지어진 초· 중학교 및 지원시설, 야외 수영장, 체육관 등 40개 동이 있다.

한미연합훈련 때 쓰고 있는 주한미군 지하벙커. 한미연합사가 평택으로 완전히 이전하면 반환된다. 1940년대 일본군이 지은 것으로 일본 패망후 일본군 무장해제를 하기 위해 주둔한 미군이 사용하다, 6.25 전후 우리 육군본부가 정보작전실로 사용했다. 전쟁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주한미군 시설이 됐다.

한미연합훈련 때 쓰고 있는 주한미군 지하벙커. 한미연합사가 평택으로 완전히 이전하면 반환된다. 1940년대 일본군이 지은 것으로 일본 패망후 일본군 무장해제를 하기 위해 주둔한 미군이 사용하다, 6.25 전후 우리 육군본부가 정보작전실로 사용했다. 전쟁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주한미군 시설이 됐다.

협의에 따라 반환지로 변경될 수도 있는 미군 서포트센터와 AFKN 방송국 등은 사회문화사적 의미가 크다. 서포트센터는 원래 미 8군클럽이었는데, 50~70년대 한국 대중 가수들의 주 무대였다. K-팝의 산실인 셈이다. 북쪽 메인포스트엔 일제 위수감옥, 둔지미 마을터, 기우제를 지낸 남단 터 등이 있다. 일본군 78연대 병영을 리모델링한 미 8군사령부 청사는 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될 때까지 유엔군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가 함께 사용한 건물이다. 6·25 전쟁을 막아내고 이후 한국의 경제 번영과 국력 신장을 가능케 한,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다. 연합사 뒤쪽으론 만초천(덩굴내)이 흐른다. 인왕산과 남산에서 발원해 삼각지 인근 만초천 본류와 만나는 지류다.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에 있는 드래곤힐 호텔. 둔지산(70m)정상쪽에 있어 전망이 좋다. 현재까진 비반환부지이나 대통령 집무실과 인접해 있어 대체 부지와 교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주한미군]

용산기지 사우스포스트에 있는 드래곤힐 호텔. 둔지산(70m)정상쪽에 있어 전망이 좋다. 현재까진 비반환부지이나 대통령 집무실과 인접해 있어 대체 부지와 교환 가능성도 열려 있다. [주한미군]

용산기지 역사를 10여년 연구한 김천수 용산학연구센터장은 "용산기지는 일제 40년 아픔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자리했던 곳이고 6·25 이후 70년 한·미동맹 발전의 역사가 중층적으로 쌓인 곳"이라며 "이런 역사성을 함께 살리는 국가 공원으로 조성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용산기지 전체 1000여 동 건물 중 역사성과 안전성 등의 조사를 거쳐 100개를 남겨 보존 또는 재활용할 계획이다.

젊은 층의 핫 플레이스가 된 서빙고역 장교 숙소 부지에선 김명중 작가전이 열리고 있다. 군 기지에서 공원으로 변모하는 과도기의 용산을 담은 사진전이다. 제목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꿈꾸며, 오늘을 바라본다.' 대한민국이 과거의 질곡을 딛고 넓은 세상으로, 미래로 향하는 도약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