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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중 모스크바 출신은 없다…러군 전사자 슬픈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군대를 지탱하는 건 모스크바에서 수천㎞ 떨어진 극동·시베리아 지역에서 온 '흙수저' 출신들이었다.

러시아군 생도들이 지난달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리허설에 참가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군 생도들이 지난달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리허설에 참가했다. AFP=연합뉴스

러, 주로 극동·시베리아 지역에서 군 인력 모집

러시아 지도.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에 있는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은 소득 수준이 낮은 편이다. 높은 급여를 주는 군 입대를 통해 출세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두 지역에서 많이 자원 입대했는데, 전사자가 많았다. 외교부 제공

러시아 지도. 수도 모스크바에서 동쪽에 있는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은 소득 수준이 낮은 편이다. 높은 급여를 주는 군 입대를 통해 출세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두 지역에서 많이 자원 입대했는데, 전사자가 많았다. 외교부 제공

영국 더타임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대부분의 러시아군이 수도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3일(현지시간) 전했다. 춥고 척박한 시베리아·극동 지역과 소수민족별로 구분된 일부 공화국 등, 러시아 내 비주류 지역에서 온 병사들이 많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70여일 넘게 이어지면서 이 지역 병사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싱크탱크 국방전략센터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는 제외하고 주로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에서 매주 200명씩 입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부차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제64분리 차량화 소총 여단도 모스크바 동쪽 6000㎞ 넘게 떨어진 극동 지역의 하바롭스크의 작은 마을에 기지를 두고 있다. 하바롭스크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모스크바와 7시간 시차가 있다. 전쟁 초기엔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약탈한 TV·세탁기·귀금속·화장품등을 벨라루스 국경 도시 마지르의 택배회사에서 시베리아 외딴 지방 등으로 보내는 CCTV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러시아의 가족들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약탈한 물건들을 벨라루스 한 택배 회사에서 러시아 집으로 택배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소셜미디어 캡처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약탈한 물건들을 벨라루스 한 택배 회사에서 러시아 집으로 택배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소셜미디어 캡처

WP "러군 사망자 대부분 가난한 공화국 출신"

입대자가 많은 만큼 사망자도 많았다. 러시아 독립 매체 메디아조나는 지난달 말 러시아군 사망 내용이 나온 1700여개 기사를 연구한 결과 최소 1774명이 사망(서방은 1만5000여명 사망 추정)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중 러시아 남부의 북캅카스의 다게스탄 공화국, 동부 시베리아의 부랴티야 공화국 등에서만 200여명 넘게 전사했다. 메디아조나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의 전사자는 없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다게스탄·부랴티야 공화국은 가난한 지역"이라고 전했다. 다게스탄 공화국의 지난해 평균 급여는 3만2000루블(약 60만원), 부랴티야 공화국의 평균 급여는 4만4000루블(약 84만원)이다. 모스크바의 평균 급여는 11만 루블(약 210만원)이다.

러시아 독립 매체 메두자에 따르면 다게스탄 공화국은 지난 3월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할 병사들을 모집했다. 일반 사병 월급은 17만7000루블(약 330만원)이었다. 러시아의 올해 최저 생활비는 1인당 월 1만3000루블(약 24만원) 정도다. 우크라이나 한 달 파병으로 연간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 가난한 지역에선 젊은이들이 군대에 자원 입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난한 집 위해 군 입대했는데…시신으로 돌아와 

러시아 군인들이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군인들이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메두자는 "다게스탄 공화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가난한 집을 일으켜 세우고 출세를 위해 군대에 가고 싶어 한다. 과거 각 지역에서 징집 인원을 제한하자 징집위원회에 뇌물을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많은 이들이 입대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 리아노보스티는 지난 3월 "다게스탄 공화국에서 일주일만에 300명 이상이 병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100여명 넘게 전사했고, 소수만 시신으로 돌아왔다. 20대의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 푸틴 대통령의 '특별군사작전'을 옹호했던 이들도 죽어서 온 아들, 친척 등을 보고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전쟁에 나가야 하나", "어리석은 학살의 결과"라며 분노했다. 가디언은 지난 3월 시베리아 지역 케메로보의 러시아 중년 여성이 "우리 아들이 대포 재료로 보내졌다. 왜 우크라이나에 보냈나"라며 주지사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최정현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 등은 소득이 낮고 생활 수준이 열악하다. 다른 직업보다 급여가 높은 군 입대로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이들이 많다. 여론 통제도 잘 되고 있어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진실에 대해 알지 못해 지원한 젊은 청년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반면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서 징집하지 않은 것은 러시아 내부에서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서도 징집한다면 서방에서 '러시아가 정말 위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러, 9일 전승절에 모스크바에서도 징집할까 

러시아 군인들이 지난달 2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리허설에서 자주포 차량과 군용 차량을 끌고 붉은 광장 쪽으로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군인들이 지난달 28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리허설에서 자주포 차량과 군용 차량을 끌고 붉은 광장 쪽으로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는 9일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일)에 우크라이나 전면전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대규모 징집에 나설 전망이다. 르피가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배치된 18만~20만명 외에 예비군 200만명, 1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징집병 25만명을 동원해 약 250만명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이들이 몇 주 안에 전장에 나간다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전투력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는 장비와 탄약은 물론 식량도 부족한 상황이다. 캐롤 그리모 포터 프랑스의 러시아·동유럽 연구센터 회장은 "총동원령이 내려지면 많은 젊은이들이 러시아를 떠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모스크바 등에서 일부 엘리트 젊은이들이 떠나 법이 더 엄격해졌다. 강제로 징집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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