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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마지막까지 진영의 보스로 남은 문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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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3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제20회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대통령 초상화 공개행사에서 문재인대통령이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3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제20회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대통령 초상화 공개행사에서 문재인대통령이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마지막 국무회의서 검수완박법 의결·공포

자기 편만 챙기는 정치…진영의 상왕 노리나

문재인 대통령이 끝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어제 현 정부의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의결·공포했다. 문 대통령은 의결 전 “상식과 국민의 시각에서 토론해 달라”고 주문했는데, 진정 상식과 국민의 시각이라면 거부권을 행사해야 옳았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검수완박 법은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의 범죄는 숨기고, 힘없고 배경 없는 국민의 범죄 피해는 구제받기 어렵게 한 것이다. 국민 기본권 보장 운운하지만 실상 “문재인·이재명 지키기”(안민석 의원 등)이자 정치인들을 법 위의 특권계급으로 만든 법이다.

절차적 문제도 많았다. 90일간 활동할 수 있는 안건조정위를 17분 만에 끝냈고 이를 위해 민주당 소속 의원을 위장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만들어 ‘야당’이라고 주장했다. 회부-상정-입법예고-공청회·청문회-본회의 상정 등 곳곳에서 절차를 어겼다. 오죽하면 국무회의 몇 시간 전에 한국법학교수회가 “입법 절차상의 중대한 흠이 있다”며 거부권 행사를 촉구했겠는가.

문 대통령이 진영 또는 자기 이해란 ‘동굴’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성난 함성을 들었을 것이다. 대법원은 물론이고 법조계, 일반 시민도 반대한다. 최근 수도권 유권자 10명 중 6명이 반대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수도권은 얼마 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1.1%포인트 앞섰던 곳이다. 문 대통령은 외려 민주당에 동조했다. 국회 상황에 맞춰 국무회의를 당초 오전 10시였던 걸 11시로 옮겼다가 오후 4시로, 다시 오후 2시로 계속 바꿨다. 그래 놓고 “국회가 수사와 기소의 분리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국회’가 아닌 민주당의 횡포였는데도 말이다.

정작 통합을 위한 사면은 외면했다. YS(김영삼)가 퇴임 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사면하고 떠난 것과 달리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해 결자해지하지 않았다. 경제 5단체의 경제인 사면·복권의 호소도 외면했다. 자신의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모든 사면을 접은 것 아닌가.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윤 당선인이)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 안 하고 MB만 사면할 수 있겠냐. 왜 그걸 바보처럼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지냐”고 한 게 맞다면, 참으로 협량한 꼼수다.

이로써 문 대통령은 온 국민의 지도자라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진영의 보스에 머물렀다는 게 재차 확인됐다. 지지자들만 바라보고 지지자들과만 함께했다. 그 결과가 퇴임 대통령으로서 이례적으로 높은 40%대 지지율일 터인데, 나라야 찢어지건 말건 40% 지지율을 기반으로 퇴임 후에도 진영의 상왕(上王) 노릇을 하겠다면 우려스러운 일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자부했다. 막판까지 이어지는 자화자찬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