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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성소수자 인권 보장이 위헌이라는 서울시의 궤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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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울퀴어축제 법인 설립 불허 파장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7년을 고민했다는 동성애자 아들 예준씨의 커밍아웃에 당황하던 엄마는 아들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를 찾는다. 세계 최대 퀴어(성 소수자) 축제의 하나인 ‘프라이드 토론토’에서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흔들며 웃는 혜준씨를 엄마는 꼭 안아준다.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 엄마도 함께 깃발을 흔든다. 성 소수자 자녀를 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2021)의 한 장면이다.

기업들도 퀴어축제 후원

토론토뿐 아니다. 뉴욕·런던·베를린·마드리드·암스테르담·시드니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일 년에 한 번씩 퀴어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40~50년 역사에 참가 인원이 수만, 수십만에서 100만 명에 이른다. 성 소수자뿐 아니라 현지인, 관광객이 함께 어울린다. 기업 협찬 광고도 내걸린다. ‘프라이드 토론토’는 아예 토론토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에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행진에 참여했다. 각기 다른 성 정체성,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으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리다. 인터넷에서는 해외여행 중 우연히 퀴어 퍼레이드를 봤는데 말 그대로 축제 같은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는 체험담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시의 자의적 헌법 해석 논란
성소수자도 국민, 평등히 대우해야
다양성 인정하는 게 퀴어축제 힘
해외에선 관광상품 자리잡기도

우리 상황은 다르다. 서울·인천 등 8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데 젊은 세대의 반응은 달라졌지만, 아직 ‘퀴어’란 단어를 낯설어하는 대중 정서가 있다. 거침없이 혐오를 표출하는 이들도 많다. 앞서 ‘너에게 가는 길’의 예준씨 모자도 인천 퀴어퍼레이드를 찾았다가 ‘동성애는 죄’라는 피켓을 든 보수 개신교 시위대에 둘러싸였다.

지난해에는 서울시가 서울퀴어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의 비영리 법인 신청을 불허해 논란이 됐다. 조직위는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서울시에 “합리적 이유 없이 성 소수자를 차별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권고했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등 17개 외국 대사관도 지난 1월 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한다는 의견서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전달했다.

‘안티 퀴어’ 불붙인 서울시

지난해 11월 6일 대구 도심 일대에서 열린 제13회 대구퀴어문화 축제의 퍼레이드 장면. 참가자들이 다양한 성 정체성의 화합을 상징하는 무지개 색 마스크를 쓰고 행진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6일 대구 도심 일대에서 열린 제13회 대구퀴어문화 축제의 퍼레이드 장면. 참가자들이 다양한 성 정체성의 화합을 상징하는 무지개 색 마스크를 쓰고 행진하고 있다. [뉴스1]

그런데 최근, 서울시가 법인 신청 불허 사유로 ‘성 소수자 권리 보장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헌법에 ‘결혼과 가족생활은 양성평등에 기초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성 소수자의 평등과 권리 보장’을 내세운 조직위에 법인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요지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3월 중앙행심위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성 소수자가 평등한 대우를 받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는 법인 설립 목적이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헌법 36조 1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양성평등과 성 소수자 권리는 배치되며 우리 헌법은 양성평등만 보장하고 성 소수자 인권 보장은 위헌이라는 식의, 난센스 수준의 자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위헌 소송을 만장일치로 기각한 바 있다. 조직위 측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 11조가 정하는 헌법의 기본 원칙”이라며 “성 소수자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양성평등 Yes, 성평등 No’ 슬로건

그런데 이처럼 양성평등과 성 소수자(인권)를 대립항으로 놓는 것은 ‘양성평등은 Yes, 성평등은 No’라는 일각의 슬로건을 떠올리게 한다. ‘양성’평등은 남녀 두 개 성만 인정하는 것이고 ‘성’평등은 동성애·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인정하는 것이니 ‘양성평등은 찬성, 성평등은 반대’를 외치는 목소리 말이다.

실제 지난 2017년 여가부의 제2차 ‘양성평등정책기본계획’ 공청회는 성평등 용어 사용에 항의하는 시위대로 일대 혼란이 일었다. 결국 기본계획 원안에 있던 성평등이라는 단어 일부가 다른 표현으로 바뀌었다. 2019년 국회법제사법위원회가 법무부 인권국 양성평등 교육 예산을  삭감할 때도 해당 교재에 성평등이란 용어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영어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는 성평등으로도 양성평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며, 둘을 대립적 관계로 보는 것 자체가 악의적인 오독이다. 양성평등이 양성‘만’의 평등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정미 충북여성재단 연구위원은 “‘양성평등’ 프레임은 논리적으로 대응하기 무색할 만큼 모순적 억측에 기반하지만, 시위를 조직하거나 정치인들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는 등 물리적 영향력을 동원하고 있다(‘반격의 양성평등에서 (양)성평등 재정립으로’)”고 우려했다.

퀴어축제를 거부할 권리?

그 외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기 싫어할 권리, 거부할 권리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으니 서울시청 앞 광장 같은 도심 한복판이 아니라 외곽에서 여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낸다. 하지만 퀴어퍼레이드 자체가 음지에 있던 소수자들이 존재를 드러내며 사회 성원의 하나임을 인증받으려는 것인데, 이를 그들만의 게토(ghetto)에서 하라는 것은 행사의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다. 신체 노출이 심하고 음란행위를 한다는 ‘고발’도 있는데, 관계자들은 사실과 다르고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과잉 일반화하면서 ‘성 소수자=이상성욕·성도착’이란 편견과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동성애자는 우리 사회를 타락시키는 악의 근원으로 악마화되었다”는 박경미 이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책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에서 성서 역시 시대적 산물이라는 한계를 무시한 “문자적 성서해석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것은 그 자체가 성서에 대한 배반”이라고 썼다. 그는 “문자적 성서해석은 실제로 성서의 권위를 내세워 자신들의 편견이나 혐오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며 “살아있는 사람을 받아들일지 말지 논쟁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도 강조했다.

같은 책에 따르면 과연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이냐는 오랜 논쟁에 대해서는 명백한 결론이 없지만, 미국 소아학회는 “성적 지향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데 합의한다. “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되고,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인지하게 되는 10대에는 이미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성 소수자들은 “성적 지향을 발견했다”는 표현을 쓴다. “선택이 아니고, 바꿀 수도 없다”는 뜻이다.

군대도 성적 자기결정권 인정

한편 이런 가운데 최근 대법원이 ‘동성 군인이 사적 공간에서 합의해 가진 성관계를 처벌할 수 없다’며 성 소수자 군인 처벌 관행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 눈길을 끈다. 미국의 전시법을 차용해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국방경비법(194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제정 74년 만의 일대 혁신이다. 이를 이어 1962년에 제정된 군형법은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성 군인의 성행위를 ‘추행’으로 처벌해왔다. “강제추행이 아니라 ‘추하다고 보이는 행위’ 자체를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취급한 것(한가람 변호사)”이다.

지난달 21일 대법원은 근무시간 외 영외에서 합의해 성관계했다가 추행죄로 기소된 두 남성 군인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성 소수자 군인 색출 수사’의 반인권성·위법성도 함께 지적했다. 대법원은 보도자료에서 “다수의 대법관이 오늘날 국내외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강조했다.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게 군 기강 유지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관점의 판결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어 군형법 추행죄 폐지안도 발의됐다. 성 소수자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지만,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