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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용두사미로 끝난 공수처의 ‘고발사주’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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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해 10월 '고발사주 국기문란 진상규명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고발사주 국기문란 진상규명 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고발장 작성자 못 찾아 실체적 진실 미궁  

무더기 통신조회 등 대선판 흔들고 일단락

8개월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며 대선판을 뒤흔들었던 ‘고발사주’ 의혹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났다. 어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무혐의 처분하면서다. 공수처는 여운국 차장을 주임검사로 지정하고 검사 인력의 절반 이상을 투입할 만큼 승부수를 던졌지만 수사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여러 피의자 중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만 일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사건의 본질인 고발장 작성자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수사 핵심으로 여겼던 직권남용 의혹은 무혐의 처분됐다. 가장 중요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면서 손 보호관에게 적용된 선거법 위반 등 4개 혐의는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지난해 9월 수사 개시 때만 해도 공수처는 엄청난 비리가 연루돼 있는 듯 행동했다. 사건 접수 3일 만에 윤 당선인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손 보호관과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다발로 벌이며 강제수사에 나섰다. 여당도 공수처 수사를 빌미로 윤 당선인을 대대적으로 압박했다.

그러나 손 보호관에 대한 체포영장 1건과 구속영장 2건이 차례로 기각되며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다. 심지어 김웅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이 위법했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와 수집한 자료마저 증거 능력을 상실했다. 이 가운데 야당 의원과 언론인 등을 무더기 통신 조회한 사실이 밝혀져 불법사찰 및 인권침해 논란까지 빚었다.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차장이 4일 '고발사주' 의혹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차장이 4일 '고발사주' 의혹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공수처의 존재 이유에 의문이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여운국 차장의 말대로 “아마추어 공수처”는 8개월간 온갖 요란만 떨어 놓고 국민에게 빈손(空手·공수)만 내민 꼴이 됐다. 대선 기간 내내 ‘윤수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작 윤 당선인에 대해선 조사 한 번 하지 못했다.

물론 수사가 용두사미였다고 해서 피의자들이 정치적 책임까지 면죄부를 얻은 건 아니다. 2020년 4월 총선 기간 고발장 작성·전달에 손 보호관과 김웅 의원이 연루돼 있는 것은 부적절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 사건을 손 보호관 개인의 일탈로만 보기도 어렵다. 김웅 의원은 사건 초기 오락가락 말을 바꾸며 수사에 혼선을 주고 불투명한 처신으로 의혹만 키웠다. 피의자들의 행동 역시 떳떳하진 않다는 이야기다.

공수처의 이번 수사 결과 발표는 사법시스템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수사의 목표는 1차적으로 범죄 혐의 입증이지만, 또 다른 목적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다. 수사기관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토대로 사실의 조각을 모아 진실의 모자이크를 완성한다. 이때 행사되는 권력은 정치적 목적이나 일개 파당에 의해 좌우돼선 안 되며, 오직 법과 원칙에 의거해야 한다. 공수처의 ‘고발사주’ 수사는 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