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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韓 물가상승률 낮은편"…집세 급등 제대로 반영 안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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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물가 상승세가 가파르다. 올해 3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4.1%를 기록한 데 이어 4월 4.8%로 뛰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 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미국 8.5%, 독일 7.6%, 영국 7%, 이탈리아 6.8%, 캐나다 6.7% 등에 이른다. 선진국 대부분이 30~40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터키(61.1%), 아르헨티나(55.1%), 브라질(11.3%) 같은 신흥국 상황은 더 심각해 ‘물가 재난’ 수준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9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한국 물가 상승률을 4%로 전망한 것과 관련해 “주요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 등의 영향이 정부의 유류세 인하 등의 노력으로 일부 상쇄됐음을 의미한다”고 자평했지만 외부 진단은 다르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실주거비가 물가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3일 통계청이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 항목 중 올 3월 집세(전ㆍ월세 합산)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다. 하지만 같은 달 한국부동산원이 산출한 전ㆍ월세 통합지수 상승률은 3.8%였다. 두 기관 똑같이 전ㆍ월세 시세를 조사했는데 수치 차이가 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두 기관의 통계 격차는 집값 과열로 전ㆍ월세까지 큰 폭으로 뛰었던 지난해에 더 심했다. 부동산원이 전ㆍ월세가 2020년 대비 4~5% 올랐다는 조사 결과를 지난해 매달 내놓는 동안에도 통계청 집세 상승률은 1% 안팎을 유지했다. 지난해 1월엔 통계청이 산출한 집세 상승률(0.7%)이 부동산원 발표(3.7%)와 3%포인트 차이가 나기도 했다. 전세만 따로 떼어 봐도 비슷한 흐름이었다.

집세 통계가 이렇게 따로 노는 건 산정 방식 때문이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소비자물가는 생계비를 기반으로 한다. 집세도 실제 가계가 지불한 금액을 토대로 조사한다. 예컨대 조사 대상자가 1년 전 임대차 계약을 한 집에서 계속 살면서 같은 금액의 월세를 내고 있다면 월세 상승률은 0%가 되는 방식이다. 계약(갱신) 시점이 제각각인 표본 여럿이 섞여 있다 보니 최근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집세가 오르더라도 1~2년 후 시차를 두고 늦게 지수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통계청과 달리 부동산원은 계약 변동이 없더라도 주변 거래 시세를 추정해 지수에 포함하고 있다. 전ㆍ월세 변화가 바로바로 통계에 드러나는 구조다.

지난 18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연합뉴스

지난 18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연합뉴스

통계청이 소비자물가를 산출할 때 집세를 반영하는 비율(가중치 기준)은 9.8%로 높은 편이다. 농·축·수산물(8.4%), 가공식품(8.7%), 석유류(3.9%), 전기ㆍ가스ㆍ수도(3.4%)보다도 영향이 크다. 그런데도 전체 주거 형태에서 57.9%(2020년, 국토교통부 조사)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자가 거주 비용이 빠져있다. 자기 소유의 집에서 살고 있으면 별도로 주거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집세는 반영하고 있지만 유 의원 분석처럼 현장 시세와 괴리가 컸다.

미국ㆍ호주ㆍ캐나다ㆍ스웨덴 등 OECD 37개국 가운데 21개국이 자가 주거비를 소비자물가지수를 낼 때 포함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난다. 통계청에서 자가 주거비 지수를 내고 있긴 하지만 보조지표로만 활용할 뿐 공식 물가 통계에 반영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현장 물가와 동떨어져 있다. 통계청 자가 주거비 지수는 임대료 상당액법(해당 주택을 전ㆍ월세를 줬다고 가정하고 비용을 산출)을 적용해 낸다. 집세 통계와 같은 이유(계약 당시 금액 반영)로 체감하는 것보다 낮게 수치가 나온다.

실제 이날 통계청이 자가 주거비를 반영해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전년 동월 대비)다. 자가 주거비를 포함하지 않은 기존 물가 상승률(4.8%)보다 오히려 낮았다.

이같은 지적에 한국은행ㆍ통계청 등 관련 기관이 자가 주거비 반영 등 소비자물가 개편 방안을 논의 중이긴 하지만 “지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유경준 의원은 “통계청의 자가 주거비는 자가 거주에 대한 기회비용이라는 관점에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를 계약 가격으로 측정하고 있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이어 “특히 한국은 임대차 3법이 통과된 지금 통상 전세 계약 기간을 2~4년으로 하고 있고, 전세 가격 또한 급등해 시장 가격과 계약 가격 기준으로 추정한 주거비 간의 차이가 더욱 클 것”이라며 실주거비를 제대로 반영한 물가 통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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