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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반복 ‘검수완박’, 민주당 단독 처리…사개특위 2R 예고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강행 처리를 마무리했다. 민주당은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의 보완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회의 시작 3분 만에 단독 의결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한민국 헌정사에 유례없는 입법 독재”라고 항의하며 퇴장한 뒤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법 논의를 위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결의안도 통과시켰다.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 중 마지막 하나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 중 마지막 하나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민주당이 단독 처리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날 처리된 안건들은 검찰의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직접 수사권을 삭제한 검찰청법 개정에 이은 패키지 입법이다. 그간 검찰과 법원, 대한변호사협회가 한목소리로 우려를 쏟아냈지만, 민주당은 압도적인 의석수를 바탕으로 검수완박 법안을 당론 채택 후 20일 만에 밀어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공포함에 따라, 4개월 뒤엔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이 70년 만에 완전히 바뀌게 됐다.

검찰 보완수사 대폭 축소…국힘 “권력형 범죄 은폐 의도”

이날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재석 174인 중 찬성 164인, 반대 3인, 기권 7인으로 가결됐다. 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 전원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 3명(민형배·양정숙·윤미향), 그리고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찬성했다. 정의당 의원 6명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기권했고,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사실상 민주당만의 단독 입법인 이유다.

법안은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 범위를 좁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동일성을 해치지 아니하는 범위 내’로 한정하고(196조 2항 신설), 경찰의 무혐의 결정에 이의신청할 수 있는 주체에서 고발인을 제외했다. (245조의7 1항 개정)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민주당은 ‘국민 기본권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선 “범죄 피해자 보호가 약해진 악법”이란 지적이 나온다. 특히 동일성 조항의 경우, 검사가 추가 범행이나 증거인멸 정황을 발견해도 수사를 가로막는 독소조항이란 지적도 나온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공범이나 추가 범죄 수사가 지연돼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을 때, 고발인은 이의신청을 못 하도록 바꾼 것도 논란거리다. 대한변협은 “공익신고자 등 내부 고발자와 공익 소송을 하려는 시민단체, 일반 국민의 이의 제기 권한을 위축·제약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역시 “고소와 고발을 다르게 취급하는 데 대해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쏟아지는 비판에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조차 “사개특위가 만들어지면 이 문제부터 조속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CBS 라디오 인터뷰)고 말할 정도였다.

‘꼼수’에 이은 극적 합의…파기 뒤엔 또 ‘꼼수’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두번째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다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두번째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를 다룰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성룡 기자

민주당은 이날 통과된 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에 따른 입법”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2일 박병석 국회의장과 민주당·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서명한 내용이란 취지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합의 파기로 참으로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 펼쳐졌다”며 “국민의힘은 스스로 중도 이탈했지만, 민주당은 흔들림 없이 끝까지 합의 정신에 충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안 처리 과정은 ‘꼼수’로 점철됐다. 첫 단추였던 지난달 7일 양향자 무소속 의원의 법사위 보임부터 논란거리였다. 민주당·국민의힘 의원만 있던 기존 법사위에선 안건조정위원회가 여야 3명씩 동수로 구성돼 합의 처리만 가능했다. 숙의 제도인 안건조정위는 6명 중 4명이 찬성해야 의결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친여 성향 무소속 의원을 법사위에 넣어 안건조정위에 ‘야당 몫’으로 선임하는 편법을 썼다.

양 의원이 검수완박 반대 의사를 표출하자, 이번엔 법사위 소속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위장 탈당’을 거쳐 무소속이 됐다. 실제 민 의원은 여야 합의안 파기 후 열린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에 ‘야당 몫 위원’으로 등장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신청하자, 민주당은 임시국회 회기를 곧바로 끝내는 ‘회기 쪼개기’로 대응했다. 이 역시 필리버스터 도중 회기가 끝나면 토론이 종결된다는 국회법 조항을 이용한 ‘꼼수’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죄는 지었지만 벌은 거부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집단적 도피의식이 바로 검수완박의 본질”이라며 “과정 또한 기만적이었다. 위장 탈당을 통해 안건조정위는 완전 박살이 났고, 회기 쪼개기를 통한 필리버스터 강제종료는 민주당이 더 이상 국민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라고 비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관련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관련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사개특위 설치…검수완박 2라운드 예고

이날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구성을 결의한 사개특위는 향후 ‘검수완박’의 마침표를 찍기 위한 기구다. 민주당은 검찰에 남아있는 부패·경제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을 1년 6개월 뒤 이관시키기 위한 기구로 중수청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중수청법을 포함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향후 법사위가 아닌 사개특위에서 논의된다.

국민의힘은 사개특위 구성도 민주당이 강행한 만큼 당분간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야당이 안 들어오면 개문발차하겠다”는 방침이다. 야당 없이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13명 중 7명이 민주당 몫이어서, ‘검수완박’ 질주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이후다. 민주당 주도로 중수청 설치법을 만든다 하더라도, 새 정부 법무부·행정안전부와의 협의는 불가피하다. 취임 뒤 윤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라는 벽도 넘어야 한다. 게다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 독립 예산 편성 ▶검·경 책임수사시스템 정비 ▶공수처 정상화 등 검수완박과 정반대인 ‘형사사법 개혁을 통한 공정한 법 집행’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이날 정치권에서 “사개특위가 올 하반기 여야 대치의 최전선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 이유다.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박병석 의장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박병석 의장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병석 국회의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마지막 발언을 자처해 “이번 논의 과정에서 검찰개혁이 미흡하다는 주장과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강한 의견이 있었다”며 “사개특위에서 깊은 논의를 통해 보완할 점은 충실하게 보완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사개특위 활동시한은 2022년 12월 3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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