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말이야 바른 말이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옴니버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는 서울독립영화제가 기획하고 윤성호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프로젝트다. 박동훈·최하나·한인미·김소형·송현주 다섯 감독이 만든 단편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두 사람의 대화가 중심이고 촬영은 3시간 동안 했다.

작품을 여는 프롤로그는 윤성호 감독의 단편. 과거에 선보인 바 있는 ‘두근두근 외주용역’이다. 두 남자가 대화하는 신으로 이뤄진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카페에서 무심코 목격하는 장면에 저런 이야기가 오간다고 생각하면 섬뜩해지는 내용이다. 한 남자는 대기업 김 과장, 한 남자는 외주업체 양 사장이다. “가격을 이렇게 맞혀주면 우리 쪽이야 땡큐지. 그런데 사장님 쪽에 남는 게 있나?” “다 애들 갈아 넣는 거지.” 갑과 을의 대화. 여기서 양 사장은, 을조차 되지 못한 병을 ‘조지는’ 노하우를 김 과장에게 과시하고 전수한다. “어디 들어갈 궁리라도 할 시간이 있어야 관두는 거지, 그런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니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긴 시간 동안 축적한 양 사장의 노하우는 계속되고, 김 과장은 “내가 사장님한테 많이 배운다”며 웃는다. 양 사장은 속으로 생각한다. ‘너희들이 다 해먹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됐겠냐? 나도 운동권이었는데.’ 5분도 안 되는 단편이지만, 두 시간 넘는 노동영화도 도달하지 못한 통렬함이 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