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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개인정보는 안전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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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염태정 기자 중앙일보
염태정 경제에디터

염태정 경제에디터

안 되겠다, 휴대폰 좀 받아주라. 며칠 전 차를 몰고 가던 친구가 조수석에 앉은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신경 쓰여 운전이 힘드니 불필요한 문자나 전화가 오면 끊고 필요한 거 같으면 얘기해 달라고 했다. 다음 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최근 줄기차게 오는 선거용 문자·전화일 가능성이 높아 안 봐도 그만이나, 학원을 하는 친구라 학생·학부모한테 오는 문자나 전화는 바로 확인해 답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요즘 수시로 전국 각지에서 오는 선거 문자를 차단한다. 그래도 어느새 모르는 번호로 또 들어온다.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궁금해 두세 곳에 전화를 해봤는데 받지를 않는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쉴새 없이 날라오는 문자·전화뿐 아니라 평소 마케팅용 전화·문자도 상당하다. 문자 홍수도 문자 홍수지만, 모르는 사람이나 회사에서 이리 문자를 많이 받는 건 내 전화번호가 어디서 팔려 업자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특정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전화번호를 포함해 개인정보를 넣으면서 제3자 제공 등에 동의하긴 했어도 어디 영업용으로 팔린 게 아니라면 이리 많이 올 수 있나 싶다.

지방선거 앞두고 문자·전화 홍수
짜증과 함께 개인정보 유출 불안
온라인 생활, 비대면 활동 늘면서
개인정보 보호 강화 세계적 추세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리 팔린 게 전화번호만일까. 주민등록번호나 비밀번호까지 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내가 쓰지도 않았는데 카드로 얼마를 결제했다는 문자가 올 때는 피싱(phishing)으로 보고 무시하거나 차단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카드사용 내역을 확인해 보기도 한다.

이런 선거·마케팅용 문자·전화를 차단하려는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줄어들지 않는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달 선거사무소에서 선거문자 발송을 목적으로 제3자로부터 유권자 정보를 얻는 경우 반드시 유권자 동의를 받도록 했고, 개인정보 출처를 물으면 정확히 알려주도록 했다. 어기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은행연합회·금융투자협회 등 12개 금융권 단체는 공동으로 금융사의 영업 목적 전화를 한 번에 차단할 수 있는 ‘금융권 연락 중지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이용이 저조한 편이다.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업자 입장에선 사실 영업 활동의 수단을 막는 건데 적극적으로 알려줄 이유도 없다.

온라인 생활, 비대면 경제 활동이 자리 잡으면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만 건의 데이터가 생산·소비된다. 그 데이터 속에는 전화번호·주민등록번호·주소 같은 개인정보가 담겨 있다. 데이터가 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고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개인정보 침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입법은 세계적인 추세다.

유럽연합(EU)은 정보 접근권, 삭제권 등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일반 개인정보보호법’을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본인에 관한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판매하는 사업자에게 본인의 개인정보를 판매하지 말도록 지시할 권리를 가지며 사업자는 소비자가 이러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눈에 잘 띄게 고지해야 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소비자 프라이버시법’을 2020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개인정보보호강화’, 국회입법조사처) 한국에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한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이 2020년 8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비점 보완을 위한 재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개의 국정 과제 중 11번째로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 구현’을 밝혔다.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국민·기업·정부가 함께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네거티브 방식으로 공공 데이터를 전면 개방하고, 한 번의 인증, 한 번의 정보 입력, 한 번의 결제로 각종 공공 서비스를 처리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좋은 것이긴 한데 그 과정에서 역시 수많은 개인정보가 활용되는 만큼 개인정보 유출 우려도 높다.

공공의 이익과 개인정보의 수집·활용은 때때로 충돌한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확진자가 나왔던 서울 이태원 일대를 방문한 1만여 명의 휴대전화 접속기록을 파악한 게 대표적이다. 공익과 개인정보 활용의 균형점이 어디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긴 힘들지만, 기본은 철저한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한 데이터망 구축이다.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 보호는 단순한 정보 보호가 아니라 자유와 권리의 보호이며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