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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충격에 할리우드 배우 됐다…美명문고생의 반전인생 [추기자의 속엣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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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영어도 제대로 못 알아듣던 워킹맘에서 미국 공인회계사가 된 김릴리안씨는 대기업 감사로 한창 잘 나갈 때 돌연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똑똑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유명 과학고에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연예인이 되겠다고 하자 “아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결단한 겁니다. 하지만 이 전투의 승자는 아들이었죠. 엄마가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고 자랑하는 그 아들이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제임스 카이슨(47)입니다. 한국에서 미국 NBC 드라마 ‘히어로즈’의 주연 ‘안도 마사하시’ 역으로 이름을 알렸죠.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카이슨. [중앙포토]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카이슨. [중앙포토]

제임스 카이슨(김지훈)이 미국에 이민온 건 10살 때다. 미국 도착 후 이틀 만에 등교한 그에게 어릴 적 기억은 사실 아름답지 않다. 한국에선 더빙된 미국 TV 프로그램만 보고 “미국인도 한국말을 하는 줄 알았다”던 어린 그가 마주한 뉴욕의 현실은 “영어를 못하면 주먹으로 말하는” 거친 곳이었다. 싸움도 많이 했다. 그는 지난달 9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아니까 버텼다”고 했다. 그는 ‘김’ 씨와 ‘이’(엄마의 결혼 전 성) 씨의 아들(카이슨·Kyson)이라고 이름을 지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애정이 크다.

그는 뉴욕 브롱크스 과학고를 졸업했다. ‘브롱크스 과학고 졸업장만 있으면 어느 대학이든 입학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벨과학상 수상자 8명을 배출한 학교다. 하지만 그는 학창 생활에 대해선 “음악과 농구를 가장 많이 좋아했다”고만 했다. “학교는 내가 배우고 싶은 걸 가르치지 않았다. 공부는 SAT(미국 수학능력시험)만 잘 볼 수 있을 정도로만 했다”면서다. 그는 “90년대 한국 이민 가정이 가장 중시한 게 대학 진학 문제였는데 그게 너무 싫었다”며 “어릴 땐 하라는 대로 공부했지만 크면서 내가 배우고 싶은 걸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인생 바꾼 한국 힙합…짐가방 달랑 들고 LA로  

제임스 카이슨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에 왔다가 '서태지와 아이들'과 '솔리드'를 봤을 때다. 뉴욕 명문 과학고에 다니던 그는 이후 엔터테이너를 꿈꿨다. [본인 제공]

제임스 카이슨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에 왔다가 '서태지와 아이들'과 '솔리드'를 봤을 때다. 뉴욕 명문 과학고에 다니던 그는 이후 엔터테이너를 꿈꿨다. [본인 제공]

그런 그에게 “인생에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문화교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다. 미국에서도 교회에서 밴드 생활을 했지만, 한국의 힙합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또 R&B 그룹 ‘솔리드’를 보고 “미국에서 자랐는데 한국어도 하고 음악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진로를 결정한 것도 이때다.

처음엔 스포츠 아나운서를 꿈꾸며 보스턴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교회 친구들과 취미 삼아 결성한 4인조 힙합 그룹 멤버들이 일본 그룹 엠플로(m-flo)의 한국인 래퍼 버벌(류영기)과 국내 실력파 래퍼 스내키챈(로이킴)이다. 연기에 매료된 건 대학교 2학년 때 미국 즉석 코미디를 처음 보고서다. 그는 “(경남) 창원초등학교에서 처음 연극을 했고 중학교 때도 연극을 몇 번 해봤는데 그때 행복했던 생각이 났다”고 했다. 뉴잉글랜드 아트스쿨로 편입해 졸업했다.

미국 NBC 드라마 ‘히어로즈’의 주연 ‘안도 마사하시’ 역으로 한국에도 이름을 알린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제임스 카이슨. [본인 제공]

미국 NBC 드라마 ‘히어로즈’의 주연 ‘안도 마사하시’ 역으로 한국에도 이름을 알린 한국계 미국인 배우 제임스 카이슨. [본인 제공]

본격적인 배우의 길로 들어선 건 2001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집에서 가장 먼 곳”을 찾아 2001년 편도 티켓을 사서 로스앤젤레스(LA)로 가면서다. 짐가방 하나 달랑 든 채였다. 아파트 방 2개는 세를 주고 거실에서 생활하면서 집세를 해결했고, SAT 튜터와 유니버설 스튜디오 통역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었다. 연기학원은 가장 저렴한 곳으로 선택했다. 그는 “11년간 학교를 일곱 군데 다니면서 어떻게든 생활하려고 하다 보니 적응 기제를 터득했다. 그 덕분에 연기라는 게 바로 와 닿았다”며 “유년기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그 경험이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민자 이야기로 작품 만들고 싶어”  

제임스 카이슨은 10살 때 늦깎이 유학길에 오른 엄마를 따라 이민을 왔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그의 연기 생활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본인 제공]

제임스 카이슨은 10살 때 늦깎이 유학길에 오른 엄마를 따라 이민을 왔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그의 연기 생활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본인 제공]

유창한 한국어 실력도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데뷔작인 2003년 CBS 드라마 ‘재그’(JAG)의 해군 변호사 역의 조건이 한국어 구사였다. 방송 방영을 앞두고 LA 이주 후 처음으로 가족에게 연락했다. 미드 ‘히어로즈’ 출연을 위해 일본어를 배울 때도 한국어와 문법이 비슷해 수월했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모국에도 얼굴을 알렸다. 배우 이하늬와는 2007년 미스유니버스 대회 심사위원으로 만난 인연도 있다.

아직 한국 작품에 출연한 적은 없다. 지난 2018년 그와도 아는 사이인 스티븐 연이 출연한 영화 ‘버닝’ 특별시사회를 보고 “처음으로 한국 작품에 출연해보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까웠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파친코’ 등으로 이제 아시아 최고 엔터테인먼트 국가가 됐다. 정말 신기하고 자랑스럽다”면서 “한국에도 너무 훌륭한 감독이나 배우들도 많은데 기회만 되면 꼭 같이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임스 카이슨의 아내와 두 딸. 아내 제이미 카이슨(오른쪽)은 UCLA 뉴로사이언스 박사 학위를 소지한 과학자로, 현재 싱어송라이터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제임스 카이슨의 아내와 두 딸. 아내 제이미 카이슨(오른쪽)은 UCLA 뉴로사이언스 박사 학위를 소지한 과학자로, 현재 싱어송라이터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그는 “이민자의 이야기로 영화나 쇼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가서 제 인생을 되짚어보고 싶어요. 제 아내와 두 딸에게도 한국을 보여주고 싶고요. 제가 만나보지 못한 외할아버지, 우리 가족의 역사를 잘 알면 제 인생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민자들도 한국 역사의 일부잖아요.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 남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잘 담아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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