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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통령까지 검수완박 꼼수…"靑이 5분 대기조 됐다" [view]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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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의결·공포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국무회의를 오후 4시로 미뤘다가 다시 오후 2시로 앞당겼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의결·공포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국무회의를 오후 4시로 미뤘다가 다시 오후 2시로 앞당겼다. [청와대사진기자단]

5시간46분.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출발(오전 10시3분)해 청와대에서 최종 공포(오후 3시49분)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다. 74년 국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기 위해 ‘당일 공포’라는 전략을 짠 민주당-청와대의 공조는 치밀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를 오전 10시→오후  4시→오후 2시로 두 차례나 시간을 옮기며 171석 거여의 입법독주에 적극 동조했다. “청와대가 검수완박 처리를 위한 ‘5분대기조’로 전락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10시3분 개의된 국회 본회의에서 3분 만에 두 번째 검수완박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재석 174인 중 찬성 164인, 반대 3인, 기권 7인으로 가결됐다. 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 전원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 3명(민형배·양정숙·윤미향), 그리고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찬성했다. 정의당 의원 6명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기권했고, 국민의당 이태규·최연숙 의원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반대했으며,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국회에서 공을 넘겨받은 법제처는 이를 즉각 법률공포안으로 만들었다.

문 정부, 첫 오후 2시 국무회의 …‘꼼수’ 끝판왕 된 검수완박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 반대 시위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 반대 시위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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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공포안 작성 시간 등을 감안해 당초 오전 10시로 공지했던 국무회의 시간을 오후 4시로 바꿨다가 공포안 작성이 속도를 내자 재차 오후 2시로 앞당겼다. 문 대통령은 지난 5년간 불가피한 사정 탓에 오전 10시로 고정된 국무회의 개의 시간을 1시간 이내에서 미세조정한 적은 있지만, 국무회의 개의 시간을 아예 오후로 미룬 적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가 검수완박을 위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국회에서 통과돼 정부에 공포 요청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검찰 개혁 관련 법안에 대해 우리 정부 임기 안에 책임있게 심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선택적 정의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국민의 삶과 인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무위원들은 부처 소관을 떠나 상식과 국민의 시각에서 격의 없이 토론하고 심의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국무회의는 국가 최고 심의·의결기구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일종의 요식행위였다. 검수완박에 반대를 표명한 이는 의결권 없이 배석자로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뿐이었다. 민주당 의원을 겸직하고 있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수사권 배분은 입법정책의 문제고, 헌법재판소 판시에 비추어 심의의결권의 침해도 아니다”며 거들었고,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의장 중재안에 양당이 합의서에 서명하고 의총에서 추인했는데 이를 번복하면 어떻게 의회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회의 말미에 문 대통령이 꺼내든 건 전가의 보도인 ‘촛불정부’였다. 그는 “우리 정부는 촛불정부라는 시대적 소명에 따라 권력기관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며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시행, 국가수사본부 설치, 국정원 개혁 등 권력기관의 제도개혁에 큰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꼼수 사보임, 위장 탈당, 안건조정위 무력화, 회기 쪼개기 등 ‘꼼수완박’으로 점철된 국회 처리 과정에 대한 유감 표명은 없었다. “범죄 피해자 보호가 약해진 악법” “경찰의 수사지연” 등 법조계와 시민단체의 우려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결국 국무회의는 검수완박법 2건을 포함한 26개 안건 심의와 의결을 1시간25분 만에 마무리했다. 검수완박은 지난달 12일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지 21일 만에 정식 법률이 됐고, 4개월 뒤인 9월 초 시행된다.

국민의힘은 거칠게 반발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총에서 “각본은 민주당 초선의원 모임인 ‘처럼회’, 제작은 민주당, 주연은 문재인 대통령인 ‘트루먼쇼’”라며 “죄는 지었지만 벌을 거부하겠다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집단적 도피의식이 검수완박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국회 통과 이후엔 청와대 앞으로 가서 “문 대통령은 검수완박 사태의 공모자”(이준석 대표)라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과거 여당이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에 휩싸였다면 이번엔 청와대가 여당의 ‘효자동 출장소’ 역할을 톡톡히 했다”며 “검수완박 법안 내용의 위헌성뿐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철저히 무너뜨렸다는 점에서도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자신과 김정숙 여사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는 안을 의결했다. 한국조폐공사가 지난해 6~9월 제작한 무궁화대훈장 두 세트 제작비에는 총 1억3647만4000원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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