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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넥스트 이해진’ 2650억 대박…90년대생 창업자가 온다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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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9 사진 중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블록오디세이 연창학 대표(94년생),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97년생), 정육각 김재연 대표(91년생), 클라썸 최유진 대표(92년생), 비욘드뮤직 이장원 대표(93년생). 숫자 0 사진 중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클라썸 이채린 대표(96년생), 플로틱 이찬 대표(97년생), 서울로보틱스 이한빈 대표(91년생), 두들린 이태규 대표(95년생), 크리에이트립 임혜민 대표(90년생). 사진=장진영·김경록 기자 및 각 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숫자 9 사진 중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블록오디세이 연창학 대표(94년생),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97년생), 정육각 김재연 대표(91년생), 클라썸 최유진 대표(92년생), 비욘드뮤직 이장원 대표(93년생). 숫자 0 사진 중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클라썸 이채린 대표(96년생), 플로틱 이찬 대표(97년생), 서울로보틱스 이한빈 대표(91년생), 두들린 이태규 대표(95년생), 크리에이트립 임혜민 대표(90년생). 사진=장진영·김경록 기자 및 각 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음원 저작권(IP) 스타트업 비욘드뮤직은 창업 1년 만에 누적 265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우량한 음원 IP를 매입해 방송·영화·게임 등에 제공하는 자산운용사 모델로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인 이장원(29) 대표는 경력 9년차의 연쇄 창업자다. 이번이 세 번째 창업. 이전엔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당시 학교 특화 배달앱 ‘샤달’을, 이후 글로벌 디지털 악보 플랫폼 ‘마피아컴퍼니’(마음만은 피아니스트)를 공동 창업했다.

이 대표는 “기존 조직에 들어가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보다 ‘제로 투 원(0에서 1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기 때문에 창업이 잘 맞는다”고 했다. ‘음원의 금융화’가 목표라는 그는 여전히 20대다.

이장원 비욘드뮤직 대표가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위워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장원 비욘드뮤직 대표가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위워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90년대생 창업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현재 23~32세인 이들은 배달의민족·쿠팡·토스·마켓컬리의 뒤를 잇는 ‘넥스트 유니콘’을 꿈꾼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국내 기술 창업은 2016년 연간 19만 674개에서 지난해 23만 9620곳으로 26%가량 증가했다. 이중 30세 미만 법인 창업은 더 가파르게 늘었다. 같은 기간 2151개에서 3462개로 61% 증가했다.

이들 중엔 두어번의 연쇄 창업 끝에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카카오가 5000억원에 인수한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쉬는 연쇄 창업자인 이승윤(32)씨가 26세에 창업, 5년 만에 매각한 경우다.

30세 미만 기술창업 법인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30세 미만 기술창업 법인 변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벤처 1세대, 모바일 1세대 잇는 90년대생

90년대생 창업자, 이들은 누구인가.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이 태동한 90년대에 태어나, 청소년 시절 아이폰발 스마트폰 혁명을 경험했으며, 국내외 혁신기술 기업이 주도하는 성장을 목격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나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같은 60년대생 벤처 1세대, 즉 586세대의 자녀 세대이기도 하다. 사교육 집중 세대로서 공·사교육 문제를 잘 알고, 영어나 IT를 활용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동시에,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고서도 경제적 자유에 이를 방법을 일찌감치 고민해온 실속 세대. 공정한 경쟁을 중시하며 친환경·다양성·젠더 평등에 대한 지향이 이전 어느 세대보다 강하다.

