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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린피 정해주면 어떻게 될까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토리 파인스 골프장. 지난해 US오픈을 연 이 명문 코스는 샌디에이고 시가 운영하는 시립 골프장이다. [AP]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토리 파인스 골프장. 지난해 US오픈을 연 이 명문 코스는 샌디에이고 시가 운영하는 시립 골프장이다. [AP]

민형배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더불어민주당 주축의 의원 10명이 공동발의한 ‘대중골프장 이용요금심의위원회’ 설치를 위한 체육시설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달 입법 예고됐다. 골프장주들이 그린피를 너무 올리는 횡포를 부리니 위원회가 나서서 가격을 정해주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골프장들은 코로나 19 특수 속에서 이용료를 심하게 올렸다. 특히 회원 눈치 볼 일 없는 대중 골프장들이 마음대로 가격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37%나 된다고 한다.

그린을 모래밭처럼 만들어 놓고 그린피를 다 받고, 티잉그라운드에 스크린골프장처럼 매트를 깔아 놓고 돈은 더 받은 골프장이 있다.  카트 사용료는 렌트비로 치면 고급 스포츠카 가격이었다.

캐디피도 훌쩍 올랐는데 서비스 수준은 오히려 떨어졌다. 일부 골프장주는 카트 관리회사, 코스 관리 회사, 식음료 납품 회사를 자녀에게 맡기고 이익을 몰아줘 상속 등에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골프장 이용요금을 정해준다는 생각은 적정하지 않다. 골프장 때문에 고생하는 골퍼들이 더 괴로워질 것 같다.

가격 통제는 공급 위축, 암시장 증가, 품질 저하, 기업 행동 왜곡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건 상식이다. 프랑스 혁명 정부가 반값 우유 정책을 시행하자 농부들이 손해를 보는 젖소 사육을 하지 않아 결국 우윳값이 10배로 뛴 예가 대표적이다.

그린피가 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코로나 19 이후 골프연습장 수가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수요가 2배인데 골프장 수는 변동이 없고 해외여행 길은 막혔으니 가격이 올라간 것이다.

골프장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하는 독점 품인 카트 사용료 정도는 정부가 정해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독과점, 독점 품목도 아닌 그린피를 정해주는 건 부작용만 나올 것이다. 뒷돈을 주고 부킹을 해야 할 거고, 골프장 관리는 더 나빠질 것이다. 그린피 심의위원회는 골프장들의 로비 대상이 될 게 뻔하다.

세금 때문에 회원제에서 대중제로 전환한 골프장들은, 다시 회원제로 바꿔 수십억 원짜리 무기명 회원권을 발급해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골프가 흥미로운 것은 다양해서다. 볼링장이나 테니스장처럼 규격화되어 있지 않다. 골프 코스는 설계와 주위 자연, 클럽하우스 분위기 등에 따라 판이하다.

이런 골프장들의 그린피를 무슨 기준으로 정할까. 외국인 설계자를 쓴 코스는 가산점을 줄까. 바다를 낀 골프장은 20% 경치 값을 받을 수 있게 할까.

타이거 우즈가 경기한 골프장은 이용료 5%를 가산할까. 근접성은 대도시 기준으로 할까, 톨게이트 기준 거리로 정할까. 아침, 오후, 주말, 성수기, 비수기, 비 오는 날, 안개 낀 날 등을 다 정해줄까.

미국은 지자체가 만든 골프장이 전체 골프장의 17%, 약 2500개나 된다. 파 3 코스 등도 있지만, US오픈 등 메이저대회를 여는 캘리포니아 주의 토리 파인스, 뉴욕의 베스 페이지 등 명문 코스도 있다. 타이거 우즈도 시립 코스를 설계하고 있다.

한국은 공공 골프장이 1% 미만이다. 전세계 최고 골프 열기를 가진 나라 치고는 너무 적다. 또한 사기업 골프장주들이 횡포를 부리기엔 딱 좋은 수치다.

골프장 이용료를 정해주고 싶다면, 골퍼들에게서 받은 세금으로 공공 골프장을 만들어 그린피를 정하면 된다. 골프 특수에 횡포를 부린 골프장주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공급이다.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민형배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기에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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