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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여행사 줄줄이 망할 때 관광공사 성과급 잔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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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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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 영상 ‘범 내려 온다’의 한 장면. 이 영상을 포함한 한국 홍보 영상의 해외업체 광고비가 100억원이 넘는 것 으로 지난해 국정감사 때 밝혀졌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 영상 ‘범 내려 온다’의 한 장면. 이 영상을 포함한 한국 홍보 영상의 해외업체 광고비가 100억원이 넘는 것 으로 지난해 국정감사 때 밝혀졌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안영배 제25대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5월 17일 퇴임한다. 2018년 5월 16일 취임한 안 사장은 3년 임기를 마치고 1년 연임해 총 4년 관광공사를 이끌었다.

관광공사 사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가 내려오는 자리라지만, 안 사장은 역대 낙하산 중 가장 강력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홍보처 차장을 지냈는데, 그때 황희 현 문체부 장관과 한형민 차관보가 청와대 행정관이었다. 안 사장 임기 내내 “장관보다 더 센 관광공사 사장”이라고 수군거렸던 이유다. 안 사장은 ‘광흥창팀’과 ‘더불어포럼’ 두 곳에서 활동한 문재인 정부 ‘개국 공신’이기도 하다.

워라벨 관광공사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겪은 여행사 대표들이 시위하는 모습. 뉴스1

코로나 사태로 최악의 위기를 겪은 여행사 대표들이 시위하는 모습. 뉴스1

“공사가 관광여가사회 실현 캠페인을 주도하려면 공사 임직원부터 삶의 질이 높아져야 합니다. 공사 내의 업무 스타일과 휴가 문화를 비롯한 전반적인 직장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워라벨 기업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2018년 7월 16일 안 사장이 임명된 지 약 2개월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읽은 취임사의 맨 마지막 단락에서 인용했다. 이날 간담회는 매우 중요하다. 무성한 소문과 함께 취임한 안 사장의 선 첫 자리이자, 임기 4년간 딱 한 번 치른 공식 기자간담회였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 안 사장은 언론과의 공식 접촉을 일절 삼갔다.

앞서 인용한 구절은 A4 2장 분량 취임사의 결론에 해당하는 글인데, 처음엔 관광공사 사보용 원고인가 의심했다. 신임 사장이 취임 간담회에서 한국 관광의 새 비전은 제시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직장을 ‘대표적인 워라벨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만 하고 있어서다. 신임 사장에게 듣고 싶은 건, 공사 임직원의 삶의 질 개선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대 최고의 직장

안영배 사장

안영배 사장

관광공사는 2019년과 2020년 연속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이 중 2020년 평가 결과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2020년 1월 발발한 코로나 사태로 국내 관광 생태계가 사실상 붕괴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행업은 손실보상금 지원 대상에서 내내 빠졌다가 대선을 앞둔 지난 2월 포함됐다. 지난 2년간 질병관리청이 날마다 “여행을 자제해달라”고 말했어도, 정부가 여행사 영업을 제한하거나 금지한 적은 없었다는 게 제외의 이유였다. 바로 그 시절, 여행사가 줄줄이 문 닫고 여행사 직원들이 배달로 연명하고 여행사 사장들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던 시절, 관광공사는 54개 준정부기관 중 A등급을 받은 11개 기관에 당당히 들어갔다.

낙하산의 등급

이내 성과급 잔치가 벌어졌다. 안 사장의 경우 연봉의 40%인 5191만원을 성과급으로 받았다. 공사 직원들은 보통 월급의 80%이 나왔다. 관광공사가 2년 연속 A등급을 받은 덕분에 안 사장이 2년간 받은 성과급은 1억원이 넘는다.

여행사 대표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일감이 끊긴 한 관광안내통역사는 “누구를 위한 관광공사냐”며 탄식했다. 한 관광학과 교수는 “낙하산의 장점으로 보인다”며 “관광공사 사장의 파워가 세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외래 방문객이 90% 이상 폭락했고 여행업계가 최악의 불황을 겪은 2020년, 관광공사는 경영평가에서 어떻게 A등급을 받을 수 있었을까. 기재부는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 기업 지원, 디지털 혁신 등 공공기관의 선도적 역할 및 경영개선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피해 기업 지원 부문은 앞서 지적했으니 디지털 혁신 부문을 보자.

디지털 혁신은 분명한 성과가 있었다. ‘범 내려온다’로 대표되는 한국 홍보 영상이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관광공사의 홍보 영상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는 유튜브·페이스북 등에서 9억 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기록적인 흥행 뒤에 100억원이 넘는 광고비가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제작비(약 22억6400만원)의 다섯 배에 가까운 101억4000만원이 해외업체 광고비로 지출됐다고 폭로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도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영상 조회 수에서 90% 이상이 유튜브 광고에 의한 트래픽”이라고 지적했다.

관광업계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어도 관광공사는 승승장구했다. 낙하산 파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내 새 낙하산이 내려올 테다. 이번 낙하산은 관광공사를 넘어 관광업계 전체에도 좋은 낙하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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