이 같은 특성은 90년대생 창업가들의 사업이나 창업 동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육계의 슬랙’으로 불리는 교육용 소통 플랫폼 클라썸은 교육 수요자로서 느낀 문제를 해결하려다 창업한 경우다. 이채린(26) 대표는 카이스트 전산학부 3학년이던 2017년 창업했다. 일방적인 주입식 대학 교육이 준 충격이 단초였다. 그는 “대학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동아리에 들어가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학생들이 교수님과 소통하는 것도 힘들어한다는 게 충격이었다”며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배울 때 공부도 더 잘됐던 경험에 착안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클라썸에서 직원들이 토의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에듀테크 스타트업 클라썸에서 직원들이 토의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대표는 학생회와 함께 과목별로 강의 자료를 공유하거나 질문할 수 있는 ‘과목별 톡방(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시범 운영했고, 학생들의 열광적인 반응에서 사업화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실리콘밸리에서 오래 일하다 오신 선배나 교수님들이 독려해줬고 선배들의 창업 사례를 보며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클라썸은 코로나19로 전 세계 교육이 온라인 전환기를 맞으며 급성장했다. 현재 KAIST와 서울대, 삼성,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전 세계 25개국 5000여개 대학·기업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스톰벤처스, 빅베이슨캐피탈 등으로부터 누적 76억원을 투자받았다. 이 대표는 “직접 실감한 교육 문제에서 출발했기에 기존 교육 기업보다 문제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자부한다”며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배우고 영감을 주고받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했다.

준비된 창업 “스티브 잡스, 이해진 보며 꿈”

90년대생 창업자 중엔 어려서부터 미디어나 책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배우고 ‘작심 창업’한 경우가 많았다. 닥터나우 장지호(25) 대표가 그렇다. 한양대 의대 재학 중 창업한 그는 스스로를 “마크 저커버그나 네이버 이해진, 다음 이재웅 등 창업자 이야기를 위인전처럼 읽던 꼬마였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거대한 조직이 아닌 혁신을 갈망하는 개인의 의지에서 출발할 수 있단 걸 배웠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의대 진학 후에도 코딩을 배우고, 해외 원격진료 기업을 탐방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결국 의대 3학년 때인 2019년 닥터나우를 창업했다.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연결해주고, 약도 배달해주는 모바일 앱을 서비스한다. 2020년 2월 2만 5000여명에 불과했던 앱 사용자는 2년 만에 누적 443만명으로 급증했다. 장 대표는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와 건강 전체를 관리하는 의료 슈퍼앱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동 패스트파이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닥터나우 장지호 대표가 지난해 12월 서울 삼성동 패스트파이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세대 창업자들은 실리콘밸리식 창업 모델도 일찌감치 학습했다.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금을 유치해 빠르게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모바일 1세대 창업자가 대기업이나 네이버·카카오, 혹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거쳐 창업했다면, 90년대생들은 중·고교생 때부터 창업을 꿈꾼다.

간편투자 플랫폼 어니스트펀드의 서상훈(32) 대표도 10대부터 스티브 잡스를 동경하며 창업을 준비했다. 대학 입학 전부터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원제 Good to Great) 같은 경영서를 찾아 읽고, 대학 때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선 1년간 창업 수업만 찾아 들었다. 서 대표는 “기업가로서 이루고 싶은 가치와 기술력만 있다면, 자본이나 경험은 좀 부족해도 도전할 수 있는 시대”라며 “창업은 거대한 변화를 직업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말했다.

교육도, 기후위기도 창업이 가장 빠른 해법

이들은 창업이야말로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말한다. 특히,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을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활용한다.

2017년 양승찬(26) 대표가 군대 동료들과 창업한 스타스테크는 세계 최초로 불가사리 성분 기반 친환경 제설제를 개발했다. 대표적인 해양 폐기물인 불가사리는 국내에서만 연간 4000억원 규모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 스타스테크는 이를 제설제 재료로 역이용했다. 이 회사 제설제는 2018년 출시 후 4년 만에 공공 조달시장서 점유율 1위(25%)에 올라섰고, 지난해엔 연매출 100억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3조원 규모의 친환경 제설제 시장을 노리고 북미·일본 수출을 추진 중이다.

