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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아닌 '인공멍청이'...데이터 사회를 다시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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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 슈타이얼, 소셜심.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히토 슈타이얼, 소셜심.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히토 슈탕이얼, 타워, 2015, 3채널 비디오, 6분 55초. 첨단 기술산업과 전쟁 시나리오와의 관계를 다룬 게임 시뮬레이션 작품.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히토 슈탕이얼, 타워, 2015, 3채널 비디오, 6분 55초. 첨단 기술산업과 전쟁 시나리오와의 관계를 다룬 게임 시뮬레이션 작품.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히토 슈타이얼 개인전 전시장. 영상 작품과 객석 자체가 하나의 설치 작품으로 완성됐다. [사진 이은주]

히토 슈타이얼 개인전 전시장. 영상 작품과 객석 자체가 하나의 설치 작품으로 완성됐다. [사진 이은주]

히토 슈탕이얼의 '유동성 주식회사'를 관람하는 기자들. 2014, 30분 15초. [사진 이은주]

히토 슈탕이얼의 '유동성 주식회사'를 관람하는 기자들. 2014, 30분 15초. [사진 이은주]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많이 쓰이는 용어 중 하나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지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인공지능'이란 말 대신에 '인공 멍청이' 혹은 '인공 우둔함(Artificial Stupidity)'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작가이자 영화감독, 비평가인 히토 슈타이얼(56·Hito Steierl)이다. 첨단 디지털 사회의 다양한 이미지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현대사회를 분석하고 통찰해온 그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기술이 정말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끈질기게 질문을 던져왔다.

세계적 미디어 작가 히토 슈타이얼 #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 최초 개인전 #"현실세계 노동이 데이터 노동으로" #인간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졌나?

최근 전시 개막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그는 "정교하지 못한 알고리즘과 봇 이런 것들이 이미 우리의 현재를 망치고 있다"며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롭게 재편된 세계상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수많은 자동화 서비스가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슈타이얼의 개인전 '데이터의 바다'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달 29일 개막했다.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작가의 대표작 23점을 소개한다. 작가의 초기 작업인 다큐멘터리 영화부터 디지털 기반 데이터 사회를 성찰하는 미디어 아트 설치작품 등 주요작품을 망라해 보여준다.

기술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했는가 

먼저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가 현대사회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풀어놓는 방식이다. 일본과 독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연출을 전공한 그는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조감독으로 활동했고, 오스트리아 빈 미술 아카데미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특한 그의 이력은 감각적인 영상으로 예술과 철학과 정치 영역을 넘나드는 작업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사물 인터넷, 로봇 공학, 3D 시뮬레이션 첨단 디지털 기술을 파고들며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했는지 집요하게 묻는다.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도 남다르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화면에 역동적인 사운드, 그리고 객석이 어우러진 전시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영화 세트처럼 연출됐다. 가장 대중적인 방법으로 진지한 질문을 마주하게 하는 방식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전시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대표작은 화면에 쉬지 않고 춤을 추는 경찰 아바타가 등장하는 '소셜심'(2020,18분 19초) 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을 쿵쾅거리게 하는 댄스 음악과 현란한 화면속 캐릭터 움직임에 관람객들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그런데 화면 속 경찰들 춤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한다. 팬데믹 이후 번져나간 대중의 시위와 이를 진압하는 경찰과 군인들의 행위를 데이터로 번안해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 캐릭터 움직임에 2020년 시위 현장의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 수 등의 다양한 데이터가 쓰였다. 배명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 작품은 인간의 상호작용을 단순화한 '소셜 시뮬레이션'으로, 가상공간이 현실 공간을 적극적으로 대체하는 현실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육체 노동이 데이터 노동으로   

히토 슈타이얼, 혤 예 퍽 다이, 2016.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히토 슈타이얼, 혤 예 퍽 다이, 2016.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2015년에 완성한 23분짜리 영상 '태양의 공장'도 주목할 만하다.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현실 세계 한 개인의 육체노동(신체 움직임)이 데이터로 변환되는 사회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데이터는 이제 컴퓨터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되었음을 선언하듯 보여주는 작품이다.

데이터가 대량으로 수집·등록되고 개인이 감시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과 유머를 '안 보여주기'란 제목의 영상으로 풀어낸 것도 기발하다. 게릴라 매뉴얼 형식으로 첨단 감시사회에서 '안 보일 수 있는 방법' 다섯 가지를 제안한 것으로, 이 시대에 우리 자신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선 카메라에 찍히지 않거나, 우리 자신이 이미지가 되거나, 사라져 버리거나, 우리 자신이 아예 이미지 세계에 병합돼 버리는 방법 등이 있다고 가르쳐준다.

디지털 사회를 연구한 그는 알고리즘과 NFT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그는 "알고리즘은 역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거의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으로 근본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 NFT 예술에 대해선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더 민주적일 거다, 더 쉽게 접근할 것이고 동등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극소수 작가만 이익을 취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미술시장과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양치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신작 '야성적 충동'은 한 TV방송국 제작진이 양치기들의 삶을 다룬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다 팬데믹 때문에 작업을 중단하고 동물 전투 메타버스를 제작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야성적 충동'이란 제목은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가 1936년에 언급한 데서 인용한 것으로 사람들의 감정이나 탐욕, 야망, 두려움으로 인해 시장이 통제 불능이 되고 미친듯이 날취는 현상을 말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비트코인, NFT 등과 연결된 자본주의 시장을 돌아보라고 제안한다.

다큐멘터리, 빔 벤더스, 그리고 철학 

28일 국립현대미술관 '데이터 바다' 포스터 앞에 선 작가 히토 슈타이얼. [사진 이은주]

28일 국립현대미술관 '데이터 바다' 포스터 앞에 선 작가 히토 슈타이얼. [사진 이은주]

슈타이얼은 1966년 독일 뮌헨에서 미국 M.I.T 출신 물리학자인 독일인 아버지와 웨슬리 생화학 전공자인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실험 영화 및 비디오 담당 교수로 일하며 『스크린의 추방자들』(2012)『면세 미술:지구 내전 시대의 미술』(2017)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파리 퐁피두센터 (2021), 뒤셀도르프 k21(2020),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2019),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2016)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뉴욕 구겐하임, 테이트 모던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 기간 중 슈타이얼의 초기 영상작품을 집중 감사할 수 있는 상영 프로그램도 열린다. '비어있는 중심'(1998), '11월'(2004), '러블리 안드레아'(2007) 등은 초기 영상 작품 7편이 27일부터 7월 7일까지 MMCA 필름앤비디오에서 상영된다. 전시는 9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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