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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세상](32) "지금 나라 마룻대가 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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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못 친다. 한때 보기 플레이 정도는 했는데, 요즘엔 그것도 벅차다. 그래도 라운딩이 잡히면 기어이 채를 챙겨 새벽길을 나선다. 지나칠 정도로 골프에 매달리는데 실력은 고만고만이다. 그 정성이면 대통령이라도 됐을 듯싶다.

골프 퍼팅에 이런 격언이 있다. '골프 600년 역사상 홀컵에 미치지 않고 들어간 공은 아직 없다.' 홀컵을 살짝 지나칠 정도의 힘으로 퍼팅하라는 얘기다. 유능한 선수는 20cm 정도 지나칠 수 있도록 힘을 조절한다. 지나치면 방향을 고치면 되지만, 이르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인 까닭이다.

인생사 다 그렇다. 미치지 못하면 이뤄지는 게 없다. 중간에 포기한 사람이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대충대충 하다 성공한 사례는 없다. 조금 과한 듯한 사람이 크게 된 사례는 많지만, 덜떨어진 경우가 성공한 예는 아주 드물다.

공자(孔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제자 자공(子貢)의 대화다.

자공: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에서 누가 더 능력이 있나요?
공자: 자장은 좀 지나친(過)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하는(不及) 측면이 있어.
자공: 그럼 자장이 좀 더 능력 있다는 얘기네요?
공자: 아냐, 지나친 것이나 미치지 못한 것이나 모두 마찬가지야(過猶不及).

논어 '선진(先進)'편에 나오는 말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다르지 않다'라는 뜻의 성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여기서 나왔다. 공자는 지나침을 경계하고 있다.

우리 현실은 '과유불급' 그 자체다. 공기에 밀려 지나치게 서두르다 아파트 공사장이 무너진다. /연합뉴스

우리 현실은 '과유불급' 그 자체다. 공기에 밀려 지나치게 서두르다 아파트 공사장이 무너진다. /연합뉴스

우리 현실은 어떤가. '과유불급' 그 자체다. 정치권 전쟁의 도화선인 '검수완박'은 특정 정파의 과도한 자기보호 의식에서 시작된 문제다. 그러니 우격다짐으로 일을 처리한다. '가평계곡 살인사건'의 범인은 인간 양심이 얼마나 과도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제 형세도 그렇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잔인성을 더해가며 극한으로 치닫는다. 나토(NATO)의 지나친 욕심이 푸틴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중국의 과도한 '코로나 제로' 방역 정책은 자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긴장시키고 있다.

세상은 과도함으로 미쳐가고 있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주역 28번째 '택풍대과(澤風大過)' 괘를 뽑았다. 연못을 의미하는 태(兌, ☱)와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 ☴)으로 구성됐다. 손(巽)은 나무(木)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괘에서는 연못 아래 나무가 놓여있는 형상이다.

우리는 연못을 상상할 때 흔히 물과 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떠올린다. 그런데 '택풍대과'에서의 나무는 연못 아래에 있다. 물에 잠긴 것이다. 물이 과도하게 넘쳐 나무를 잠갔으니 뿌리가 살 리 없다. 과도함이 극에 달한 상황, 그래서 괘 이름이 '大過(대과)'다.

과하면 낭패를 본다. 주식 투자에서 욕심이 과하면 쪽박이다. 아이 칭찬이 과하면 독불장군으로 키우기 쉽다. 말이 지나치면 친했던 우정도 깨진다. 과유불급이다.

주역 28번째 '택풍대과(澤風大過)' 괘는 연못을 의미하는 태(兌, ?)와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 ?)으로 구성됐다. /바이두

주역 28번째 '택풍대과(澤風大過)' 괘는 연못을 의미하는 태(兌, ?)와 바람을 상징하는 손(巽, ?)으로 구성됐다. /바이두

주역은 주택의 마룻대(棟)로 지나침을 비유한다. 세 번째 효사(爻辭)는 이렇다.

棟橈, 凶
마룻대가 휘어지니 흉하다.

마룻대는 서가래, 들보 등을 잡아주는 주택 구조물의 핵심이다. 건물의 힘을 가장 많이 지탱하는 뼈대다. 휘어지면 집이 무너질 수 있다. 지나침이 극에 달한다는 것(大過)은 곧 마룻대가 휘어지는 것과 같다. 흉할 수밖에 없다.

정계는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지나친 사회 '쏠림' 현상은 다양성을 훼손하고 조화를 깬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많은 사람이 지금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나라를 지탱하는 '마룻대'가 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룻대는 건물의 힘을 가장 많이 지탱하는 뼈대다. 휘어지면 집이 무너질 수 있다. 지나침이 극에 달한다는 것(大過)은 곧 마룻대가 휘어지는 것과 같다.

