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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불붙은 낙태 논쟁, 한국은…헌법불합치 3년, 여전히 입법 공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서 아이네즈 씨 모녀가 낙태 찬성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앞에서 아이네즈 씨 모녀가 낙태 찬성 피켓을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24주(6개월)까지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반세기 만에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보도에 미 전역이 찬반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로 대 웨이드는 ‘낙태 행위 처벌은 헌법이 보장한 사생활의 권리 침해’라며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기념비적인 판결로 임신 6개월까지의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개인의 자유와 생명 존중의 가치가 맞부딪히는 낙태권 논쟁은 국내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3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와 국회가 논쟁적 이슈에 손을 놓으면서 대체입법 없이 '무법(無法)'인 상황이 이어지면서다.

3년 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에도 입법 공백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건 지금으로부터 3년 전인 2019년 4월 11일이다. 이 판결로 2021년 1월 1일 0시부터 낙태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의 효력이 상실됐다. 당시 헌재는 보완 입법 시한을 2020년 12월 31일로 뒀다. 하지만 ‘임신 14주까지 낙태 전면 허용ㆍ15~24주 조건부 허용ㆍ25주부터 처벌’하는 정부의 개정안은 지금까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부모에게 신체ㆍ정신적 장애가 있는 경우나 강간에 의한 임신ㆍ혈족 간 임신 등 제한된 조건으로만 임신 중지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14조도 손을 봐야 하지만 관련 개정안 모두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입법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피해는 오롯이 여성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낙태죄 폐지 이후 안전한 방법으로 임신중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 여성들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임신 초기에 한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유산유도제의 국내 허가마저 지지부진해지면서 온라인 상에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사고파는 불법 거래도 성행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가짜약을 먹은 10대 청소년 임신부가 심한 부작용에 시달리는 일도 벌어진다.

입법 공백에 '미프진' 허가도 지지부진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공동행동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가 보장될 때까지'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현대약품은 지난해 3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같은해 7월 식약처에 유산유도제 ‘미프지미소(미프진)’의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9개월이 넘도록 승인 심사가 이어지고 있다. 4일 식약처 관계자는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보완 자료 제출을 요청했는데 업체 측에서 해당 자료를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며 “자료가 오는 대로 식약처에서 타당성을 검토해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의료계에선 아직 대체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 식약처에서 선승인을 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식약처 관계자는 “법리적 문제는 계속 자문을 받으면서 검토 중”이라면서도 “법이 개정된 뒤 심사에 들어가면 시기가 더 늦어질 수 있어 우선 심사 자체는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은 입법 공백부터 메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등 20여개 단체가 모인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기획단’은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집회를 열고 유산유도제 도입과 임신중지 의료행위의 건강보험 적용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법·제도를 만들지 않고 있다. 방치된 의료 체계 속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높은 임신중지 의료비용을 부담하고 있고, 임신중지 관련 상담, 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 안전하고 비교적 저렴한 유산유도제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성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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