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국악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1990년대 중국에서 유학할 때 둔황석굴을 보러 간쑤성(甘肅省)에 여행간 적이 있다. 당시 둔황석굴은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되지 않았기에 관광 가능한 몇 군데만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사막에서 보기 힘들다는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란저우시(蘭州)에서 위구르족 문화를 즐기고, 지금껏 먹은 것 중 최고로 맛있는 훠궈를 맛보았다. 한족 상인이 파는 호랑이 발톱도 구경했다. 호랑이 발바닥을 통째로 팔고 있었다. 호랑이의 괴력과 미신 탓에 호랑이 뼈나 발톱 등은 정력을 강화하는 보약으로 사용돼 왔다. 같은 이유로 한때 내 고향 알래스카에서도 곰들이 발바닥을 잘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국제협약 개정 덕분에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호랑이나 곰의 기력은 발바닥이 절단된 채 숲에 버려져 죽는 순간 떠나 버린다. 마찬가지로 문화도 특정한 필수요소가 제거되는 순간 그 정신이 소실될 수 있다. 팬데믹 상황에서 국악이 많은 이들의 기운을 북돋았던 것처럼 국악이 국가의 기운을 유지하는 ‘기력’이라 한다면, 국악의 ‘네 발’인 스승, 연주가, 관객, 협회(직원 및 후원자 포함)는 반드시 긴밀하게 유지돼야 한다.

초등 교과과정 제외 논란
국악은 나라의 기력 같아
한번 상실하면 회복 못해
문화 정체성 포기할 건가

국악의 흥겨운 리듬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끌어들인 이날치 밴드. [뉴스1]

국악의 흥겨운 리듬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끌어들인 이날치 밴드. [뉴스1]

호랑이와 곰을 밀렵한 것이 소위 ‘전통’이었다면, 국악에게 가장 사악한 밀렵꾼은 바로 시대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에 한국의 마지막 비파 명인이 후계자 없이 죽었다. 현대 비파 제작자들이 전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연주자의 맥이 끊겼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다. 아악도 마찬가지다. 해방 및 한국전쟁 후인 1964년에 문묘제례악이 회복됐지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금(琴·거문고)과 슬(瑟·비파) 명인들도 세상을 떠났기에, 새 연주자들은 아악 연주를 책으로 습득하기 전까지는 제례 때 연주하는 시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책을 통한 습득은 연주자가 어린 시절부터 구술로 전수받는 학습에 비길 수 없다. 마지막 명인이 세상을 뜨면서 그가 구현한 음악 또한 떠나고 말았다. 연주자는 곧 악기다. 어떤 언어가 모국어인 마지막 원어민이 사망하면, 그 언어를 배울 수는 있어도 원래 언어를 완전히 구현할 수는 없다. 악기도 마찬가지다. ‘이질적인’ 억양이 섞이고야 만다.

최근 한국 정부가 교육과정 개편 과정에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국악 학습 내용을 삭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산골짝에서 곤히 잠자던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다. 국악계에서는 곧장 성명서를 발표하며 반발했고, 결국 정부는 지난주 해당 결정을 재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생애의 대부분을 국악에 바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한국의 전통문화가 점점 소멸되는 현실을 실감해야 했다.

최근에 영국 영화감독 니콜라스 보너의 강연을 들었다. 북한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보너 감독은 한 작품에서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1936~2018)의 곡을 사용한 적이 있다. 나는 “남한의 현대 가야금 거장인 황병기 선생의 곡이 북한에서 검열 대상이 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황 선생이 연주한 12줄의 명주실을 감은 가야금은 음색이 구슬퍼서, 금속줄로 된 21줄 가야금을 사용하는 북한에서는 꺼리기 때문이다. 보너 감독은 “감독 자신도, 검열관도 소리의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내게는 그 차이가 확연했는데도 말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방영한 드라마 ‘파친코’ 첫 에피소드의 굿판 장면에서 한국 전통의 장단 대신 아메리카 원주민 리듬을 차용해 연주했다는 사실을 한국 시청자들이 알아차렸을지 의문이다.

미래는 언제나 우리를 과거에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우리는 “무엇을 지켜내겠다”고 결심한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미래에 반드시 필요한 문화적 요소를 결정하는 것이다. 1962년에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은 국악을 비롯한 무형문화재가 미래에 한국인들의 정체성에서 담당해야 할 핵심적인 역할을 인지한 조치다. 이런 무형문화재는 한번 소실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다. 무형문화재에는 국가 브랜드보다 훨씬 심오한 정체성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한 나라를 지도에 그려진 선 이상으로 정의하는, 공통의 자아상이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국악을 배제하겠다는 황당한 발표가 나왔을 때, 호랑이는 산을 내려와 ‘장림 깊은 골로… 전동 같은 앞다리… 쇠낫 같은 발톱으로…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하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이날치 ‘범 내려온다’) 포효했다. 호랑이 해에 판소리의 발생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