마룻대는 건물의 힘을 가장 많이 지탱하는 뼈대다. 휘어지면 집이 무너질 수 있다. 지나침이 극에 달한다는 것(大過)은 곧 마룻대가 휘어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 주역은 그것조차 길게 봐서는 이로운(利) 일이라고 말한다. 괘의 전체 내용을 보여주는 괘사(卦辭)는 이렇게 말한다.

棟橈, 利有攸往, 亨.

마룻대가 굽었다. 나아가면 이롭고, 형통하다.

집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형통하다고? 그렇다. 단, 조건이 있다. 미리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휜 마룻대를 잘만 보수한다면 주택은 더 오래 쓸 수 있다. 과도기(過渡期)를 잘 거치면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누가, 어떻게 휜 마룻대를 발전의 에너지로 삼아야 할까. 전체 괘의 상(象)을 보여주는 상사(象辭)는 이렇게 정리한다.

澤滅木大過, 君子以獨立不懼, 遯世無悶

연못 물이 나무를 삼켜버리니 '大過(대과)'다. 군자는 이로써 두려움 없이 홀로 우뚝 서 맞선다. 세상을 등진다 해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군자(지식인)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 그들은 마룻대가 휘고 있음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를 보고도 침묵을 지킨다면 그건 지식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뭔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지금 바꿔야 합니다.' 위험 신호를 세상에 내보내야 한다.

치료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병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사회가 온통 한곳으로 쏠려 중심을 잡지 못할 때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홀로 서서 경계경보를 내야 한다. 민주당 진영 내에서도 '검수완박은 문제가 있다'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독립불구(獨立不懼)! 그게 이 사회 지식인의 태도다.

'대과(大過)'의 세계에서 뜻있는 지식인의 목소리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정치권에서 옳은 주장을 했다가는 진영의 공격에 매몰될 뿐이다. 회사에서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왕따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두 번째 효사(爻辭)는 연못 가 버드나무를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無不利.

마른 버들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늙은 남자는 젊은 여자를 아내로 얻는다. 불리할 것은 없다.

마른 버드나무 가지에서 새싹이 돋는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는 움직임을 상징한다. 늙은이가 처녀를 아내로 맞는다는 것 역시 비유다. 마지막으로 해보려는 노력이다. 늙다리 남자가 젊은 여자와 결혼한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주역은 말한다.

일제가 패망할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도 뜻있는 지사들은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그들의 불굴의 용기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가치 있는 행동이다. 선열들은 주역의 가르침을 따랐다.

홀로 맞서다 화를 당할 수 있다. 많은 독립운동가가 일제 총칼에 스러져야 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검수완박'에 소신 투표를 한다면, 정치생명이 끊길 수도 있다. '대과'의 세계에서 '독립불구' 하기란 그만큼 위험하다. 마지막 효사는 이렇다.

過涉滅頂, 凶, 無咎

강을 건너다가 머리까지 잠겨버리니 흉하다. 그러나 허물은 없다.

나무는 연못 물에 잠겨 뿌리째 썩어가고 있다. 외롭게 홀로 서서 양심을 외쳤던 지식인은 함몰되고 만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파를 피하는 것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런 양심이 쌓이고 쌓여 사회는 발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행여 세상을 등진다 해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遯世無閔)'라는 상사(象辭)구절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연못 물이 나무를 삼켜버리니 '大過(대과)'다. 군자는 이로써 두려움 없이 홀로 우뚝 서 맞선다. 세상을 등진다 해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바이두

연못 물이 나무를 삼켜버리니 '大過(대과)'다. 군자는 이로써 두려움 없이 홀로 우뚝 서 맞선다. 세상을 등진다 해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바이두

우리 사회는 '대과(大過)'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중용의 도는 점점 희미해지고, 조화와 타협은 멀어진다. 어떻게 바꿔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과유불급'을 외친 공자의 해법은 그의 손자 자사(子思)가 정리한 '중용'에 답이 있다.

君子中庸而時中
小人反中庸而無忌憚

군자는 중용의 덕을 알아 시의적절하게 행동하고
소인은 중용을 외면하니 행동에 거침이 없다.

핵심은 '시중(時中)'이다. 여기서 '中(중)'은 가운데라는 뜻보다는 '적중(的中)'의 의미가 강하다('중용 인간의 맛', 김용옥). '시중'은 곧 시간에 꼭 들어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의적절'과 같은 의미다. 중용을 지킨다는 것은 곧 시간과 장소를 가릴 줄 안다는 것이다.

대과(大過) 사회를 치유할 실천 강령이 바로 '시중(時中)'인 셈이다.

소인은 그게 안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막무가내로 행동한다. 거칠다. 기탄없이 말하고,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그런 소인배들이 판치니 사회 전체가 지나침으로 미쳐가고 있다.

제발 시간과 장소에 맞게 가려 행동하라!

죽간(竹簡)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질 정도로 주역을 읽었던 공자의 충고다.

한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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