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중앙시평

나라의 승화를 생각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나라의 승화를 생각한다. 승화는 한 사람·물질·조직이 기존의 에너지와 특성을 안은 채 다른 영역이나 높은 단계로 비약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마음과 예술에도 적용 가능하다. 예술에서의 도약(grand jete)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용서와 관용은 또 얼마나 깊게 우리를 승화로 이끌어가나? 승화가 가장 어려운 것은 인간사회다.

오늘의 정치갈등과 청문회들을 지켜보며 묻게 된다. 바뀐들 무엇이 달라지나? 그러나 민주체제는 사람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기본원리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한 사인의 ‘국정농단’과 일부 개혁가의 ‘가치 농단’에 대해 두 번 다 정권교체로 매를 들었는 바, 지금 두려운 현실은 ‘국법 농단’의 예후들이다. 법률가 대통령 시대에 국정농단과 가치 농단에 이은 국법 농단이 절대 오지 않기를 빈다.

청와대 이전, 법과 절차준수 필수
국가·군사지휘부 한 곳 집결 위험
철저 준비 이후 세종시 이전이 대안
모두가 함께사는 한국 르네상스를

나라의 승화를 위해 깊이 고민할 사례는 청와대의 국방부로의 이전문제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 중 높은 반대의견을 받는 정책이다. 애초 소통을 위한 광화문 청사가 목표였으나 이제는 청와대 입주 거부가 목표처럼 보인다. 반대여론이 높은데도 강행하는 것은 소통과는 반대되는 불통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절차적·법률적 차원에서도 존재한다. 선거승리가 공약의 취임 전 이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형적인 위임민주주의다. 게다가 취임준비 행위와 통치행위는 다르다. 즉 이전을 추진하더라도 취임 이후 ‘대통령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면서 국가안보와 대통령 안전을 철저히 대비한 가운데 진행될 필요가 있다. 대통령 집무실 변경과 국방·군사 지휘부의 일거 이전과 같은 국가의 중대 안전·군사·재정·정책 사안은 최소한 국무회의의 심의사항에 해당된다.[헌법 제88조 1항. 제89조 1·4·6·13항] 게다가 대통령의 행위는 공약을 넘어 문서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헌법 82조] 그것도 총리와 국무위원의 부서를 거쳐야 효력을 갖는다. 국정의 일인 전횡을 방지하는 최소 요건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리상으로는 정부조직과 군대 등 헌법가치와 기관에 대한 우선·위계·권능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받을 수 있다. 즉 하나의 ‘법률’기관인 대통령직 인수위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헌법 제5조, 제96조. 정부조직법 제26조]을 비자의적으로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형법 제91조]일 수 있다. 우리가 역사 왜곡과 대북 전단에 대한 정부여당의 법률개정들이 양심과 인권에 대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비판한 소이와 같은 원리다.

한국같은 선진 민주 국가에서 최고지도자와 국방·군사 지휘부의 동시 이전이라는 중대 국가사안이 선거공약과 인수준비 단계에서 단급하게 실현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사안의 비중에 비추어 이는 취임 준비기관이나 행정부의 전결사항이 아니라 국민대표인 국회동의 사안으로 보인다. 미국 백악관 이전의 경우를 상상해보라. 그러나 이 문제는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추진 공약이었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 이후 세종시로의 이전이라면 국회동의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종 상황은 더 우려스럽다. 인류의 안보와 평화 역사를 고찰할 때 국가지휘부와 군사지휘부, 즉 통수권·군정권·군령권 담당 주체들을 적에게 이롭도록 한 지점, 한 장소, 한 공격목표에 몰아넣은- 그것도 공개적으로- 안보와 방어정책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우리는 휴전선으로부터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 방어충분의 조건이 크게 불리하여 오직 능력과 기술이 아니고는 난관이 허다하다. 국가와 군사 지휘부의 안전은 국가의 안전에 직결된다. 애초에 이 둘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은 선거공약도 전혀 아니었다. 국가리더십과 군사리더십의 안전은 집무와 거주의 편의를 위해 할애할 수 있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하여 용산 이전이 아니라 현실적·법률적 준비와 동의 이후 세종시로의 청와대와 대통령실의 이전을 적극 제안드린다. 나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국법을 지키며, 민주적 절차를 밟아 취임 이후 대통령 자격으로 청와대를 이전하길 간언드린다.

나아가 그것은 온 나라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민주공화국 사상을 창안한 근대 초기 고전들은 권력과 자원이 집중되면 박탈된 지역과 계층은 소멸하거나 죽어갈 것이라고 증거한다. 우리는 수도권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두 나라를 지속해서는 지방소멸은 물론, 전대미문의 인류 최저출산율을 매해 새로 쓰고 있는 서울출산율이 보여주듯, 훗날 서울소멸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서울도 지방도 함께 죽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세종시 수도를 개창, 모두 함께 사는 시대로 승화하자. 승화는 경계·문턱으로 ‘다가간다’는 뜻이다. 인류문명의 역사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문명과 문명, 대륙과 해양, 제국과 제국의 접점들에서 늘 융성과 도약이 일어났다. 우리가 바로 동서와 문명과 제국이 교차하는 그 경계국가·문턱국가이다.

승화의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에너지와 속성을 잘 간직한 채 한국 르네상스를 다시 열어보자. 세종시로의 합의 이전이 당대 세계 르네상스의 한 전범이었던 세종시대의 미래 후대에의 대망(待望)을 앞당겨주지 않겠는가?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