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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그린피까지 정부가 정해주면 어떻게 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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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같은 당 10명이 공동 발의한 ‘대중골프장 이용요금심의위원회’ 설치를 위한 체육시설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달 입법 예고됐다. 그린피가 폭등했으니 위원회가 나서서 가격을 정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코로나 19 와중에 일부 골프장의 횡포가 심한 건 사실이다. 특히 회원의 눈치 볼 일 없는 대중 골프장들이 마음대로 가격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37%나 된다고 한다.

그린을 모래밭처럼 만들어 놓고 그린피를 다 받고, 티잉 그라운드에 스크린 골프장처럼 매트를 깔아 놓고 돈을 더 받은 골프장도 수두룩하다. 카트 사용료는 자동차 렌트비로 따지자면 고급 스포츠카를 빌리는 셈이다. 캐디피도 훌쩍 올랐는데 서비스 수준은 오히려 떨어졌다. 일부 골프장 주인은 카트 관리, 코스 관리, 식음료 납품을 담당하는 회사를 자녀에게 맡겨 이익을 몰아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골프장 이용 요금을 정부가 정해준다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잖아도 골프장 때문에 고생하는 골퍼들이 더 괴로워질 것 같다.

가격 통제는 공급 위축, 암시장 증가, 품질 저하, 기업 행동 왜곡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건 상식이다. 프랑스 혁명 정부가 반값 우유 정책을 시행하자 농부들이 젖소 사육을 하지 않아 결국 우윳값이 10배로 뛴 예가 대표적이다.

그린피가 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코로나 19 이후 골프연습장 수가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수요가 2배인데 골프장 수는 변동이 없고, 해외여행 길은 막혔으니 가격이 올라간 것이다.

골프장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하는 카트 사용료는 정부가 정해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독과점 품목도 아닌 그린피를 정부가 정하는 건 부작용만 나을 것이다. 뒷돈을 주고 부킹을 해야 할 거고, 골프장 관리는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린피 심의위원회는 골프장의 로비 대상이 될 게 뻔하다. 세금이 무서워 회원제에서 대중제로 전환한 골프장들은 다시 회원제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십억 원짜리 무기명 회원권을 팔 것이다. 결국 부자들만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골프가 흥미로운 것은 다양성 때문이다. 골프장은 볼링장이나 테니스장처럼 규격화돼 있지 않다. 골프장을 둘러싼 자연과 설계 방법, 클럽하우스 분위기 등에 따라 코스가 천차만별이다.

이런 골프장들의 그린피를 무슨 기준으로 정할까. 외국인 설계자를 쓴 코스는 가산점을 줄까. 바다를 낀 골프장은 20% 정도 경치 값을 받을 수 있게 할까. 타이거 우즈가 라운드한 골프장은 이용료 5%를 가산할까. 근접성은 대도시 기준으로 할 것인가, 톨게이트 기준 거리로 정할 것인가. 아침과 오후, 주중과 주말, 성수기와 비수기, 비 오는 날과 안개 낀 날 등의 요금도 일일이 다 정해줄 것인가.

미국은 지자체가 만든 골프장이 전체 골프장의 17%, 약 2500개나 된다. US오픈 등 메이저 대회를 여는 캘리포니아 주의 토리 파인스, 뉴욕의 베스 페이지 등 명문 코스도 지자체가 건설한 것이다. 타이거 우즈도 시립 코스를 설계하고 있다.

한국은 공공 골프장이 1% 미만이다. 전세계 최고의 골프 열기를 가진 나라치고는 공공 골프장이 너무 적다. 사기업 골프장 사장이 횡포를 부리기엔 딱 좋은 구조다. 골프장 이용료를 정해주고 싶다면, 골퍼들에게서 받은 세금으로 공공 골프장을 만들어 이용료를 정하면 된다. 골프 특수에 횡포를 부렸던 골프장 사장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공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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