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약점마저 극복한 최고 '믿을맨' 정우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LG 트윈스 정우영. [뉴스1]

LG 트윈스 정우영. [뉴스1]

위기 상황이 되면 마운드에 올라 승리를 지킨다. 최고 '믿을맨' 정우영(23·LG 트윈스)이 약점까지 보완했다.

KBO리그에서 가장 홈런을 빼앗기 어려운 투수는 정우영이다. 그는 지난 시즌 단 한 개의 홈런도 내주지 않았다. 올 시즌은 일찌감치 한 개를 내줬다. 지난달 5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야시엘 푸이그에게 맞았다. 2020년 10월 10일 NC전 이후 1년 반만이었다. 정우영은 "타구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내가 봐도 멋있게 날아가더라. 그래도 공 자체는 괜찮았다"고 웃었다.

홈런을 적게 맞는 이유는 투심패스트볼 덕분이다. 사이드암 스로인 정우영이 던지는 투심은 꿈틀거리며 오른손타자 몸쪽을 파고들듯이 날아온다. 데뷔 초만 해도 평균 시속 143㎞대에 머물렀지만, 꾸준히 벌크업을 한 덕분에 이제는 150㎞를 가뿐히 넘는다. 제대로 맞지 않으면 땅볼이 되기 십상이다. 공을 열 개 던지면 그 중 9개가 투심이지만 알고도 못 친다.

우타자였던 김태균 KBS 해설위원은 "임창용의 뱀직구가 떠오른다. 디셉션(숨김 동작)도 좋기 때문에 오른손타자 입장에선 매우 치기 어렵다. 코브라가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투심이지만 그립을 다르게 쥐어 휘어져 나가는 구질과 살짝 떨어지는 구질을 번갈아 쓰기 때문에 타자 입장에선 대처하기가 힘들다.

2019년 입단 초 체중이 80㎏ 언저리였던 정우영은 10㎏ 이상 불렸다. 체지방은 유지한 채 근육량을 늘렸다. 그는 "트레이너와 코치님들 덕분이다. 무거운 걸 드는 운동만 하지 않고, 민첩성과 회전력을 키우는 운동을 같이 했더니 구속이 잘 나온다. 지금은 95㎏ 정도다. 비시즌 식단도 짜서 먹었다"고 설명했다.

피홈런이 적다는 건 올 시즌 더욱 돋보이는 요소다. 스트라이크 존이 넓어지면서 경기당 평균득점(4.79→3.89)이 줄었기 때문이다. 주자가 있을 때도 정우영이 자주 투입된다. 빗맞은 타구를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병살타가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유도한 확률은 무려 57%나 된다.

그러다 보니 류지현 LG 감독은 셋업맨 정우영을 굳이 마무리 고우석 앞 순서나 8회에만 내보내지 않는다. 좀 더 강한 타순, 혹은 위기 상황에서 일찍 내보낸다. 27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이 대표적이다. 류 감독은 선발 이민호가 6회 말 안타 2개를 맞자 오재일까지 상대한 뒤 정우영을 올려 이닝을 마무리했다. 정우영은 7회도 무실점하면서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정우영은 "(등판 시점을)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준비하는 과정은 똑같다. 빨리 내보내는 건 나를 믿어주시는 거라 생각한다. 6~7회 나가는 게 싫다기보다는 믿음을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기록도 정우영이 KBO리그 최고 미들맨이라는 걸 입증한다. 올 시즌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WAR·스탯티즈 기준) 구원투수 4위(0.88)가 정우영이다. 마무리를 제외하면 정우영이 1등이다. 지난해에도 전반기에 주춤했지만 KIA 마무리 정해영(3.89)에 이은 2위(3.21)에 올랐다.

정우영에게는 과제가 있었다. 바로 왼손타자 상대다. 사이드암 투수의 투심패스트볼은 좌타자에게 먹잇감이다. 오래 궤적을 볼 수 있고, 바깥쪽에서 가까워져 오다가 다시 바깥쪽으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배트에 맞히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슬라이더를 이따금 섞지만 투심만큼 위력적인 공은 아니다. 데뷔 초엔 좌타자용 무기로 체인지업을 썼지만 손에 맞지 않아 포기했다.

정우영에게 영감을 준 선수도 있다. 일본인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다. 다르빗슈는 우투수지만 좌타자도 잘 잡는다. 정우영은 다르빗슈가 왼손타자에게 던진 투심 동영상을 참고했다. 정우영은 "다르빗슈는 좌타자를 벽이라고 생각하고, 벽에 닿을 듯 말 듯 투심을 던진다"고 했다.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지난해 왼손타자 피안타율은 0.295였는데 0.071까지 낮췄다. 아직 시즌 초라고는 해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20명을 상대해 볼넷 6개를 준 게 흠이긴 하지만, 발전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정우영은 2019년 입단 이후 매년 발전했다. 첫해 신인왕을 받았고, 지난해엔 LG 투수 최다 홀드(27개)를 새로 썼다.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태극마크다. 2020 도쿄올림픽 출전을 기대했지만 이루진 못했다. 동명이인이자 동갑내기인 축구선수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이 국가대로 발탁된 걸 보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올해 9월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23세 또는 프로 3년차 이하로 대표팀을 꾸리기로 했기 때문에 정우영이 발탁될 확률은 매우 높다. 정우영은 "당연히 나가고 싶다. 지난해 올림픽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스스로 무너졌다. 이번엔 거기에 몰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