사업의 핵심 아이디어는 양 대표가 경기과학고 시절 했던 연구에서 출발했다. ‘불가사리의 뼛조각이 차량이나 도로를 부식시키지 않는다’는 발견이었다. 양 대표는 대학 진학 후 군복무기간에 이 아이디어를 활용해 국방부 창업경진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았고, 바로 창업했다. ‘쓰레기로 환경을 구하자’는 게 이 회사의 모토다. 최근엔 불가사리 성분을 활용한 화장품과 액상비료도 개발했다. 특히 액상비료는 제설제와 화장품 원료 생산 후 남는 폐액을 100% 업사이클링해 사용한다. 양 대표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은데, 경제적 자유를 얻으면서 내 능력을 키우는 데 창업만큼 빠른 길이 없다”며 “해양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 영리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창업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유퀴즈에 출연한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 사진 tvN 유튜브

지난해 유퀴즈에 출연한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 사진 tvN 유튜브

단국대 글로벌벤처창업학과 남정민 교수는 “90년대생들은 이상적인 회사를 만들려는 의지가 이전 세대보다 강하다”며 “창업 실패에 대한 부담이 과거보다 줄었고, 롤모델이 증가하며 성공을 평가하는 잣대가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분해 미생물 연구개발 스타트업 리플라의 서동은(24) 대표도 재활용 기술에 도전 중이다. 고등학생 때 창업해 창업인재 전형으로 울산과학기술원에 입학한 그는 대학 2학년 때 정주영창업경진대회 대상을 받은 후 법인을 설립했다. 그는 “성장 속도나 수익화는 IT 창업보다 더딜 수 있지만, 플라스틱 미생물 솔루션이야말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확실한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리플라는 미생물을 이용해 플라스틱 순도를 100%까지 끌어올리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순도가 높아지면 현재 10%대 초반에 그치는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70~80%대까지 올려 폐기물의 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 2024년까지 상용화 제품 출시가 목표다.

서 대표는 “우리는 윗세대처럼 ‘언젠가 해결되겠지’ 하고 기다리거나 방관하지 않는다”며 “환경 문제에 도전하는 20대 창업자들은 ‘내가 지금 바꾸는 만큼 세상도 바뀐다’고 믿는 낙관적인 현실주의자들”이라고 말했다. 물류창고용 로봇 개발사 플로틱의 이찬(25) 대표도 “내 또래 창업자들은 기회가 재분배되지 않는 불공정한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어 한다”며 “이를 위해서라면 규제나 리스크에 도전하는 게 그리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창업 1년 만에 네이버·카카오로부터 모두 투자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5~10년 내 유니콘 될 미래 주역”

벤처 스타트업계에선 90년대생 창업자들이 향후 5~10년 내 주류로 떠오를 것으로 본다. 2010년 전후 모바일 시장이 열리자 70년대생 창업자들이 집중적으로 창업에 나섰고, 현재의 쿠팡(김범석, 78년생), 배달의민족(김봉진, 76년생), 야놀자(이수진, 78년생), 직방(안성우, 79년생), 리디(배기식, 79년생) 등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토스 이승건(82년생), 마켓컬리 김슬아(83년생), 무신사 조만호(83년생) 등 80년대생이 창업한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에 올랐다.

마이크 김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태지역 총괄은 “90년대생 창업자들은 어려서부터 글로벌 제품을 사용하며 자랐고, K팝과 K콘텐트 영향으로 한국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을 때 창업한 세대”라며 “이전 세대 창업자들보다 훨씬 글로벌하게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을 뒤쫓는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라, 트렌드와 기술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성공할 가능성이 커졌단 얘기다.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로보틱스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한빈 서울로보틱스 대표가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로보틱스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자율주행 라이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서울로보틱스가 그런 예. 이 회사 이한빈(31) 대표는 “단 두명이서 창업한 이스라엘 모빌아이가 인텔에 17조원에 인수된 걸 보고, 라이다 시장에선 우리가 ‘퍼스트 무버’가 되겠단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현재 BMW·볼보·벤츠 등 전 세계 200여개 업체에 제품을 공급 중이다.

쿠팡·배달의민족·토스 등에 투자한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의 윤태중 파트너는 “90년대생 창업자들은 이전 세대보다 정보 습득 역량이 뛰어나고 문제 접근 방식도 창의적”이라며 “특히 이들은 창업을 통해 지구 온난화 같은 문제 해결에 공헌하면서 돈도 빠르게 벌 수 있다는 열망이 강하다”고 말했다.

90년대생 창업자가 온다 by FACT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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